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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닥이 Aug 18. 2019

고진감래의 함정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고 해서, 그걸로 충분합니까.

보드게임 '테라포밍 마스'를 주문해서 받았다. 말 그대로 화성을 테라포밍하는 보드게임이다. 플레이어들이 경쟁하며 화성의 기온을 높이고 대기를 만들어 화성에 사람이 살도록 만드는 게임이다.


<테라포밍 마스> 보드게임 리뷰는 나중에 쓰겠습니다.


현실에서 화성의 테라포밍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일론 머스크일 것이다. 우주여행 관광을 만들고 날씬한 우주복을 선보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화성에 가고 싶냐는 질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화성에 직접 가느니 지구에서 아이들이 성인이 되는 모습을 지켜보겠다"라고 대답했다(미치오 카쿠, <인류의 미래>). 까놓고 말하면 '인류는 화성에 진출해야만 한다. 그러나 나는 화성에 가기 싫다'. 인류의 일과 개인의 일은 이렇게 다르다. 


우주 개발과 테라포밍은 인류 차원의 고진감래다. 우주에 자리 잡은 세대는 단 맛을 볼 터이다. 살 곳이 늘고 자원이 풍부해지며 더 높은 차원으로 기술이 발전한다. 하지만 우주에 자리잡기 이전 세대는 쓴 맛을 견뎌야 한다. 말이 좋아 쓴맛이지 처음 가는 무리는 죽을 확률이 더 높다. 미래의 모르는 후손이 단 맛을 보자고 이 고생을 하겠는가. 일론 머스크가 지구에서 다른 사람을 보내는 것은 개인 차원에서 당연하다. 화성에 나아갈 기반을 만드는 것만 해도 인류의 영웅이라 박수받을 일이다. 


Space X의 우주 관광선 Dragon V2


일론 머스크조차 화성에 직접 갈 생각은 안 하지만 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사람은 많다. 수능 점수가 좋으면 고등학생 3년이 좀 힘들어도 괜찮다. 공무원에 합격하기만 하면 노량진에서 2-3년은 보낼 만하다. 늙어 고독사 하기 싫으니 지금 아이를 낳아 키워야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등학교 3년에 재수 1년을 괴롭게 보내 대학에 들어가는 강제 고진감래를 당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삶을 선택하는 순간에마저 고진감래의 함정에 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첫 여름방학에 나는 강남 어학원에 등록했다. 교환학생을 가기 위해서는 토플 점수가 필요했다. 여름방학 두어 달 빡세게 하면 목표 점수가 생기리라 생각했다. 현장 강의이지만 모니터 속에서만 얼굴이 보이는 스타 강사의 수업을 들었다. 스물한 살에 학교 밖에서 만난 스터디원들은 차가웠다. 첫날 서로 인사를 끝내고 보증금을 걷었다. 학원에서 기숙사로 돌아오니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다음날부터 아침 수업과 그보다 일찍 시작하는 스터디를 하기 위해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났다. 버스도 출발하기 전이라 기숙사에서 걸어서 2km 떨어진 지하철 역까지 가야 했다. 도착해서는 사람들이 잔뜩 줄 서있는 복도에 쭈그려 단어를 외웠다.


정확히 3일 하고 그만두었다. 학원비를 환불받고, 스터디원에게는 시간이 안 맞아 반을 바꾸었다고 둘러대고 보증금을 돌려받았다. 이후 3년 간 영어 (시험) 공포증에 시달렸다. 고진감래에서 달디 단 마지막 순간만 생각한 대가였다. 


계획을 짤 때 그 계획을 버티는 자신을 상상하지 않을 때 고진감래의 함정에 빠진다. 자신은 최선을 다할 것이고, 성과를 얻어내리라 얼버무린다. 괴로운 기간을 오롯이 감내하는 이도 자기 자신이다. 후손을 위해 자처해 화성에 가기는커녕 아무렇지 않게 일회용품을 쓰고 버리면서, 미래의 자신을 위해 현실을 희생하는 것은 왜 이상하다 생각지 않는가.


미래가 행복하면 좋겠지만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할 필요는 없다. 더 나은 자신을 만들기 위해서는 오늘 노력해야 하지만 오늘이 행복해야만 미래도 충만하다. 행복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잘 누린다. 현실을 희생해 미래를 사는 사람은 그 미래가 오더라도 다시 현실을 희생해 더 높은 이상에 닿으려 할 뿐이다. 항상 스스로의 기대에 매여 껍데기뿐인 삶을 살아간다.


3년 후 나는 다시 토플에 재도전했다. 강남 어학원에 가는 대신 학교 언어교육원에 등록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까지만 강의를 들었다. 남은 시간에는 3년 전의 트라우마 탓에 열어보지도 않았던 어학책을 꺼내 독학했다. 한 공간에 있는 것도 실감이 나지 않던 스크린 속 스타 강사 대신 작은 강의실에서 나보다 영어를 훨씬 잘하는 강사에게 물어보며 공부했다. 스터디는 없었지만 꼬박꼬박 단어를 외웠다. 


두 달 공부해서 필요한 점수를 얻었다. 가고 싶던 나라에 교환 학생을 가서 한 학기 간 경험을 쌓고 왔다. 고진감래였다. 이번 영어 공부도 돌이켜보면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새벽 다섯 시에 걸어서 지하철에 갈 때만큼 괴롭지는 않았다.


(https://www.nasa.gov/content/murray-ridge-on-mars)

목숨 걸고 화성에 첫 발을 내딛으려는 사람이 있듯, 각자 감내할 고통의 양이 다른 것도 사실이다. 남이 견디는 고통이라고 억지로 견딜 필요는 없다. 그렇게 한다고 괴로웠던 대가가 반드시 오는 것도 아니며 그렇게 안 해도 우리는 성장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적어도 인류의 미래를 상상하며 우리를 희생할 생각은 아무도 안 하지 않는가.  이 시대 내에 화성을 테라포밍할 필요도 없다. 그저 여기서 테라포밍 마스를 하며 언젠가 화성을 테라포밍할 상상이면 충분하다.



(Cover image from NASA, https://www.nasa.gov/image-feature/seven-years-after-landing-curiosity-rover-is-still-rock-n-ro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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