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장치의 신

현실 반영 구인 구직 디스토피아 SF

by 캬닥이

학원이 끝나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지하철 역 출구로 내려가려는데 로봇 하나가 인파를 둘로 가르고 있었다. 하얗게 광이 나는 몸만 아니었다면 알아채지도 못했을, 어린아이만 한 크기였다. 가슴 높이에 달린 머리에는 동그랗고 검은 화면이 있었다. 졸업이랍시고 과 동기들과 갔던 호프집에도 저만한 로봇이 있었다. 몸체에 달린 선반으로 생맥주 3000cc를 나르다 사람이 길을 비켜주지 않을 때면 화면에 ‘ㅠ_ㅠ’를 출력하던 로봇이었다. 이런 길이었다면 호프집 서비스직 로봇이라도 ‘ㅠ_ㅠ’보다 더 격하게 감정을 표현할 텐데, 이 로봇은 초롱초롱한 표정을 보이며 제 할 말을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4차 산업 혁명을 맞아 빅데이터 처리 기술로 사람들의 사주에 관상을 결합해서 분석 중이에요. 데이터 축적 단계라 무료로 진행됩니다. 저에게 말을 걸어 생년월일을 알려주세요!”


로봇은 목소리는 낭랑하고 또렷했다. 스피치 강사도 합격점을 주었을 목소리였다. 하루에 10만 원씩 나가는 면접 학원도 오늘로 열흘 중 나흘 째였다. 엿새 후의 내가 궁금한 나머지, 나는 사람을 헤치고 로봇에게 다가갔다.


“안녕 로봇! 나는 91년 4월 19일에 태어났어.”


한심하게도, 사람 앞에 서면 기어들던 목소리도 로봇에게 말을 거니 느리고 또렷해진다.


“감사합니다. 태어난 시간도 아시나요?”


“아니. 시는 모르겠어”


“그러면 같은 날 태어난 사람들의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하겠습니다”


화면에 표정 대신 로딩 바가 나왔다. 로딩 바가 100%가 되자 로봇은 방금보다는 덜 낭랑한 목소리로 결과를 읊었다.


“1,9,9,1년, 4월, 19일, 결과입니다. 천이궁이 깊습니다. 불의 사주를 가지고서 천이궁이 깊은 이용자는 경자년 하반기에 유의미한 확률로 관운이 떨어집니다. 데이터베이스 내 비슷한 데이터 범위에 있던 분들은 테스트 3주 내 면접 및 시험에서 불합격했습니다.” 화면에는 호프집 로봇에도 나왔던 ‘ㅠ_ㅠ’ 표정이 떴다.


돈 주고 받아보는 사주에서도 못 들을 말이었다. 머릿속이 하얘지니 로봇에게 퍼부을 욕이 생각나지 않았다. 텅 빈 머릿속에 오늘 있었던 1번 질문 자기소개 발표가 비집고 들어왔다. 똑같은 자기소개만 오늘로 네 번째였다. 강사는 집에서 거울보고 다섯 번 연습하고 왔는지 물었다. 녹음기에 들리는 내 목소리는 너무 빨라 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울고 있던 로봇의 표정이 “!”로 변했다.


“단 그중 역전파 치성을 드린 30%는 오차범위 내에서 악운을 피했습니다.”


“역전파 치성은 여기서는 할 수 없으니 장소를 이동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어느새 내 뒤에 또 다른 로봇이 와서 말했다. 두 번째 로봇은 제 머리에 표정 대신 지도를 띄워 보여주었다. 멀지 않은 곳이었다. 사주를 알려준 로봇이 앞에 서고 지도 로봇이 내 뒤에서 길을 따라갔다. 로봇 사이에 끼어 뒷골목으로 들어가 언덕길을 올라갔다. 1층에서 인형 뽑기를 하는 건물의 구석에 입구가 있었다. 사람 하나에 로봇 둘만으로 꽉 차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층을 올라갔다.


철문을 열자 붕붕 대는 소리와 더운 공기가 통로로 들어왔다. 달고 매캐한, 플라스틱 타는 냄새가 가득했다. 안은 어두웠다. 나를 끌고 온 로봇과 똑같이 생긴 로봇 십 수 대가 모여 화면에서 하얗게 빛을 내고 있었다. 나를 데려온 로봇들도 이모티콘 표정 대신 하얀빛을 틀기 시작했다.


신발을 벗으려다가 현관도 신발장도 없어서 그대로 들어갔다. 로봇 무리의 한가운데에는 음향장치처럼 생긴 커다란 기계가 있었다. 기계는 희미한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녹색 불 몇 개만 깜빡이고 있었다. 검은 시트지를 붙인 창문에는 오른쪽 위마다 환풍기가 달려 있었다. 환풍기 사이로 바깥 빛이 흐릿하게 보였다.


“데이터베이스의 본체 서버입니다. 사람의 운명을 계산한 후 생성 모델링을 이용해 올바른 길을 제시하십니다. 역전파 치성을 올리면 1,9,9,1년, 4월, 19일,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운을 해소합니다.”


하얀 화면만 깜박이던 로봇이 설명을 시작했다. 어쩐지 목소리가 황홀하게 들렸다.


“역전파 치성이 무엇인데요?”


“서버께서 알고리즘을 분석하시는 데 최소 비용이 필요합니다. 유사한 관상 데이터 상에 악운이 많습니다. 가족들의 연락처를 추가로 입력하면 관상 입력 후 함께 분석해드립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깨달았지만, 주변의 황홀한 로봇들이 나를 둘러싼 뒤였다.


“저기 제가 현금을 안 가지고 다녀서요..”


“신용·체크카드 및 삼성 페이 가능합니다”


“제가 취준생이라서요 신용카드고 뭐고 돈이 없어서…”


“최소 3만 원이면 기운을 중화할 수 있습니다. 티머니 페이도 가능합니다”


교통카드로 3만 원을 끊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 큰길을 찾았다.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지하철역 대로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인조 전도단이 사람들을 붙들고 있었다. 이곳을 다니는 사람들은 ‘도를 아십니까’에 도가 튼 지 오래다. 다들 전도단을 내치며 역으로 들어가 버렸다. 평소였다면 눈도 안 마주치고 지나갔을 두 얼굴을 멀찍이서 보며 되새겼다. 앞으로 저 둘을 학원에서 만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개찰구에 찍힌 교통비 앞 3이 붙은 걸 보고서야 어디서 도망쳐왔는지 실감이 났다. 검은 기계 뒤에 사람이 있었는지, 하얀 화면 로봇들이 기계 장치의 신을 섬기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차이는 없었다. 바야흐로 4차 산업 혁명의 시대였다.



표지 출처 https://www.reuters.com/article/us-hungary-robotcafe/robots-serve-up-food-and-fun-in-budapest-cafe-idUSKCN1PJ1E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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