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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Oct 04. 2019

폴란드, 우리 동네 도서관

바르샤바 빌라누프의 도서관들

#폴란드 의 도서관은 무엇이 다를까?


내 집처럼 편안하게 도서관에 드러누운 아이


지난 한 달 동안, 주중에 단 하루도 빠짐없이 아이와 방문한 공간이 있다면 그곳은 도서관입니다. 5살 둘째는 유치원에 다니는 대신 매일 엄마와 도서관에 방문해서 책을 읽다 옵니다. 우리 가족이 사는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그 중에서도 한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으로 알려져있는 빌라누프구(Urzad dzielnicy Wilanow)에는 구립도서관이 모두 4개가 있는데요, 그 중 집에서 도보로 다닐 수 있는 3곳의 동네도서관을 중심으로 폴란드의 도서관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올드빌라누프의 도서관들; Kolegiacka(좌), Filia Radosna(우)
뉴빌라누프의 도서관; Filia Miasteczko Wilanow

빌라누프의 옆 동네인 우르시노프(Ursynow)나 모코토프(Mokotow)에도 많은 공공도서관이 있지만, 아이와 함께 하기엔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의 동네 도서관이 제일 만만하죠. 빌라누프는 크게 단독주택이 많이 모여 있는 지역인 올드빌라누프와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새로 개발된 지역인 뉴빌라누프로 나눠집니다. 올드빌라누프는 다시 '높다(Wysoki; 뷔소키)', '낮다(Niski; 니스키)'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빌라누프-뷔소키와 빌라누프-니스키 지역으로 나눠지는데요, 뉴빌라누프와 빌라누프-뷔소키, 빌라누프-니스키 지역에 각각 도서관이 하나씩 있습니다. 각각의 도서관은 서로 2km 남짓한 거리로 떨어져 있어 서로 삼각형 모양을 이루고 있어요. 바르샤바 전역의 도서관은 모두 빨간 책 모양의 도서관 마크를 달고 있기 때문에 길을 가다가도 멀리서 저 마크가 보이면 '아, 저기 공공도서관이 있구나.' 하고 알 수 있어요. 가장 가까운 빌라누프-니스키 도서관이 저희 집에서 도보로 5분, 나머지 두 도서관이 도보로 15분 정도 걸립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방문하는 도보 5분 거리의 빌라누프-니스키 도서관


지난 1년간 아이와 함께 도서관을 다니며 느낀 이곳의 특징들은 이렇습니다.



1. 입구부터 어린이들의 공간, 어린이 서가


이미지 출처: Remigiusz Grudzień


한국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에 갈 때, 특히 미취학 아동들을 데리고 도서관에 갈 때면 살짝 눈치가 보일 때도 있었습니다. 어린이도서관이라면 그런 부담이 덜하지만 성인들도 모두 함께 이용하는 공공도서관의 경우엔 입구에서부터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한 번 주의를 주고 나서야 도서관 문을 열었어요. 그런데도 혼자서 신발을 벗는게 어렵다든지 무거운 문손잡이를 미는 게 힘들다든지 어린 아이들에게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부산스러움을 한 차례 겪고 나면 왠지 시선이 내게 쏠리는 것 같고 도서관의 다른 방문객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아이들도 그걸 느꼈는지 종종 혼자서 먼저 문을 연다거나 하지 않고 "들어가도 돼요?"하고 먼저 묻곤 했었지요. 이곳 폴란드에선 처음 도서관에 왔을 때 아이들이 들어가도 되냐고 먼저 물어본 적이 없었어요. 이미 복도에서부터 통유리창을 통해 바라본 도서관의 모습은 흡사 '놀이방' 같았으니까요. 누가봐도 이곳은 아이들의 공간, 어린이들이 환영받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입구에서부터 풍깁니다. 기존에 제가 알던 도서관의 어린이서가는 가장 안쪽, 제일 구석진 자리에 '따로' 마련된 경우가 많았는데, 이곳에서는 어린이서가를 지나치지 않고서는 일반도서 책장으로 갈 수가 없어요.


