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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닥이 Dec 15. 2019

세미나가 글이 되지 못한 이유

들은 이야기보다는 겪은 이야기를

연구실을 한 달간 쉬면서 세미나와 강연회를 많이 들었다. 출판 만화가·웹툰 작가의 세미나며 유명한 소설가의 글쓰기 강연에 당첨되기도 했다. 세미나를 듣기 전에는 글감을 쉽게 얻을 기회라며 기대했다. 강연 후기만으로 글 한 편은 나올 터였다. 하지만 세미나가 끝나고서는 쉽사리 글이 써지지 않았다. 글 쓸 준비를 하고서도 포기한 적도 몇 번 있었다. 세미나는 글이 되지 못했다. 세미나는 강연자의 이야기지 내 이야기가 아니었다.


세미나에서는 한두 시간 어치 이야기를 듣는다. 강연자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재치 있게 전달한다. 당사자에게 이야기를 직접 듣다 보면 눈으로 문장을 좇을 때보다 내용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세미나가 끝나면 책 한 권 읽은 기분에 뿌듯해진다. 하지만 메모한 내용을 옆에 두고서 하얀 화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손은 커서를 움직일 의지를 잃어버렸다.


현실적으로는 저작권과 프라이버시가 신경이 쓰였다. 저작권법 제4조에 따르면 강연은 저작물이다. 강연 후기 글은 저작권법 제5조에 따라 2차 저작물이다. 원저작자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 2차 저작물을 만든 경우는 저작권 침해다. 앞서 올린 '뇌과학 세미나' 글 두 편은 오리엔테이션 때 담당 교수에게 요약한 글을 인터넷에 올려도 되는지 허락을 받고 썼다. 연사들도 이미 논문으로 출판된 내용을 주로 이야기했다. 한편으로 작가의 사생활이 담긴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법이 문제가 아니라 양심에 걸려서 쓸 수 없었다. 공개적으로 한 발언이었을지언정 그가 없는 자리에서 그의 이야기를 써서는 안 되었다. 내용의 사소함도 변명이 되지 않았다.


엄밀하게 따져서 강연 후기는 강연자의 허락을 맡고 올려야 한다. (https://www.copyright.or.kr/)



더 중요하게는 세미나를 요약해서 올리는 일이 재미가 없었다. '뇌과학 세미나' 글을 쓸 때는 그나마 도전의식이 생겼다. 강연 내용을 독자가 쉽게 읽도록 옮기기가 관건이었다. 전공자를 대상으로 하는 강의를 일반인도 이해할 수준으로 풀어쓰는 일이었다. 내가 먼저 개념을 확실히 알아야 했다. 어떻게 쓰면 사람들이 알아들을지도 고민했다. 하지만 '계약서를 쓸 때는 계약 상대가 믿을만한지를 확인하라'를 주제로 한 장렬한 실패담은 경우가 달랐다. 내 문장으로 추려봐야 맥 빠진 줄거리가 될 뿐이었다. 


내게 남은 것은 강연 당시를 끼적인 낙서뿐


남의 이야기는 내 삶에 남으니, 나는 나 자신의 글감을 찾기로 한다. 내가 들은 강연들은 내 삶을 바꾸었다. 현업 잡지 편집장의 세미나는 어디서도 얻지 못할 진로 정보를 알려주었다. 과학 만화가의 강연을 듣고서는 손이 근질거려 고향에서 타블렛을 가져왔다. 이제 내 이야기를 내 언어로 말할 차례다. 그래서 이번 글 주제는 어느 세미나의 요약이 아니라 '세미나가 글이 되지 못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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