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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별빛 Dec 04. 2020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다른 계절, 같은 크리스마스를 외치다>


우리 집은 매년 12월마다 가족 모두 모여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한다.
창고에 보관해둔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내 탁탁 먼지도

털고 세월을 먹어 점차 앙상해져 가는 트리에 꽃술과 오너먼트 등..  화려한 전구를 휘감으면

꽤 그럴싸해 보인다. 그래도 오래 사용해 헤지고

 낡은 트리의 휑한 빈속을 볼 때마다
 
‘아휴... 올해만 하고 내년엔 숱 많은 거로 바꿔야겠다’

마음먹지만 작년에도 그랬듯 아마 올해도 그것은

자신을 찬란하게 빛내고 또다시 창고행이 될 것이다.

아직 11월 달력을 뜯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조른다.

“엄마. Please.... Please...
“ 아직 11월이야. 트리는 항상 12월에 했잖아. 좀 기다려”
“그럼, 크리스마스 때 꼭 비치(Beach)에 가는 거야.    
 약속!!”
 
가뜩이나 빨래 널고 있는 분주한 손을 잡아끌어 기어이 새끼손가락에 고리를 건 후 아이는 총총 내 시야에서 사라진다.
 
작년, 한여름의 더위는 크리스마스도 비껴가질 못했다.
너도나도 비치 의자에 돗자리 가지고 인근 바닷가로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턱에 좀 고생했었다.


해를 가리기 위한 가재보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기 위한 금색, 빨간, 은색의 반짝이 수술들이

바람에 펄럭거린다.

빨간 수영복을 입고 크리스마스 모자를 쓰고
바다를 바라보며 와인 한잔을 손에 든다.
이게 내가 보내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의 풍경이다.

유독 작년 크리스마스는 추웠다는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거기다 대고 차마 더워 죽을 거 같았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처음에 호주에 왔을 때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는
헛웃음이 나올 만큼 어색했다.
 
자고로 크리스마스란 첫눈을 기다리며,

첫사랑에게 고백하는 가슴 떨리는 날이며,

연인들의 사랑에 꽃을 피우는 날이다.


차가운 그대 손을 자신의 주머니에 싸악 넣어 온기를

나누는 것.  구세군 냄비에 딸랑거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눈이 녹아 딱딱히 굳은 미끄러운 길을 종종 걸어야
왠지 자연스럽다.


새하얀 앙고라 장갑 끼고 뜨거운 입김 내며
어묵 한두 개는 입에 넣어줘야 제맛이 나는 그런 날이랄까.
추위와 크리스마스의 따뜻함은 찰떡이다.
 
한동안 이런 나의 기억은 호주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날마다 충돌해 나를 쭈뼛쭈뼛하게 했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크리스마스가 한여름이었던
우리 아이들은 다를 것이다.
크리스마스엔 가짜 수염을 길게 턱 밑까지 내리고

민소매에 빨간 반바지 입은 산타할아버지가

허허거리며 선물을 나눠줘도 하나도 이상해 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는 더운 날이며 예배가 끝나면

당연히 가족과 함께 바닷가에서 놀다가

바비큐를 하는 날이 되는 것이다.

내가 한겨울의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말해주면...

“뭐라고!! 크리스마스가 겨울이라고?”


마치 제시처럼…. Oh MY GOD. Mom 할지도 모른다.


외국을 한 번도 나가지 않고 호주에서만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면 또 어떨까.
만약 한국의 눈 내리는 겨울날의 크리스마스를 본다면,
두꺼운 코트 입고 난롯가에 모여 앉아

생크림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캐럴을 부르는

그들이 얼마나 이상해 보일까.
한겨울의 크리스마스라니 이상해 죽는지 알았다고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을까.
 
이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한 나는

그래서 평화 주위자가 되어야 한다.
가랑이를 쫙 벌려 한 발씩 걸치고 있어야 한다.
어느 편에도 완전히 갈 수 없는 나는

애매모호한 표정으로 중립의 태도를 유지한다.


우리는 같은 행성에 살고 있지만

한편으론 멀찍이 떨어진 공간 속, 

다른 계절을 살아가고 있다.
 
순대 먹을 때 소금이 맞다. 초장이 맞다.

쌈장이 맞다고 우기지 말자.

나와 다른 것에 순대를 찍어 먹는 사람도 이상해 하지 말자.
잘 생각해보면 어떤 것에 찍어 먹어도 순대는 순대고
맛만 있으면 망고 땡 아닐까
 
우리는 같은 지구라는 행성 안에 살고 있고
같은 날, 같은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이 변치 않는 진리가 여전히 우리를 설레게 하는 것은
모두 한마음일 것이다.
 
무엇에 찍어 먹든 간에 순대는 맛있고
우리는 배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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