도서관 입구와 사서데스크 사이에 자리잡은 어린이 서가

사진 속 도서관들은 모두 어린이만을 위한 도서관이 아니라 성인과 청소년을 포함한 모든 연령대를 위한 공공도서관인데도 도서관 문을 열면 꼭 어린이전용도서관 같은 느낌이 있어요. 0세에서 7세 아동을 위한 가장 어린 연령대의 도서들이 모두 입구 바로 옆에 비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빌라누프 도서관 중 가장 큰 규모의 Kolegiacka 도서관에는 동화정원(ogrod bajek)이라는 이름의 별도의 방을 두어 따로 어린이서가를 마련하고 있지만, 작은 규모의 동네 도서관의 경우 이런 식으로 어린이서가를 운영하고 있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신발을 벗고 자유롭게 도서관 안을 활보하며 책을 읽거나 놀 수 있도록 놀이매트, 인형, 어린이의자, 빈백 등이 흩어져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런 도서관에 들어서며 당연히 이 장소의 주된 고객은 어린이이며 여기는 나를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신기한 건 어린 아이들이 많이 모여있어도 크게 소란스럽거나 부산스럽지 않았어요. 사실 도서관 입구와 사서데스크 앞은 출입하는 방문객들과 대출, 반납으로 인해 가장 소음이 많이 발생하는 공간인데, 어차피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이런 소음들과 아이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책 읽어주는 엄마들의 목소리를 그냥 한 공간에 둔 셈입니다. 아이들이 서로를 더 배려하며 조심스럽게 활동할 수 있었던 건, 사서데스크가 어린이서가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저렇게 사서선생님이 눈 앞에 앉아계시면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책을 찢거나 구기지는 못하겠죠?


2. 청소년들의 독서 공간은 또 따로


 폴란드 도서관의 공간은 대상연령 도서에 따라 나눠집니다. 입구에서부터 영유아-아동-청소년-그리고 일반 서가의 순서로 전개됩니다. 제가 방문한 도서관은 모두 공통적으로 0-7세, 7세에서 11세, 12세에서 14세, 그리고 15세 이상의 연령기준에 따라 아동도서와 청소년도서를 구분하고 있는데요, 영유아 어린이서가의 주된 구성요소가 놀이매트와 인형이라면, 청소년 서가의 공간 대부분은 소파와 빈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보통 제가 기존에 방문했던 도서관은 일반 성인들을 위한 독서공간과 아동들을 위한 독서공간, 이렇게 둘로 이분화되어 있을 뿐, 청소년들의 공간을 따로 마련한 경우는 보지 못했는데 이곳 도서관들은 11세 이상의 도서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 따로 편안한 소파와 빈백들을 모아 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이제 내년이면 10대가 되는 저희 큰 애도 사실 책장 앞에 정자세로 앉아 책을 보는 경우는 드물어요. 소파에 누워서, 바닥에 엎드려서, 혹은 상상하지도 못할 기상천외한 자세로 지형지물에 기대어 책을 보기도 하는데요, 그런 자연스러운 모습이야 말로 사실 아이들의 본성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사실 독서는 공부력을 높여주는 효과적인 활동이긴 하지만 공부 그 자체가 아니잖아요. 네모난 책상에 바른 자세로 앉아 책을 읽어야 한다는 건 사실 어른들만의 선입견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누가 봐도 앉아 있기보다는 누워있어야 할 것 같은 모습의 소파와 빈백들이 가득한 공간을 보며, 어떤 환경을 제공해 주어야 아이들에게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지, 즐길 수 있는 독서경험을 줄 수 있을지 이 도서관이 참 많이 고민했구나 하는 게 느껴져서 좋았어요.


