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철회 이후 컬리가 택한 것: 성장보다 ‘운영’과 ‘단위경제성’
새벽 6시 반. 현관문 앞에 보라색 박스가 놓여 있다. 어젯밤 11시에 주문한 연어가 아직 차갑다.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 경험 뒤에 컬리의 모든 게 담겨 있다.
2025년, 컬리가 창사 10년 만에 첫 분기 영업이익 흑자를 냈다. 상반기 매출 1조 1,595억 원, 영업이익 31억 원. 영업이익률은 0.3%다. 누군가는 "겨우 그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근데 나는 이 숫자들, 매출이나 거래액 같은 지표만으로는 컬리를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본다. 다른 곳을 봐야 한다.
컬리가 변한 건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안팎으로 여러 요인이 겹쳤다.
외부 환경부터 보자.
이커머스 시장 전반이 성장 둔화기에 접어들었다. 투자 심리도 위축됐다. 2023년 티몬·위메프 사태 이후로는 정산과 유동성이 업계의 핵심 리스크로 떠올랐다. 한편 쿠팡은 로켓프레시로 새벽배송 시장까지 치고 들어왔다. SSG, 오아시스 같은 경쟁자들도 여전히 버티고 있다.
내부 상황도 만만치 않았다.
2022년 IPO를 철회한 이후 수익성 개선 압박이 거셌다. 2023년에는 앵커PE가 리픽싱 조항 발동으로 최대주주가 됐다. 누적 결손금이 2조 2천억 원까지 쌓였다가, 2024년에야 자본잉여금으로 상계했다. 그 와중에 컬리가 한 일들이 있다. 뷰티컬리로 카테고리를 확장했고, 평택·창원 물류센터 투자를 마무리했다. 컬리멤버스를 도입해서 충성 고객 확보에 나섰다. 그리고 2025년 9월, 네이버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컬리N마트'를 오픈했다.
10년간 적자를 내던 회사가 흑자로 돌아선 건 이런 맥락 위에서다.
컬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이 회사가 가진 구조적 제약을 알아야 한다.
냉장, 냉동, 상온. 세 가지 온도대를 분리 관리해야 한다. 입고부터 피킹, 패킹, 배송까지 전 과정에서 품질을 검수한다. 유통기한이 짧은 신선식품은 예측이 틀리면 그대로 폐기다. 이 모든 걸 밤 11시 주문 마감 후 다음 날 아침 7시 전에 끝내야 한다.
이런 구조에서 "거래액을 올려라"라는 목표만 세우면 어떻게 될까. 검수가 부실해지고, 폐기가 늘고, 배송 품질이 떨어진다. 시스템이 무너진다.
그래서 컬리에게는 거래액과는 다른 차원의 성공 지표가 필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컬리의 진짜 성공 지표는 박스당 공헌이익이다.
공식으로 쓰면 이렇다.
// 박스당 공헌이익 = (상품 마진 + 배송 수익 + 광고 기여) - (물류비 + 포장재 + 결제수수료 + 폐기 비용 + 프로모션 비용)
박스 단위로 북극성 지표를 지정해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컬리의 비용은 배송 건수에 비례한다. 냉장 트럭 한 대에 박스가 50개 실리든 100개 실리든 비용은 비슷하다. 물류센터 인력도 마찬가지다. 박스가 많이 쌓일수록 한 박스당 비용이 줄어드는 구조다.
다시 말해, 컬리의 성공은 "얼마나 많이 팔았느냐"가 아니라 "배송 한 건당 얼마를 남겼느냐"로 봐야 한다. 거래액이 아무리 커도 박스당 적자면 팔수록 손해다.
박스당 공헌이익을 높이려면 네 가지가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1) 예측가능 주문량
컬리의 이상적인 고객은 "매주 화요일마다 장을 보는 사람"이다. 예측 가능한 반복 주문이 물류 효율의 핵심이다. 내일 주문량을 알면 재고, 인력, 트럭 배치를 계산할 수 있다. 예측가능 주문량이 늘면 폐기율이 줄고 운영 효율이 올라간다.
2) 박스 구성 효율
신선식품은 마진이 낮다. 자칫하면 폐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문제점은 연어를 사면서 올리브유도 같이 담게 만들고, 다른 상품도 함께 구매하게 하면 해결할 수 있다.
뷰티컬리가 매년 20% 넘게 성장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화장품은 마진이 높고 폐기 리스크도 없다. 같은 박스에 고마진 상품이 붙을수록 박스당 이익이 올라간다.
