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돼지는 살아날까.

과학자들이 죽은 뇌를 살렸다는 논문을 읽고 - 2

by 캬닥이

앞선 글에서 브레인엑스라는 순환액과 기기를 이용해 돼지 뇌 세포를 회복한 연구를 보았다. 질병 치료에 한 걸음 나아간다는 낙관적인 결론으로 끝을 맺었지만 연구가 실제로 진행될 가능성은 아직 낮다. 브레인엑스로 뇌를 실험해도 윤리적으로 괜찮을지 해답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 수억 명 사람들이 신경 질환으로 고통받는 사실을 생각하면 가혹한 고삐다. 이제까지 죽은 사람의 뇌를 사용한 연구는 꽤 있었다. 과학자는 죽은 뇌에 약물을 붓고 얼리고 잘라왔다. 좀 특별한 용액을 공급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연구와 무엇이 다른가.


브레인엑스가 뇌를 살려낼 것인지, 살아난 뇌를 갖고 실험하는 일이 윤리적인지를 따지기 전에 '살아있음'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뇌만 살아있는 상태를 살아있다고 볼 수 있는가? 그렇다. 우리는 몸보다 뇌 활동으로 사람의 생사를 판단한다. 사지가 마비된 환자에게 MRI로 묻고 대답을 확인하는 연구가 있다. 스스로 의사를 결정하는 환자를 죽었다고 판단할 이는 없다.


그렇다면 뇌가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뇌의 생사를 뇌파가 나오는지로 판단하겠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보면 논문에 나온 뇌는 신경 세포가 살아있더라도 전체적으로 죽은 셈이다. 그렇지만 뇌파는 뇌의 활동을 보여주는 간접적인 지표일 뿐이다. 게다가 후속 연구에서 발전한 브레인엑스 뇌에서 뇌파가 보인다면 그제야 브레인엑스의 뇌가 살아있다고 인정할 것인가? 더 정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뇌는 동물의 한 기관이고, 기관은 세포로 구성된다. 세포가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출발하자. 살아있는 세포는 제 기능을 한다. 다세포 생물을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에는 생겨난 목적이 있다. 신경 세포는 신호 전달을 위해 진화했다. 전기 자극을 주었을 때 옆 신경 세포로 전달하려 한다면 이 뉴런은 살아있는 상태이다. 브레인엑스 뇌의 신경 세포는 살아 있다.


이제 세포의 생사를 판단하던 목적성 기준을 장기로 확장해보자. 뇌의 목적은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데 있다. 식물에는 뇌가 없으면서 동물에는 있는 이유는 동물은 먹이를 찾고 천적에게서 도망가야 하기 때문이다. 브레인엑스 뇌에 자극을 주었을 때 적절한 반응이 나온다면 명실상부 살아있는 뇌이다. 기준을 찾았지만 문제는 그대로다. 통 속의 뇌에 말을 걸 방법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어떤 감각 신경 세포를 어떤 패턴으로 자극해야 하는지, 그로 인해 발생한 신경 활동을 어떤 행동이라고 해석해야 하는지는 현대 과학으로도 아직 풀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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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순환 논증에 빠진다. 브레인엑스 뇌가 살아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브레인엑스 뇌로 실험해야 한다. 확실한 결과를 보기 위해 몇백 개의 뇌가 쓰일지 모른다. 기술은 서서히 발전한다. 설령 이번 연구에서는 뇌가 부활하지 않았다고 해도 어느 시점에서는 진정 살아날 것이다. 뇌가 부활해 의식이 돌아왔는지도 알지 못한 채로 실험하는 순간이 온다. 마침내 어느 미래에는 뉴런 하나하나와 그들의 조합이 어떤 정신 상태를 의미하는지 해석될 것이다. 그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수많은 통 속의 생명이 표현할 수도 없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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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엑스 실험이 여타 인간 뇌 실험과 다른 점은 윤리적 문제가 풀리지 않은 채로 실험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연구가 중단된다면 생기지도 않았을 딜레마이다. 하지만 인류는 이런 딜레마에 섰을 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편을 선택해왔다. 대상이 인간 자신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입덧 방지제 탈리도마이도에 수많은 아이들이 기형으로 태어나고 나서야 엄격한 FDA 승인 기준이 생겼다. 작년 중국에서는 크리스퍼로 유전자를 편집한 아이가 태어났다. 가까운 미래에는 살아있는 사람 수억 명이 온전한 마음을 갖고 죽을 수 있도록 죽은 사람 뇌를 브레인엑스에 담글 것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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