Kolegiacka 도서관의 청소년도서 코너
Filia Miasteczko Wilanow 의 청소년도서 코너


제가 아이와 함께 도서관을 방문하는 시간은 대부분 주중 오전이라 도서관에 십대들이 모여 책을 보는 모습은 아쉽게도 본 적이 없어요. 그러나 누가 봐도 책을 읽기에 너무 매력적인 소파와 빈백들이 가득한 공간이라 저도 아이도 한번씩 슬쩍 기대다 옵니다. 폴란드는 위도가 높은 지역에 위치해 있어 한겨울에는 오후 3시면 밖이 한밤중처럼 깜깜해질 정도로 해가 짧습니다. 그래서 도서관과 같은 실내 공간이 꼭 필요하고, 독서 인구도 많은 편입니다. 제가 방문했던 모든 도서관의 바로 옆 건물은 공립학교였어요. 아이들이 하교길에 가장 방문하기 좋은 위치에 있습니다. 가장 개방적이고 오픈된 입구 공간에 있는 어린이서가와 달리 청소년도서 코너는 도서관의 안쪽, 창가와 가까운 공간에 이렇게 아지트처럼 구성되어 있어요. 학교 끝나는 길에 도서관에 들러 이곳에서 조용히 책을 읽다가 한번씩 창 밖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기도 하는, 혹은 친구와 빈백에서 뒹굴며 책에 대한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는 그런 오후를 한 번 상상해봅니다.


소리내지 않고 책을 읽는 묵독을 권장하는 테이블도 따로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른들은 어디서 책을 읽을까요? 이렇게 입구에서부터 알록달록하게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꾸며놨으니 왠지 어른들은 도서관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인 게 아닐까 싶지만, 조용하게 책을 읽거나 개인작업에 집중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 별도의 공간이 또 따로 있습니다. 한국의 열람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인데, 보통 정기간행물들을 모아둔 곳에 따로 사무용책상과 간단하게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두었습니다. 간단한 복사도 하고, 컴퓨터작업도 하고, 커피도 사 마실 수 있어요. 보통은 도서관의 제일 안쪽에 위치해서, 조용하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원하는 방문객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물론 이 공간을 가기 위해서는 시끌벅적한 어린이서가를 지나와야 하지만, 조용한 일반서가를 조심히 지나와야 하는 아이들의 불편과 부산스러운 어린이서가를 지나와야 하는 어른들의 불편. 그 두가지를 비교하면 무엇이 더 나은 공간의 설계일까요?


어른들을 위한 별도의 독서공간
2.5즈워티(약 700원)으로 커피도 사 마실 수 있어요


3. 다양한 놀잇감들이 함께하는 공간


 처음에 폴란드 도서관에 갔을 때 사실 책은 단 한 권도 읽고 오지 못했어요. 아직 폴란드어가 익숙치 않았던 것도 큰 이유였지만 그보다는 도서관에 인형이 많아도 너무 많았습니다. 그것도 크기도, 종류도 다양한 동물 인형들이요. 2살, 4살 아이들의 눈엔 책보다는 집에서 한 번도 가지고 놀지 못한 처음 보는 인형들이 더 매력적이었겠지요. 몇 번 반복해서 도서관을 가다 보니 자기가 좋아하는 도서관인형도 생기고, 엄마가 책을 읽어줄 때면 그 인형을 꼭 껴안은 채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집에 와서도 가끔 "도서관에 있는 그 호랑이 인형은 잘 있을까?" 하며 인형의 안부를 궁금해하기도 해요.

호랑이 인형 잘 있어요
서가 위를 빼곡히 장식하다 못해 박스째 쌓여있는 인형들
나의 독서파트너


처음에는 집 근처에 있는 일부 도서관만의 특징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거의 모든 도서관의 어린이서가에는 이렇게 인형이 있더라구요. 덕분에 아이는 새로운 도서관에 갈 때면 새로운 책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아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인형을 만날 수 있다는 기쁨도 꽤 큰 것 같아요. 어른의 시선으로 보기엔 별 것 아닌데, 아이들에게는 사실 도서관과 친해질 수 있는 큰 계기가 되었구요. 나중에 아이가 훌쩍 커서 더 이상 인형이 필요하지 않은 나이가 되면 도서관에 기증해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새로운 책보단 역시 새로운 인형
청소년 도서 옆에도 찰떡같이 함께하는 인형


인형은 도서관에서 큰 소음을 내지 않고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놀잇감인 것 같아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동물 모양의 빈백이나 소파 위에서 아이들은 자유롭게 도서관을 탐색하며 즐기다 갑니다. 도서관에는 꼭 책만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니 아이들에게 더 매력적인 공간이 된 것 같아요.


