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를 모른다

살아있다는 것은 아마도

by 프레임쇼크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어제와 같은 얼굴이 거울 앞에 서 있다. 아니...같은 얼굴이 맞을까? 어제 입었던 잠옷, 어제 읽다 만 책의 페이지, 어제와 같은 위치에 놓인 칫솔. 모든 것이 연속성 안에 놓여 있지만 우리는 '나'라는 존재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도 변함없이 이어질 것이라 어쩌면 착각하며 살아갈지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를 모른다. 기록은 기억을 배신한다 어제 일기장에 적어둔 문장을 오늘 다시 읽어본다. 예를 들면 '가슴이 터질 듯한 설렘' 혹은 '죽고 싶을 만큼의 막막함'. 불과 24시간 전에 내가 직접 써 내려간 감정들인데도, 오늘의 나는 그 농도를 온전히 복원해내지 못한다. 문자는 남아있지만, 그 문자를 감싸고 있던 공기, 심박수, 온도, 찰나의 눈빛은 이미 휘발되었다.


우리는 과거의 나를 '기억'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낡은 사진첩을 들여다보듯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관찰'하고 있을 뿐이다.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믿었고, 그 선택이 옳다고 확신했고, 그 말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의 나는 그 선택을 고개를 갸웃하며 바라본다. 어제의 나를 이해하려 애쓰지만 완전히 겹쳐지지 않는다. 마치 다른 계절의 나를 사진으로 보는 것처럼.


우리 몸의 세포는 끊임없이 죽고 다시 태어난다. 어제의 나를 구성했던 원자들 중 일부는 이미 내 몸을 떠났고, 그 자리는 새로운 것들로 채워졌다. 물리적으로도 우리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마음 또한 마찬가지다. 어제의 내가 가졌던 굳은 결심은 하룻밤 사이의 꿈에 희석되기도 하고, 어제의 나를 괴롭혔던 고민은 오늘의 햇살 아래서 맥없이 흩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한 몸 안에 여러 개의 시간대를 품고 산다. 어제의 나, 일주일 전의 나, 몇 년 전의 나,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나까지. 그 모든 나는 한 번도 동시에 존재한 적이 없다. 그래서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를 모른다. 배신이 아니라, 진화다. 어제의 나는 그날의 최선으로 살았다. 그날의 두려움과, 그날의 정보와, 그날의 체력과, 그날의 사랑의 크기로 선택했다. 오늘의 나는 다른 조건 위에 서 있다. 조금 더 알게 되었고, 조금 덜 겁먹고, 조금 더 지쳤거나, 혹은 조금 더 단단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제의 나를 지금의 기준으로 심판하지 말자.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느낄 평온을 몰랐고,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왜 그토록 치열했는지 끝내 이해하지 못한다. 어제의 나를 모른다는 사실은 때로 서글프지만, 동시에 커다란 구원이 되기도 한다. 어제의 내가 저지른 실수를 오늘의 내가 전부 짊어질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제의 슬픔이 오늘의 나에게 그대로 전이되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이기도 하다. 어제는 몰랐던 감정이 오늘은 또렷해지고, 어제는 중요했던 것이 오늘은 가볍게 흩어진다.


우리는 매일 아침 '모르는 사람'으로 태어나 새로운 백지를 부여받는다. 어제의 나라는 타인이 남기고 간 흔적들을 단서 삼아, 오늘의 나는 다시 나의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어제의 나를 모르기에, 나는 오늘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연속성이라는 환상을 걷어내고 나면, 비로소 오늘이라는 생경한 축복이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모르고, 심지어 나조차도 나를 모르지만, 그 불투명함 덕분에 우리는 매일 조금씩 더 자유로워진다.


정체성은 하나의 돌덩이가 아니라 천천히 굳어가는 도자기 같다. 어제 빚어 놓은 곡선이 오늘 다시 눌리고 내일은 또 다른 형태로 마른다. 그러니 오늘의 내가 어제를 모른다고 해서 불안해하지 말자. 그건 기억을 잃은 게 아니라 자라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고정된 인물이 아니라 매일 업데이트되는 존재. 어제의 나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그 사람은 이미 그날의 역할을 다 했다. 오늘의 나는 또 다른 선택을 한다. 그리고 내일의 나는 오늘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모르는 나들로 이어진다. 점이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되고 면이 입체가 되듯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사이의 작은 차이들이 쌓여 하나의 생을 만든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를 모른다. 하지만 그 모름 덕분에 나는 계속 생동한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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