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su Sep 05. 2019

자연박물관 필로리 정원

Filoli Garden

지난 2년간 주말마다 열심히도 다녔다. 아기띠를 매고 3시간 하이킹을 하기도 하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데리고 미술관에 가기도 했다. 두살이 채 안된 아이에게 스키를 태워서 슬로프를 내려오기도 했고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아 끼니도 거른채 몇 시간 동안 모래놀이를 하기도 했다.


주말마다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공원으로 놀이터로 뮤지엄으로 동물원으로 부지런히 다녔다.

주변의 많은 엄마 아빠들이 뮤지엄이나 동물원등의 멤버십을 끊기 시작했다. 비싼 입장료와 비교할때 보통 세네번 정도만 가면 이득인 멤버십은 우리를 유혹했지만 나는 최대한 아인이와 새로운 여러곳을 가보고 싶어서 다양한 리스트를 늘려나갔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에 더 즐겁게 반응하는지가 궁금했고 사실 주말 위주로 놀러다니는 우리에게 멤버십이 얼마나 이득일지는 알 수가 없었기에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러던 중 우리가 처음으로 멤버십을 끊은 곳이 있는데 그곳은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필로리 정원 (Filoli Garden)이다. 정원? 공원이랑 뭐가 다르지? 꽃이 많이 있는 곳인가? 라는 의문을 품을 수 있을 것 같다. 조경가인 나도 정확하게 설명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원과 공원은 모두 만들어진 자연이지만 쉽게 말해 정원은 개인적 공간이고 비교적 규모가 작은 곳을 뜻하고 공원은 공공에게 열려져 있는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하려고 하니 오늘 방문한 필로리 정원은 265ha로 규모가 상당히 크다. 서울숲과 면적이 비슷하다면 대략 비교가 될 것도 같다. 필로리 정원과 저택은 1917년에 지어져 1975년까지 개인이 소유하다가 the National Trust for Historic Preservation 에 기증되어 공공에게 개방한 역시가 깃든 저택과 정원이다. 개인 정원이 공공에게 개방되어졌으니까 정원의 얼굴을 가지고 공원의 성격을 보이는 곳이라고 하면 이 장소가 설명되려나. 영국 왕실의 정원이 공공에게 개방되면서 처음 공원이라는 개념이 생겨났으니 사실 필로리 정원도 비슷하게 설명 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정원의 특성상 많은 공을 들여 관리되어있고 정돈되어 있는 모습이다. 위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차로 30분정도 걸리는 우드사이드(woodside)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집에서는 차로 15분 정도로 가니 멤버십을 끊는데 거리가 한 몫 하긴 했다.


많은 꽃들과 나무들이 있어 계절과 시간대별로 다른 재미와 매력이 있는 곳. 장미꽃이 만발인 5월의 어느 주말 2살 아인이를 데리고 필로리 정원에 처음 방문했다. 호수와 산자락을 달려 신나게 운전하다보면 지나쳐버리기 딱 좋게 얌전히 열려있는 필로리 정원의 입구로 들어서면 주차장의 올리브나무 그로브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일정한 간격으로 심겨있는 오래된 올리브 나무가 만드는 깊은 나무 그림자 아래 공간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입구로 이끈다. 올리브 나무에 매달려 있는 나무가지로 만든 아트인스톨레이션은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올리브나무아래

들어가기 전이나 나오기 전에 꼭 잊지않고 해야할 것이 있다면 바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공작새를 만나는 것이다. 매표하는 곳 바로 옆 까페테리아의 야외공간에 애완(?)공작새가 있는데  야외테이블에 앉아 커피한 모금, 샌드위치 한 입 먹는 사람들 옆에 공작새를 구경하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이벤트이다. 아인이도 필로리 정원을 다녀와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걸 물으면 한동안 손바닥을 쫙 펼치며 공작새를 이야기하곤 했다 .

야외 까페테리아의 공작새

아인이가 태어나기 전 남편과 둘이 필로리 정원을 방문 했을때는 정원 뿐 아니라 저택 구경도 했지만 아이의 속도에 맞춰 느리게 가는 일정에서는 화창한 날씨, 예쁜 꽃, 나무등 자연에 집중하고 저택 구경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드디어 정원에 들어서면 연못과 수영장의 강한 축을 중심으로 다소 정형적인 정원이 펼쳐진다. 그 축의 우측에는 저택과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고 좌측으로는 층층이 장미, 라벤더, 튤립 등의 다양한 주제 정원들이 펼쳐진다. 뮤지엄에서 미술작품을 하나씩 감상하듯 담벽을 꼼꼼히 채운 식물이 만든 방과 문을 지나면서 색색의 꽃들과 다양한 초록, 흙, 돌, 벌레들을 감상하다보면 여기가 마치 커다란 자연 박물관 같다는 느낌이 든다. 미술관에서 그림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해도 각자 나름대로 감상 할 수 있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영감을 찾는 것 처럼 정원을 바라보며 눈을 휴식하기도 하고 자연의 색과 모양, 구성에 감탄하기도 하고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앉아서 그림을 그리기도한다. 나비와 벌, 새들이 가이드 하는 자연 감상이다  


더 들어가기도 전에 연못에 엎드려 올챙이를 구경하고 개구리를 찾는것 만으로도 재미있는 아인이. 연꽃이 예쁘게 핀 연못가에 한참을 엎드려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 오늘 이렇게 공작새와 올챙이라는 세상의 새로운 생명체를 알게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옆에 처음 만난 친구도 같이 하나가 되어 연못을 구경하고 아빠는 아이 뒤에 바짝 붙어 혹시나 아이가 물에 빠질까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모습은 내 모습과 똑같아 서로 멋쩍게 웃어보인다.

