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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닥이 Feb 25. 2023

두 가지 삶의 선택지

존 윌리엄스 <스토너> 짧은 감상

스토너는 한 남성의 이야기이다. 평생 영문학과 조교수로 살다 병으로 죽었다. 학기가 돌아오듯 같은 삶을 살았다. 똑같은 강의를 맡고, 학생을 받고 졸업시키고. 삶의 굴곡은 그의 삶을 빼앗은 영문학 이외의 것에서 나온다. 아내와의 갈등과 딸의 성장 정도이다.


스토너의 갈등을 읽으면 독자의 마음조차 갑갑해진다. 그럼에도 스토너가 불평 없이 삶을 살아간 이유는 그가 덕업일치에 성공한 영문학 오타쿠이기 때문이다! 스토너는 학문 자체를 사랑한다. 교수라는 직위에도, 훌륭한 연구서로 얻을 명성에도 관심이 없다. 그는 죽기 전까지 영문학에 질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신이 두 가지 삶 중 하나를 주겠다고 한다고 해보자.
1. 이따금 좋아하는 활동이나 사람을 만난다. 열정은 한동안 타오르다 꺼진다. 다시 자신의 진정한 꿈을 찾기를 반복한다. 어느 시점에 평안한 삶에 안주한다.
2. 인생 초반에 투신할 무엇과 만난다. 세상의 모든 요소가 만남이 성사하기를 돕는다. 열정 덕분인지 계속 투신할 실력도 된다. 대신 그 외의 '삶의 자잘한 것들'중 풀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평생 형편에 여유가 없다. 가족에게 경멸받고, 동료에게는 동정을 산다.

우리는 대부분 전자의 삶을 택한다. 선택한 것이다. 열정도 꾸준함도 의지가 낳기 때문이다. '결국 포기한 ○○○를 지금이라도 다시 한다면', 보통은 미련도 두지 않지만 미련이 있더라도 행하지 않는다. 의지가 남은 소수는 하루 8시간 일한 대가로서 자기 전이나 주말에 ○○○의 '맛을 본다'. 소극적으로는 인터넷에서 분야의 대가를 검색해 감상하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썩 행복하다.


스토너는 후자의 삶을 보여준다. 스토너의 삶이 행복했을지 불행했을지는 그 삶을 읽는 독자의 가치관에 달려있다. 자잘한 불운에도 불구하고 그가 전적으로 행복하게 살다 갔다고 읽힌다면, 2번의 삶에 남은 미련을 인정해야 한다.


커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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