여기는 도서관일까 놀이터일까


4. 책은 다양한 공간에 자유롭게 


책꽃이에 질서정연하게 꽂혀있고, 알파벳 순으로 정렬되어 있어 도서검색시스템으로 바로 찾아낼 수 있는 책. 폴란드 도서관의 책들도 대부분 그렇습니다만 어린 연령대를 대상으로 하는 책일수록 이런 시스템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보다는 표지가 보이게 책꽂이 위에 세워두어 인형과 함께 자유롭게 공간을 장식하거나, 책 수레나 책 기차에 담겨 있는 책이 많아요.


통유리창을 통해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어린이서가 공간을 입구에 마련한 라도스나 도서관은 전면에 도서관 이름의 알파벳 책장이 있습니다. 흰 벽돌벽에 책으로 이루어진 도서관 이름 책장은 보기에도 아름다운데요, 그 알파벳 벽장 바로 아래가 0-7세 아동들을 위한 아동도서 책장입니다. 사서데스크 뒷쪽으로는 7세 이상, 11세 이상, 그리고 15세 이상 등의 연령별 분류로 나눠진 청소년 도서 코너가 이어지는데요, 아동도서 책장이든 청소년 도서 책장이든 책장 위는 사서들이 선정한 추천도서가 세워져 있어요.


이렇게 책장 위에 책을 세워서 전시하는 건 세 곳의 모든 도서관의 공통된 특징입니다. 처음에는 '왜 저렇게 책을 세워서 둘까?' 하고 궁금해 했었는데, 도서관에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가만히 살펴보니 그냥 책장에 꽂혀있는 것보다 저렇게 세워져 있는 책을 자연스레 먼저 집어 들게 되더라구요. 연령대와 관계없이 아이들도 어른들도요. 사실 저도 항상 도서관에 들어올 때마다 책장 위에 세워져 있는 책이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옵니다. 자주 가는 도서관에서 한글이 적힌 표지를 발견했을 때는 입구에서부터 '꺅' 소리를 지르며 들어왔어요.

Kolegiacka 도서관 어린이 서가에 세워져 있던 이수지 작가님의 '검은 새 Czarny ptak'

책의 표지가 보여지게 위에 배치하는 책들을 때마다 바뀝니다. 그 주에 있는 도서관 프로그램과 관련있는 책들이 서가 위에 놓여져 있을 때도 있고, 청소년 서가에는 신간 만화시리즈가 다함께 올려져 있을 때도 있어요. 다른 책들보다 더 많이 손이 가고 더 빠르게 대출되는 책인만큼 빈 공간이 생길때마다 사서 선생님들이 새로운 책들로 그 공간을 채워놓습니다.  


청소년 서가 위에 올려진 책들
책장 위 뿐만이 아니라 책장 아래에도 책을 세워서 진열


그리고 책장 위에 손이 닿지 않을 어린 아이들을 위해서는 따로 책수레가 마련되어 있어요. 가장 어린 아이들이 읽을만한(혹은 씹거나 던질만한) 보드북들은 아이들 키에 맞게 낮은 공간에, 그리고 특정 방식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진열되어' 있다고 표현하기 보다는 '쌓여' 있다고 말하는 게 더 자연스러운 방식으로요.


아이들 손에 잘 닿는 위치에 모여있는 보드북
막내가 책을 고르는 1순위 공간인 책 기차
그래도 명색이 도서관인데 이렇게 책을 쌓아둬도 되는... 거겠죠?

그런데 지난 SEE SAW 에서 다뤘던 스웨덴 도서관의 헬레나 고메르 관장님의 강연글을 읽고나니 연령대와 관계없이 헬레나 관장님이 강조하는 공통특징들이 모두 빌라누프 도서관들에도 있더라구요. 최대한 책의 앞면, 표지가 보일 수 있도록 책을 배치하는 첫번째 특성.


특히나 신간(Nowosci)은 항상 앞이 보일 수 있게 배치


그리고 책의 맥락을 기반으로 배치하는 두 번째 특성을 도서관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아동도서를 다루다 보면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매력적인 캐릭터인데요, 캐릭터시리즈물은 저자 알파벳순과 별도로 따로 서가를 마련해두어 진열해 두었습니다. 현지 아이들에게 인기있는 시리즈인 바시아(Basia), 페파피그(Swinka Peppa), 프랭클린(Franklin) 같은 시리즈들을 이 서가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최대한 캐릭터가 나오는 앞표지가 보이는 방식으로 진열하고 있었는데, 어린이 서가에 오는 아이들이 이 책장으로 바로 직진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폴란드어를 잘 모르는 저희집 아이들도 가장 먼저 발길이 닿는 책장이 이곳이에요.