정원을 들어서면 처음 만나게 되는 선큰가든의 연못

한참을 올챙이와 개구리에 대해 눈으로 배우고 마음에 담고 있는 아이를 이내 재촉한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과 아이의 속도에 맞춰 느긋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두가지 생각이 충돌한다. 그래도 아이는 엄마의 재촉에 적당히 장단을 맞추며 정원 곳곳을 산책한다. 여러가지 색의 식물들을 보며 꽃과 나무의 이름을 물어보기도 하고 예쁜 꽃 아래에서 예쁜 포즈를 취해주기도 하며 걸어다니고 뛰어다니는 걸 보는 것 만으로도 다른 세상에 와있는 기분이 든다.


멤버십 덕분이었을까  두 달 뒤 다시 필로리 정원을 방문했고 과일나무에는 배와 사과가 익어가고 있었다. 나무 아래에 쪼그리고 앉아 바닥에 떨어져있는 배와 사과를 하나씩 주워 양 손에 꼭 쥐고 걸어다니다가 집까지 고이 모셔왔다. 필로리 정원에서는 시즌별로 많은 프로그램들이 운영되는데 아인이의 관심에 맞추어 과일나무에서 과일들을 수확해서 모으는 활동에 미리 마크해두었다. 뿐만 아니라 할로윈, 크리스마스 등 특별한 날도 빠지지 않고 이벤트가 있다고 하니 기억해 두었다가 다시 찾아올 예정이다.  


특히 여름에는 매주 목요일마다 재즈나잇, 웰빙나잇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8시 까지 연장 운영을 하는 덕분에 어느 저녁에 다시 가볍게 산책하는 기분으로 다녀오기도 했는데 라이브 음악 연주가 흐르는 해질녘 정원의 모습은 또 다른 곳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초원을 달리는 아인이와 아인이의 친구


지난 주는 저녁 연장 운영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키즈나잇아웃 이벤트에 다녀왔다. 여느때 처럼 정원에 들어서니 미국 친구들이 흔히 하는 야외에서  할 수 있는 작은 게임 장비를 잔디 곳곳에 펼쳐 놓았다. 아인이는 재빨리 배드민턴채와 공을 하나 들고는 네트 멀리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관리자는 배드민턴 채를 들고 돌아다니는 아이에게 친절하게 한마디 걸어주고 지나갈 뿐 철저한 자유 속에 각자의 앞마당 삼아 삼삼오오 그렇게 가족단위로, 아이들끼리 놀고 있었다. 아주 잘 정돈되어 있는 정원을 관리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했을텐데 여느 미술관이나 박물관처럼 그림을 만지지말라고 경고하는 사람도 없고 지켜보는 눈도 없는 자연박물관, 아이들을 포함한 모두에게 기꺼이 열려있는 공간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정원안에 있는 내내 내 뒷마당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으니 아이들도 다른 사람들도 이곳에서는 모두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잔디위에 펼쳐져 있는 간단한 게임 장비들/ 아인이와 함께 걸어가는 관리자  


오늘의 메인 이벤트는 키즈 콘서트인데 우리가 도착했을때 밴드의 가수는 무대 아래로 내려와 아이들과 함께 걸어다니고 춤추고 있었고 아이들은 같이 가수와 함께 무대에 올라가기도 하고 엄마 아빠를 찾아와 간식을 먹기도 하고  무대 옆에서 나오는 비누방울 주변에서 놀기도 하며 콘서트를 즐기고 있었다. 어른들은 뒤 쪽 야외테이블에 앉아 아이들을 구경하고 같이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그렇게 조금은 특별한 저녁 시간을 보낸다.



방문 할 때마다 새로운 필로리 정원은 계절과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나무들과 피고 지는 꽃들 덕분에 끊임 없는 자연 컨텐츠가 충전되는 곳이다. 더불어 풍성한 프로그램과 이벤트는 멋진 세팅속에 더 빛을 발한다. 정원을 놀이터 삼아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고 자연의 변화를 눈으로 배우고 동식물들과 가까워지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이들에게 너무나 값진 경험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원을 구경하는 순서는 없다. 돗자리를 깔고 넓은 초원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한참을 그렇게 있어도 좋고, 정원 곳곳에 숨어있는 예술작품들을 찾아다녀도 좋고, 나무, 풀, 꽃들의 꽃들의 이름을 하나이상 기억하고 나와도 좋을 것이다. 계절마다 어떤 꽃이 피는지 어떤 과일이 익어가는지 자연스럽게 기억하게 될 것이다  


같은 공간에 몇 번을 왔지만 매번 느낌이 다르고 펼쳐지는 프로그램도 다르고 관리하는 사람도 정원 속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서 관리, 운영되고 있는 이곳은 앞으로도 우리집 뒷마당 삼아 자주 방문 할 예정이다. 이렇게 이곳은 우리에게 조금은 특별한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일상의 공간이 되었다.


더 자세한 사항은 웹사이트를 참고해주세요.

https://filoli.org/


더불어 한국에서도 요즘 정원에 대한 관심과 경향이 높아지는 추세이다. 정원박람회나 가든공모전등 국내에서도 정원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다. 2016년 부터 시작되어 매년 가을마다 열리는 서울 정원박람회도 있고 유명하게는 순천 정원박람회도 있다. 하지만 특별한 정원을 찾아가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집 베란다의 작은 화분부터 관찰해 보면 어떨까? 우리 집앞의 작은 정원에 한번 더 눈길을 돌려보면 어떨까?

 


매거진의 이전글 폴란드, 우리 동네 도서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