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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닥이 Dec 14. 2019

보드게임과 작업기억

머리가 좋아지는 즐거운 방법

우리집 벽장에는 보드게임이 두 개 있다. 몇 달 전에 사놓고서 한동안 못 했던 게임과 몇 년 전에 보고서 언젠가 반드시 하겠다고 다짐한 게임이다. 이제는 보드게임을 함께 할 반려도 곁에 있고 연구실에서 휴가도 받았다. 저녁마다 서너 시간씩 게임을 했다. 하는 중에는 머리 쓸 일이 많고 끝난 후에는 할 이야기가 많다.


둘이서 같이 하는 게임은 ‘테라포밍 마스’ 다. 거대 기업이 되어 화성을 개척하는 게임이다. 자기 차례가 오면 온갖 행동이 적힌 카드를 뽑는다. 갖고 있는 자금 안에서 카드를 사고, 카드를 사용할지를 결정한다. 무슨 카드가 나올지도, 상대가 어떤 선택을 할지도 알 수 없다. 중간에 어떤 사건이 일어났든 점수는 게임이 끝나야 나온다. 게임을 하면 할수록 간발의 차로 승부가 갈려서, 우리 두 사람은 제법 비장하게 게임을 한다.


아름다운 화성은 우리 금슬에 흠집만 남겼다. 우리 부부는 친구를 불러 새로운 보드게임을 시작했다. 몇 년 전 유행했던 ‘팬데믹 레거시’이다. 게임시간 1년 간 12번은 게임을 해야 해서 보드게임 12번을 함께 할 친구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게임이다. 테라포밍 마스와 달리 서로 경쟁하는 대신 다 같이 협력해야 이긴다. 이번 달 게임 결과가 다음에 반영되어서 한 번 한 번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 자신의 패를 보이면 안 되는 테라포밍 마스와 달리, 모두에게 카드를 보여주고 역할이 맞는 사람에게 행동을 양보한다.


게임을 하는 중에는 사진 찍을 생각을 못한다


보드게임에서는 평소에 쓰지 않았던 머리를 굴린다. 작업 기억을 적극적으로 써야 한다. 작업 기억이란 머릿속에 지금 당장 정보를 저장하는 용량이다. 컴퓨터의 램과 비슷하다. 작업 기억을 쓰는 대표적인 순간이 전략을 짤 때이다. 다음 턴에 무엇을 할 것이며, 그에 따라 상대가 어떻게 대처할지를 예측해야 한다. 작업 기억의 용량에 따라 머리에 담는 '수'의 개수도 달라진다.


생각보다 '공부 머리'는 작업 기억과 멀다. 작업 기억은 내용을 달달 외우는 능력이 아니다. 내용을 달달 외우는 행위는 서술 기억을 저장하는 일이다. 뇌의 해마를 사용한다. 시험을 보는 순간 외웠던 정보를 종이에 써야 할 때, 머릿속에서 어떤 순서로 답을 쓸지 고민할 때야 작업 기억을 사용한다. 이 때는 전전두피질을 사용한다. 전전두피질은 작업기억뿐 아니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행동을 계획하고 조절하는 모든 단계에 기능한다. 그래서 작업 기억은 교실 바깥에서 쓰이는 일반적인 지능과 연관이 깊다*. 한 번에 머리에 담는 내용이 많을수록 여러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붉은 부분이 작업 기억에 관여한다면 녹색 해마는 서술 기억에 기능한다.


뇌는 쓸수록 좋아진다는데, 작업 기억을 의식적으로 쓰고 늘리기는 어렵다. 숫자 예닐곱 자리를 주고 거꾸로 말하면 늘어난다고도 들었다. 매일 하기는 귀찮은 노릇이다. 독서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스스로 내용을 곱씹고 생각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독서 시 작업기억은 논리를 맞추기 위해 앞 내용을 기억할 때나 쓰인다. 책을 읽고 '머리가 좋아지는' 일이란 책 내용이 서술 기억으로 남는 정도이다.


작업 기억을 높이려면 수를 읽고 전략을 짜야한다. 전쟁에 갈 일이 없다 아쉬워하지 말자. 답은 멀리 있지 않다. 작업 기억은 스포츠로도 향상된다**. 배구 경기를 한 사람들은 같은 시간 에어로빅을 한 사람들보다 작업 기억 수행력이 늘었다. 자신과 상대 편 사람들의 위치에 따라 공의 움직임을 예측해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겨울 우리 부부에게는 보드게임이 있다. 제한된 규칙과 어찌 될지 모를 미래를 놓고 최선의 수를 생각한다. 탁상에 놓인 게임 판을 두고 경쟁을 하기도 하고, 다 함께 최선의 수를 찾기도 한다. 보드게임을 많이 하면서 머리가 평소와 다르게 굴러간다. 겨울 휴가가 즐겁다. 







* Ackerman, P. L., Beier, M. E., & Boyle, M. O. (2005). Working memory and intelligence: The same or different constructs?. Psychological bulletin, 131(1), 30.
** Zach, S., & Shalom, E. (2016). The influence of acute physical activity on working memory. Perceptual and motor skills, 122(2), 365-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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