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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닥이 Apr 27. 2022

우리의 정의가 도시를 만든다

N.K. 제미신 <우리는 도시가 된다> 서평

N.K. 제미신의 신간 장편 <우리는 도시가 된다>는 뉴욕의 화신이 도시를 낳는 이야기입니다. 부서진 대지 3부작을 번역한 박슬라님께서 번역하시며, 제미신 특유의 문법도 초월해버리는 문장을 매끄럽게 옮기셨습니다. 


표지 출처 알라딘


공간에 사람들이 모이며 구조가 생깁니다. 구조가 복잡해지며 도시가 생겨납니다. 도시가 완전히 태어나는 순간, 도시 곳곳의 개인이 도시의 화신이 되어 일어납니다. 화신은 도시의 탄생을 막는 적의 무리에 맞서 곧 태어날 도시를 지켜냅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뉴욕입니다. 주인공은 뉴욕을 구성하는 자치구 다섯 명입니다. 목표는 자치구 다섯개를 대표할 진짜 뉴욕의 화신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제미신이 여러 작품에서 올곧게 밀고 나가는 주제는 하나입니다. ‘인간에 서열을 매기지 마라’. <부서진 대지 3부작>이 판타지였다면 <위대한 도시들>은 엄연히 현실에 발을 걸치고 있습니다. 같은 주제라도 현실이 섞이니 프로파간다 느낌이 짙어졌습니다.


무엇이 소설과 프로파간다를 구분할까요? 이야기가 단순해질수록 주장만 남습니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재미가 없으면 사람들은 소설을 읽지 않아요. 작가 본인도 그것을 알기에 <우리는 도시가 된다>의 재미를 디테일에 걸었습니다. 


이전 시대 작품을 적재적시에 인용하는 솜씨가 일품입니다. <위대한 도시> 시리즈의 조상은 러브크래프트의 작품들입니다. 러브크래프트를 조금만 알아도 인용이 나올 때마다 낄낄대며 읽을 수 있습니다. 사실 인용이라기보다는 멕이는 것에 가까워서, 죽은 러브크래프트가 약이 올라 살아돌아와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아요. 


<우리는 도시가 된다>속 뉴욕은 구석구석 생동감이 넘칩니다. 뉴요커들은 정체성부터 성격까지 모두 다르면서도 뉴요커만의 공통점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뉴욕을 모르는 독자로서는 디테일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미국 본토는 가본 적도 없어서, 초반 몇십 페이지를 읽다 덮고 위키피디아에서 뉴욕이 어떤 도시인지 찾아야 했습니다. 현실에 기반한 작품인 만큼 <부서진 대지>를 쓸 때보다 더 철저히 자료조사를 하셨다는데, 작가의 노력이 독자에게 완전히 닿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뉴욕에 한 번도 가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도시가 된다>의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한국 독자가 작가와 공간을 공유하지 않을지언정 시대는 공유하고 있거든요. ‘옳은 말 하는 사람들’에게 ‘SJW’ 딱지(한국어로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씹선비? 꼴페미?)를 붙이는 것도 모자라 죽창으로 찔러대는 사람들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습니다. 제미신의 묘사에 매번 소름이 돋았습니다. 뉴욕에도 그들만의 디씨펨코와 신남성연대가 있습니다. 인종이 섞여서 더 심합니다. 매일매일 그들을 견뎌낼 뉴요커들이 가련합니다. 


같은 모습이 뉴욕 한가운데에서 일어납니다. 출처: 성평등 좋은데 페미는 싫다? 외신들이 심해생물보듯 뜯어보는 ‘한국 이대남’ | 중앙일보 (joongang.co.kr)


전작 <부서진 대지>가 제미신을 모르던 독자에게 제미신 식 정의(正義)를 설득하는 이야기였다면, <위대한 도시> 시리즈는 작가의 정의를 아는 사람들끼리 즐겁게 공유하는 이야기입니다. 스페이스 오페라 속 총 든 백남과 본인을 동일시하는 독자라도 <부서진 대지>를 읽을 수는 있습니다. 대부분은 작가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극히 일부는 작가가 왜 이렇게 공을 들여 세계를 만들었는지 깨달을지도 모르지요. 반면 아무리 바보라도 <위대한 도시>시리즈를 읽지는 못할 거예요. 본인을 악마로 못박은 이야기를 어떻게 읽겠어요. 제미신 본인이 독자 풀을 줄인 것 같으면서도, 애초에 작가가 그들을 자기 책의 독자로 가정했을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부서진 대지>가 3년 연속 휴고상을 받도록 일조한 'sad puppies'는 <부서진 대지>를 읽었을까요?

혹평한 것 같지만 <부서진 대지>가 진짜로 위대한 작품이었지 이번 작품이 나빴던 건 아닙니다. 저는 이번 작품의 세계관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누군가 제미신의 세계관을 적법하게 가져와 <우리는 도시가 된다>의 서울 버전을 써주길 바랄 정도입니다. 하루 종일 막히는 강변북로, 움직이지 않아도 저절로 환승이 된다는 신도림역, 부동산 재개발을 둘러싼 광풍까지. 자치구가 많고 갈등도 많은 곳이라 무척 복잡한 군상극이 될 것 같아요. 서울은 도시로 태어날 수 있을까요? 혐오와 저출산 속에 자멸할까요? 우리의 문제이기에 우리가 맞설 수밖에 없습니다.



표지 출처는 뉴욕 타임즈의 서평입니다.

When a Sinister Enemy Attacks New York, the City Fights Back - The New York Times (ny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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