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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별빛 Dec 05. 2020

"멜버른, 이건 봄의 저주야"

"살고 싶으면 멜버른을 떠나십시오"


"에이취~~~~~


코가 간질간질, 눈 안쪽이 살살 간지러워지면

멜버른에 봄이 왔다는 신호다.

피부를 감싸는 따뜻한 공기도 형형색색 화려하게  

옷을 입을 꽃과 나무보다 내 몸은 헤어피버(Hay fever)로

봄을 제일 먼저 반응한다.

헤이피버(Hayfever)는 꽃가루 알레르기인데  봄에 잡초나 잔디가 자라면서 많은  꽃가루가 흩날리다 보니 생기는 증상이다. 호주인 5명 중 1명 꼴로 가지고 있는 매우 흔한 질병이다.


특히 건조하고 추운 내륙성 기후인 멜버른과 호주의 수도 캔버라에 헤어 피버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리 면역력 빵빵하고 건강한 사람도  도시에 3년만 살면 어김없이 헤이 피버에 걸린다는 소리를 우스개처럼 한다.

나 또한 헤이 피버로 고통받는 지인들을 보며 나는 다행이다 라고 자만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해피엔딩은 디즈니 만화에서만 볼수있는 결말인것일까.
그것은 꽤 무서운 얼굴로 멜번살이 딱 3년째 되는 해

나에게도 찾아왔다.



면역력 개선엔 프로폴리스다.
알레르기약을 기본으로 먹고 소금물로 눈도 헹구고

코 흡입기로 약도 넣는다.  작년엔 안약도 썼지만 눈이 벌겋게 충혈되는 증상을 겪은 후 사용하지 않는다.


언젠가 너무 눈이 간지러워 실성한 사람 마냥 모든 내려놓고 죽어라 눈을 비볐다.
나의 고통을 눈에 한풀이하듯 모든 걸 걸었다.
사막에서 마시는 청량음료 가 이렇게 짜릿할까..
잠깐의 카타르시스가 온몸에 흐른 뒤


내 눈은 더 이상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탱탱 부어 있었다.
곧장 병원에 갔다.


살려주세요. 선생님
살고 싶으면 방법은 딱 하납니다.
멜버른을 떠나시면 됩니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
헤어 피버를 끊어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멜버른을 떠나는 것이다.


캔버라에 살던 ,

헤어 피버를 너무 심하게 앓는 8살 사내아이가 있었다.
봄이 오면 그 아이 얼굴은 항상 부어 있었고  울긋불긋했다.
헤어 피버 지수가 너무 심한 날은 호흡곤란까지 겪다 보니 아이 엄마가 매일 울면서 병원을 데리고 다녔다.


급기야 아빠는 회사 때문에 캔버라에 남고

아이와 엄마만 따뜻하고 습한 브리즈번으로 이사를 갔다.
가족이 생이별하는 이유가 헤어 피버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가족이 서로 수만 킬로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가고
그동안 일궈온 삶의 터전과 사업을 다 두고 떠났다는

사실이 안타까우면서 믿어지지 않았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아이 생명을 지키기 위한

부모의 선택은 어쩜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헤이 피버 환자들은 모두 알고 있다.  이 고통의 만기일이 멜버른에 사는 한 죽을 때까지 라는걸...
   

엄마, 눈이 간지러워
엄마, 코가 Blocked 됐어
엄마, 목이 아파


헤이피버로 두눈이 빨개져서 집에 들어오는 아이들을 보면 좋은 유전자를 물려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코가 막혀 잠을 못 자고 콧물을 줄줄 흘리는 아이들에게

매일 약을 먹이며 


"이제 곧 봄이 끝나, 조금만 참아... "


라고 밖에 말해줄 수 없어서 미안하다.

봄의 저주는 매년 그 모습 그대로 우리를 괴롭힌다.
그러나 멜버른의  우울한 겨울이 너무 매서워 헤이 피버의 고통을 금세 까먹고 봄을 또 기다리게 된다.


나보다 더 오랫동안 이 고통을 몸소 겪어야 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멜버른의 봄은 어떤 모습일까.

바닷가에 가도 코끝을 때리는 칼바람이 없어서 좋고
자전거를 타고 쌩쌩 공원을 달리고

초록 잔디가 하염없이  펼쳐진 공터에서

공을 찰 수 있는 봄이 주는 행복과
헤어 피버 고통에서 해방되는 기쁨을

등가교환하자고 하면 아이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만약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을 내밀며


" 엄마는 어떻게 할 거야?"


라고 내게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음..


"그래도 봄"


" 봄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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