탁작가님이 알려준 '사진 잘 찍는 법'

by 라프

가끔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면 “사진 잘 찍으시네요.”라고 칭찬을 해 주던,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페이스북 친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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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비싼 DSLR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내 프로필 사진을 보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고 여긴 이 분이 본인이 활동하는 비공개 사진 동호회를 소개해 주셨다.


처음에는 갈까 말까 망설이다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한 달에 두 번 있다는 강의를 듣게 되었다. 매번 강사나 주제가 바뀌는데 내가 갔던 때에는 당시 모 신문사 사진부 국장을 맡고 있는 탁기형 선생님의 강의였다. 첫인상에서부터 자유로움과 예술가적인 포스가 남달라 보인 긴 머리에 청바지와 폴로티를 입은 50대의 남자선생님이었다.


사진은 ‘어떻게’보다 ‘왜’ 찍느냐가 중요합니다.


선생님의 사진 철학을 알 수 있는 이 한 문장으로 시작한 강의에 금세 빠져들었다. 작가는 대학시절에 잘 찍은 선배들의 사진을 보면 “이거 어떻게 찍었어요?”라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늘


야, 인마! 어떻게 찍었는지가 아니라 ‘왜’ 찍었는지를 물어봐야지!


라는 대답과 함께 엄청 혼이 났다고 한다.



20-30년 전, 대학생이었던 작가가 당시에 찍은 사진들을 보여줬다. 내가 태어날 때 즈음의 사진이었다. 사진을 보며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 세상의 모습이 참으로 신기했다. 특히 그중 지방의 어느 마을에서 양봉을 업으로 하는 부부의 사진이 있었다. 이분들을 만난 이후에 선생님의 둘째 아이가 태어났는데 남편 분께서 양봉한 꿀을 가지고 직접 서울까지 찾아와 축하를 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고 한다. 이후 많은 시간이 흘러, 각자의 생활이 바빠 연락을 못했는데, 얼마 전 작가의 블로그에 올린 이 사진을 보고 “어, 저희 할아버지세요.”라고 그분들의 손자에게 연락이 왔다고 한다. 그렇게 십여 년 만에 다시 연락이 된 사연을 들으니 왠지 모르게 코 끝이 찡해졌다.


뿐만 아니라, 동네에서 모르는 아이들을 불러 세워 놓고 찍은 사진, 강가에 서 있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강물에 비친 모습을 찍은 사진 등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 순간 셔터를 눌러야겠다고’ 생각했던 장면들을 보여주셨다. 이때의 사진들을 보며 작가는 ‘유아기적 사진’이라고 말한다. 참 순수한 사진들이라고 말이다.


사진에도 유아기, 청소년기, 성년기가 있는데, 청소년기에 기본기를 잘 쌓아 두지 않으면, 잘못된 습관에 젖을 수도 있고, 카메라 등 장비에만 신경 쓰게 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기본에 충실해 사진을 매일 찍다 보면 자시만의 색깔을 찾게 되는데, 어느 순간 남들이 봤을 때도


아, 이건 ooo님의 사진이군요!


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이 날 강의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수채화인지 사진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아름다운 작품 사진들이었는데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비싸고 좋은 카메라는 없지만, 아이폰으로도 저런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흥미로웠고, 또 한편으로는 ‘나도 한 번 해 봐?’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또한 강의 중에 탁기형 선생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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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미술을 정말 못해요. 색을 잘 고르지 못해서 학창 시절 미술 시간에 제 때 그림을 완성해 본 적이 없지요.


라고 했다. 나는 어린 시절 미술 시간에 그림을 잘 그려보고 싶은 욕심도 있고, 잘 그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곤 했는데, 제대로 그려 본 적이 없었다. 왠지 그림을 잘 그리면 사진도 잘 찍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매우 희망적인 메시지였다.


최근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들 중 내가 봐도 ‘잘 찍었네’라고 생각할 만한 것들이 있었는데, 그것을 보며 ‘사진 찍는 데는 소질이 좀 있나?’라는 생각을 얼핏 하고 있던 차였기에 전문 사진작가님의 말이 내게는 더 큰 용기가 되었다. 물론 미술을 잘하는 사람이 사진도 잘 찍을 가능성이 높긴 하겠으나, 그 상관관계가 항상 유효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의미 있었다.


‘면과 선을 구분하라. 포인트를 찾아서 찍는다. 빛을 잘 활용하라. 마음을 담은 사진을 찍어라.’

등 2시간 30분 동안 사진에 담긴 작가의 철학뿐만 아니라, 작품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작가만의 노하우까지 들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덕분에 ‘사진’이란 재미있는 생활의 놀이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누운 채 방 안을 둘러보며 사진 찍을만한 곳이 없는지 찾아보았다.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을 발견하고 봄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내 마음을 담아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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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하야 “나름 작품 사진”이다.


2012년 5월 16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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