청소년 서가도 비슷한 방식으로 진열되어 있는데, 이런 캐릭터 위주의 진열방식이 돋보이는 곳은 단연코 만화책 코너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프랑스만화인 Tintin도 여기서 만날 수 있었어요.


아동서가(좌), 청소년서가(우)의 모습. 제일 인기좋은 페파피그 책은 텅 비어있네요.
디즈니 책들은 또 따로 모아두었어요. 저희가 폴란드에서 최초로 대출했던 책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5. 다양한 도서관 프로그램과 지역주민들의 모임터


제가 방문한 세 개의 도서관은 모두 문화센터 건물 안에 있는 도서관들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모두 도서관 건물 안에서 열려요. 아이들의 음악이나 발레, 태권도 수업 등도 같은 건물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도서관 입구에 있는 어린이서가에서 수업 시간을 기다리다가 수업에 참석합니다.

도서관 내에서도 자체적으로 많은 독후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영유아 아동들을 위해서는 'Klub Malego Czytelnika(꼬마 독자 클럽)라는 이름으로 매주 5회기의 어린이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도서관에 있다보면 아이들 노랫소리와 다양한 악기소리가 들려요. 그런데 워낙 입구에서부터 놀이방 같은 분위기를 풍겨서 그런지 도서관에서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도서관은 꼭 조용해야 하는 공간이라는 건 저만의 고정관념이었을까요.


사진출처: Biblioteka Publiczna w dzielnicy Wilanow Facebook
도서관 안에 위치한 소강당
도서관 연계 독후활동과 어린이서가에 장식된 작품들


도서관에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은 굳이 책과 꼭 관련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위인들은 어떤 어린시절을 보냈을 지 상상하며 여러가지 비일상적인 행동들을 해보는 Zwykle Niezwykle Dzeci(가끔 평범하지 않았던 아이들) 프로그램이라든지, 단체로 도서관에서 몸을 쓰는 보드게임을 하는 Magiczny dywan(마법 카페트) 프로그램을 보면 꼭 도서관이라서 이루어지는 활동들은 아니니까요. 게다가 이 모든 프로그램이 강당에서만 수업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와 함께 주중 오전에 도서관에 있다보면 정말 많은 학교와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도서관에 방문하는데요, 때로는 도서관 전체를 아이들의 수업 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오히려 제가 '이래도 되나? 다른 방문객들에게 너무 피해가 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아이도 이 풍경이 낯선지 "저 언니 오빠들은 왜 저렇게 도서관에서 시끄러워?" 하고 물어볼 때도 있어요. 아마 주중 오후에 청소년이나 일반 성인 방문객들이 늘어난 시간에는 볼 수 없는 풍경일 지도 모릅니다.


사진출처: Biblioteka Publiczna w dzielnicy Wilanow Facebook


 그 외에도 도서관과 문화센터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모든 가족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많이 제공하고 있어요. 지역행사나 축제 소식도 가장 먼저 도서관 알림판에 붙어 있기 때문에 궁금한 소식이 있으면 항상 도서관에 오면 됩니다. 도서관에 오가는 길에 문화센터 회원들의 미술작품을 감상하거나, 즐거운 축제소식을 접하는 건 또 하나의 소소한 재밋거리기도 해요.




6. 책도 바꿔가고 보드게임도 빌려가세요.


도서관에서는 종이책 말고도 다양한 컨텐츠들을 빌릴 수 있는데요, 다른 여타 도서관들과 비슷하게 오디오북, e-book, 영화DVD 등을 빌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외에 조금 특이한 건 보드게임을 빌려준다는 거에요.


