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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닥이 Dec 08. 2019

경험과 기록과 전시

별일 없이 사는 삶이 아까워서 쓰는 글

반려와 둘이서 보드게임을 했다. 한쪽의 승리와 반대편의 패배를 기념하며 하와이안 초콜릿을 먹었다. 초콜릿 비닐을 뜯으니 갈색 종이에 쌓인 초콜릿이 나왔다. 30초도 안 되어 초콜릿은 사라지고 비닐봉지와 종이는 쓰레기통으로 갔다. 초콜릿이 허무하게 사라져서 글로라도 남기고 싶었다. 하와이 신혼여행에서 사 온 기념품이었다. 초콜릿은 3주 동안 책상 위에 있었다. 초콜릿이 집에 있는 동안 내 삶에는 연구실 갈등, 1개월 유급 휴가, 기말고사 공부, 반려가 있어 느끼는 안정감과 즐거운 보드 게임이 있었다. 요새는 잡다하고 행복하게 산다.


삶을 돌아보게 만든 초콜릿


우리가 보는 다른 이의 삶은 그들이 선택하고 보여주는 모습뿐이다. 사람들이 경험하는 멋진 일들에 비해, 기록되는 사실은 적고 전시되는 모습은 더 적다. 나는 요새 경험 가득한 삶을 산다. 이 중 남에게 보이는 부분은 얼마나 될까. 반대로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서 말하지 않을까.


경험은 소중하다. 삶을 즐겁게 살기 위해서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많은 일을 겪어야 한다. 매일매일 같은 일을 겪더라도 스스로 새로운 느낌을 짜낸다면 새로운 경험이 된다. 경험이 쌓일수록 삶은 풍성해진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일상은 비슷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느낌을 받기 위해서는 의미를 찾아야 하며,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생각이 나아가야 한다. 생각은 밖으로 나올 때 한 걸음씩 발전한다. 그러니 나를 위해서라도 삶을 기록하고 전시해야 한다.


풍성한 경험의 예. 여행지에서 구름바다에 뜬 배 두 척을 보았다.


내가 말하고 전시하는 경험은 다른 이에게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누군가는 글을 읽고서 나를 평가하고 끝내겠지만 누군가는 내 지식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간다. 또 다른 누군가는 나의 생각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하루 종일 말하는 대화 중 얼마나 가슴에 남으며 그중 무엇이 글로 거듭날까. 정성을 들여 쓴 글에서 한 문장이라도 누군가의 삶을 움직일 수 있을까. 삶에 무언가를 남기자는 마음도 욕심일지 모르겠다. 자기 계발과 사회 공헌이 행복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행복과 즐거움을 기록하고 전시하는 행위에서 찾을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러니 이왕이면, 즐겁게 살되, 경험을 기록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다. 나처럼 사는 경우의 수가 있다고 써두면 어느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삶을 기록하고 전시하자'는 생각이 나만의 가치관인 점도 염두해야 한다. 경험이 풍부하지만 표현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뿐더러, 많은 경험을 하지 않았다고 잘못 산 인생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 삶을 뽐내지 않는다고 해서 얕은 인간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우리 뇌는 보이지 않는 것에 유독 둔하다. 집에 새로 들인 소파는 눈에 띄지만 사라진 카펫은 보이지 않는 식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보여주지 않은 삶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을 만날수록 그도 다채로운 삶을 살고 있는 인간임을 되새겨야 한다. 깊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사람과 마주할 때면 그가 삶에서 받았을 상처를 짐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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