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캬닥이 Aug 10. 2019

대학원생 취미생활

시간 없는 사람들에게 여가를 권하기

1년 전 연구실에 막 들어온 동기가 밴드를 하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다. 학부 때 드럼을 쳤고 밴드로 결혼식 축가까지 불렀단다. 나는 학부 때 들어갔던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를 알려주었다. 동기는 대학원생이 갈만한 밴드가 있는지 묻고 마음에 상처만 입어 돌아왔다. 댓글에는 제정신이냐, 들어오자마자 밴드를 찾다니 그 시간에 연구나 해라 따위의 비난과 그 비난을 비난하는 비난으로 키배가 열렸다. 대학원생의 취미란 이런 취급을 받는다.


대학원생에게 취미는 어울리지 않는다. 애초에 자기 하고 싶은 일을 찾아왔는데 여기서 무슨 취미가 더 필요하냐는 말을 듣는다. 취미도 여가도 없이 살아남은 독종과 오타쿠들이 많은 곳이다 보니 평범한 대학원생은 들을 필요가 없는 비난을 듣는다. 대학원생이라고 취미가 있으면 안 될 이유가 있는가. 오히려 지속 가능한 대학원 생활을 위해서는 억지로라도 여가를 만들어야 한다. 대학원생이든 회사원이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삶을 사는 이유이자 권리이다.

잘못된 선택은 한 번이면 족하다(?)

대학원 생활은 성장이 더디다. 실험은 실패가 기본이다. 논문은 읽을 때는 두꺼우나 읽은 후에는 얇디얇아 머릿속에서 훨훨 날아간다. 대학원을 택한 이들이면 자기계발이나 성장에 욕심이 클 텐데 막상 들어와서는 성장하는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이들에게는 스스로 성장했다고 느낄  취미가 필요하다. 결과물이 남으면 더 좋다. 연구자가 논문으로 자신을 보이듯 장인은 작품으로 자기를 증명한다. 서툴렀던 결과물이 어떻게 늘어가는지 남기는 일은 보람되다. 요새는 사진과 동영상 찍기도 쉬워졌다. 악기 연주처럼 찰나로 사라지는 일조차 기록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할 수 있다. 


<디지털 미니멀리즘>에서는 말한다. 이왕 쉰다면 재미있게 쉬라고.

나쁜 취미는 성장도, 결과도 없이 반복하며 시간을 쏟는 일이다. 정신을 전환하고 원래 생활에 활력이 된다면 상관없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이런 여가는 '현타'로 돌아온다. 자신이 여가에 얼마나 시간을 쏟았는지 깨닫고서 그 시간에 할 수 있던 실험과 읽을 논문이 떠오르면? 그 시간은 원래 삶과 조화를 이루기는커녕 삶을 낭비했다는 죄책감으로 남는다. 그러면 대학원생에게는 어떤 취미가 좋을까? 


내게 첫째 취미는 운동이다. 내가 있는 크로스핏 박스는 학교 기숙사 아침반이라 모두 대학원생이다. 방학 때 학부생이 오면 박수를 쳐주는 곳이다. 입학과 동시에 크로스핏을 시작했다. 아마 몸이 좋아졌겠지만 실감은 못한다. 대신 처음 왔을 때는 상상도 못 했던 동작이 점점 가능해졌다. 이제는 물구나무서서 팔 굽히기, 턱걸이 따위를 한다. 영원히 안 될 줄만 알았던 이단 뛰기도 하나 건너 하나로라도 넘는다. 하루에 몇 분이라도 어떤 동작을 하는데 시간을 들이면 몸은 그 동작을 이루도록 바뀌었다. 


두 번째로는 3d 펜이다. 우연히 3d 펜을 얻었다. 빨리 굳는 재료의 특성상 완성하기는 쉬웠으나 결과물은 보잘것없었다. 졸작으로 시작하니 만들 때마다 성장할 지점이 많았다. 스스로 기법을 찾아가며 완성하는 재미가 있었다. 3d 펜 취미는 커다란 기린을 만들 때 정점에 달했다. 퇴근하고 매일 기린을 만들었다. 기린을 만든 후에는 대학원생이 취미에 시간을 너무 많이 쓴다 느껴 잠정적으로 중단한 생태이다.

취미를 즐길 때는 무엇보다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취미는 시간 낭비가 아니다. 나의 삶을 구성하는 한 요소로 받아들이고 즐겨야 한다. 지금껏 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일과 시간 때문에 마음속에 간직만 하고 있었다면 이번 주 꺼내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경험과 기록과 전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