아이들 나이에 따라 3-4세용, 5-6세용, 7-9세용, 그리고 그 이상으로 구분해 놓았습니다
폴란드에서만 만날 수 있는 바르샤바 모노폴리도 있어요

보드게임을 빌릴 때는 책과 다르게 손실을 대비해 약간의 보증금을 맡겨야 하지만, 파손이나 분실없이 반납하면 보증금은 무리없이 되돌려받을 수 있으니 무료로 이용가능하다고 보면 됩니다. 처음에는 그냥 별 생각없이 '와, 보드게임을 빌려주다니! 돈 굳었다.'하고만 생각하며 신나서 게임을 빌려갔어요. 그런데 이번 글을 준비하며 도서관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도서관이 보드게임을 빌려주는 건 아이들의 여가시간이 '비디오게임이나 영상물'이 아닌 보다 더 알찬 컨텐츠로 채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도서관이 가장 바라는 건 그 시간이 '독서'로 채워지는 것이겠지만, 모든 아이들에게 독서가 여가시간의 1순위의 활동이 될 수 없다는 현실을 알고있기에, 대안이 될 수 있는 다른 유익한 활동들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지요. 온갖 자극적이고 화려한 영상물이 넘쳐나는 현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게 무엇일지 지역공동체가 함께 고민하고 그 중심엔 도서관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도서관을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드는 서비스는 바로 도서관에서 책을 교환할 수 있다는 거에요. 집에 있는 더 이상 보지 않는 책들을 헌책방에 판매할 수도 있지만 도서관에 가져와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도서관에 있는 책 교환수레에 자유롭게 책을 기증하고, 또 원하는 책이 있으면 부담없이 집으로 가져올 수 있어요.


수요일(좌)의 책교환 책장과 금요일(우)의 책장. 이틀 새에 많은 책들이 바뀌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활발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도서교환 책장은 도서관 입구와 사서데스크 사이, 가장 왕래가 활발하고 접근성이 좋은 자리에 있어요. 도서관에 오다가다 한번씩 들여다보며 혹시 새로운 보물을 발굴할 수 있을까 눈을 번뜩여봅니다. 책들도 하나같이 깨끗하고 깔끔해서 기증한 이의 마음씀씀이를 느낄 수 있어요.


Zabierz mine do domu. 나를 집으로 데려가 주세요:) 라고 쓰여 있어요.





엄청 규모가 크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가까이 있고 부담없이 즐겨갈 수 있는 도서관이 있다는 건 아이들에게 큰 축복인 것 같습니다. 지난 몇달 동안 거의 매일같이 도서관을 드나들면서 이 작지만 알찬 공간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으로 이루어진 장소라는 걸 느낄 수 있었거든요. 도서관에서 본 풍경들은 하나같이 따뜻하고 정감어린 것들 뿐이었어요. 어린 아이를 둔 부모는 유모차를 끌고 도서관에 와서 어린이 서가에 모인 다른 엄마들과 가볍게 담소를 나누고, 때로는 서가 바로 앞에 앉아있는 사서선생님마저 그 수다에 동참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근처 초등학교 학생들이 모여 도서관투어를 하는 날, 알록달록한 책표지로 장식된 어린이 서가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밝은 표정, 그리고 그 아이들을 보며 뿌듯해하는 사서선생님도 볼 수 있었구요. 저도 도서관에서 늘 만나던 익숙한 꼬마들, 엄마들을 만날 때마다 가볍게 눈인사를 하며 그런 정감어린 추억들을 하나둘씩 만들어나가는 중입니다.'


폴란드에 와서 아이와 함께 매일같이 도서관을 방문하면서 특별히 마음에 든 점이 있다면 아이가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한국에서보다 더 편안하고 즐겁게 받아들이는 게 참 좋았어요. 입구에서부터 어린이서가가 있다보니 아이가 이곳을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인식하는 게 좋았고, 저도 아이를 동반한 엄마의 입장에서 더 환영받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널브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경직되지 않은 자유로운 공간 속에서 기존의 뭔가 딱딱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좀더 놀이에 가까운 자유로운 활동으로 '독서'를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좀더 자주 도서관을 방문하고 싶어지고, 그래서 아이들이 좀더 책과 더 가까운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도 생깁니다. 


아이들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우리 동네 도서관. 이런 도서관이 있어서 먼 폴란드에서의 생활이 조금은 더 즐거워졌어요. 모국어 책이 가득한 공간에서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좀 더 풍성한 일상을 만들 수 있겠죠? 한국에도 아이들을 위한 이런 즐거운 공간이 좀 더 많아지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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