3) 운영 안정성
컬리에서는 제품이 고객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면밀하게 보면서, 운영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 시간당 피킹 수, 배송 경로당 박스 수, 정시 배송 완료율 등을 확인하면서 예측이 들어맞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측이 틀려서 인력이 남거나 모자라면 컬리에게 비용으로 돌아온다. 데이터를 면밀히 보고 판단할 수 있어야겠다. 운영 안정성을 높이는 건 향후 컬리의 성장을 좌우하는 중요 요인이될 것이다.
4) 품질 보증, 신뢰
클레임율, 파손율, CS 문의율이 증가할수록 컬리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깨진다. 박스를 아무리 많이 보내도 열어봤을 때 상품이 엉망이면 그 고객은 다시 안 온다. 신뢰가 깨지면 예측가능했던 주문이 예측이 불가능하게 된다. 그러면 예측이 틀어지고, 비용이 증가한다.
네 가지가 선순환하면 박스당 공헌이익이 올라간다.
2025년 9월, 컬리는 네이버플러스 스토어에 '컬리N마트'를 오픈했다. 네이버는 컬리 지분 5~6%도 인수했다.
이 제휴가 의미 있는 이유는 앞서 말한 선순환 루프와 연결된다.
네이버를 통해 새 고객이 유입되면, 같은 트럭에 더 많은 박스가 실린다. 같은 물류센터에서 더 많은 주문이 처리된다. 분모가 커지면서 단위 비용이 떨어진다. 물류 자회사 컬리넥스트마일의 3PL 매출이 전년 대비 59% 성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서 핵심 질문은 "물량이 늘었다"가 아니다.
"네이버에서 들어온 주문의 박스당 공헌이익이 기존 컬리 앱 주문과 비교해서 어떤가?"
네이버 채널이 물량만 늘리고 마진은 못 남기는 구조가 되면 장기적으로 독이 될 수 있다. 채널별 경제성을 면밀히 봐야 한다.
컬리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첫 번째 길: 프리미엄 브랜드 강화. 컬리 앱의 충성 고객을 더 단단하게 잡는다. "컬리니까 믿고 산다"는 브랜드 파워를 극대화한다.
두 번째 길: 물류 인프라 회사로 확장. 컬리의 물류 역량을 다른 회사에도 판다. 센터와 트럭의 가동률을 올려 단위 비용을 낮춘다.
세 번째 길: 범용 이커머스로 전환. 상품 수를 늘리고 가격 경쟁을 한다. 다만 이건 컬리의 고정비 구조와 충돌할 위험이 크다.
나는 처음에 컬리가 단기 수익성 개선에 집중하느라 프리미엄 포지셔닝을 흐렸다고 생각했다. 원래 방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봤다.
근데 이 분석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꼭 첫 번째 길만이 정답은 아닐 수 있다. 중요한 건 어떤 길을 가든 그에 맞는 포지셔닝을 명확히 재정립하는 것이다. 애매하게 여러 방향을 동시에 추구하는 게 가장 위험하다. 만약 네이버 제휴를 통해 새로 유입되는 고객이 많다면, 이건 명확한 기회다. 새 고객층의 특성을 면밀히 분석하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린하게 제품을 개선해나가면서 컬리만의 새로운 포지셔닝을 만들어갈 수 있다.
기존 고객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 고객이 원하는 게 뭔지 파악해서 거기에 맞는 가치를 적절히 제공하는 것이 컬리가 다음 10년을 준비하는 방법 아닐까.
2025년, 컬리의 영업이익률은 1% 내외로 추정된다. 1,000원 팔아서 10원 남긴다.
의미없는 숫자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컬리에게는 의미가 있다. 성장과 수익성을 동시에 잡았기 때문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컬리의 성공을 판단하려면 거래액이나 매출만 봐서는 안 된다. 박스당 공헌이익이 개선되고 있는지. 루틴 고객이 늘고 있는지. 운영 효율이 안정적인지. 고객 신뢰가 유지되고 있는지. 이 지표들이 선순환하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네이버 제휴는 이 선순환을 가속할 기회다. 동시에 채널별 경제성 관리라는 새 과제를 던져주기도 한다.
결국 컬리의 다음 10년은 "얼마나 많이 파느냐"가 아니라 "어떤 회사로 포지셔닝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 답은 새로 유입되는 고객들이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음 분기 실적이 궁금해진다.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갈까, 눈부신 성장을 이룰까? 그리고 어떤 이미지로 고객에게 다가갈까? 생각해보면서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