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su Oct 14. 2019

추억의 뒤뜰야영

Family Campout

어릴적, 가족들과 함께 여름 휴가를 떠나 바다나 계속 산기슭에 텐트를 치고 잤던 기억, 학교 운동장이나 강당에 모여 친구들과 함께 뒤뜰야영을 했던 추억은 아득하지만 아직도 마음속에 설.레.임.이라는 세글자로 선명하게 남아있다. 아이가 태어나고 지난 2년 반의 시간동안 아이와 함께 이것저것 많은 것을 해보았지만 아직까지 감히 도전해보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아닌

야외취침, 바로 캠핑이다.
알록달록 운동장을 채우고 있는 텐트

아무래도 아이가 한 살이 될 때까지는 잠자리와 먹는 것에 제약이 많다 보니 아이와 텐트에서 자는건 꿈도 못 꾸고 있었다. 아이가 의식주의 제약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다고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 틈틈이 기회를 엿보고 있던 와중에 마침 옆 동네 공원에서 일박이일로 캠핑을 하는 이벤트가 있다고 하여 두 달 전쯤 미리 등록을 했다. 일인당 20불의 돈을 내고 등록을 하면 등록 사실 조차 잊어버릴 때 쯤  유의사항, 준비할 것들이 나열된 이메일이 줄지어 도착한다. 체크인 시간과 방법, 주차, 음식 선호에 대한 것도 조사하고 (예를 들면 핫도그를 먹을래. 햄버거를 먹을래. 베지테리언이니? 등을 조사한다.) 기념품으로 나누어 주는 티셔츠 사이즈도 물어온다.  미국은 이메일이 활성화 되어있어서 회사는 물론이고 아이가 다니는 프리스쿨(유치원)과 이런 행사까지 모든것을 이메일로 의사소통한다. 주최측에서 신경써서 캠핑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아 어느정도 안심이 되고 그동안 쌓아두었던 설렘이 밀려온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은 개인적으로 준비할 것들을 잘 챙기는 일이다.

캠핑 3주 전 쯤 도착한 안내 이메일


벌링게임 패밀리 캠프아웃 (Burlingame Family Campout)이라고 불리는 이 행사는 8월 중순에 있는 연례 행사로 이번이 다섯번째 라고 한다. 벌링게임 시 (Park and Recreation Department) 에서 주관하고 주변 기업 (Facebook, The Bohnerr Group) 스폰서와 비영리 단체의 자원봉사를 통해 저녁과 아침이 제공되고 무비상영, 키즈존, 캠핑에 빠질 수 없는 캠프 파이어와 스모어과자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이 알차게 준비되어 있다. 우리는 텐트와 침낭만 준비 해서 시간 맞춰 장소에 집합하면 된다. 캠핑 기본 장비도 없는 우리는 캠핑 며칠 전 REI 라는 곳에 가서 캠핑 용품을 쇼핑해 보기로 했다. REI는 등산, 수영, 스키, 카약, 카누, 사이클링 등 각종 스포츠 용품을 파는 곳으로 겨울 시즌이면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스키를 빌리기도 한다. 대부분의 캠핑 장비도 대여가 된다고 하니 이번에 한번 이용해 보기로 결정했다. 침낭부터 야외용 접이식 의자, 텐트 등 캠핑이 세계도 무궁무진 하구나. 아인이는 매장에 전시되어 있는 텐트에 들어가고 침낭에 누워 보며 벌써 신났다. 아이와 함께 준비물을 함께 준비하는 과정을 공유하니 이것 또한 캠핑 이벤트의 일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REI.매장에서 캠핑 용품들을 구경 중인 아인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는 캠핑날! 캠핑은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한다. 이메일에 따르면 하루 전날 미리 캠핑 장소에 가서 기념품 티셔츠와 도시락, 참가자 팔찌등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당일의 혼잡을 대비해서 아마 근처에 사는 일부의 사람들은 미리 패키를 받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당일에 도착한 우리도 여유롭게 접수하고 패키지를 받고 텐트를 칠 수 있었다. 야구장 전체에 알록달록 텐트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잡고 채워진다. 날씨도 온화하고 춥지 않은 캠핑의 밤이 될 것 같아 다행이다. 우리와 함께 온 세가족 모두 텐트를 치고 오순도순 둘러 앉아 형광색 팔찌를 두르고 저녁을 받으러 간다. 메뉴는 핫도그 또는 햄버거. 가장 미국스러운 햄버거를 골라서 아인이랑 나누어 먹었다. 친구들과 밖에서 먹는 저녁은 역시 꿀맛이다.

캠핑 저녁 메뉴는 햄버거

캠핑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벌링게임 워싱턴 파크에 속해 있는 한 고등학교의 야구장이다. 야구장의 한 부분은 키즈존으로 꾸며져 있다.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바운싱하우스, 페이스페인팅등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잔뜩 펼쳐지고 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비눗방울! 키즈 관련 행사에 가면 많은 경우 비눗방울을 불어주는 사람이 오는데 오늘의 비눗방울은 종류도 다양하다. 아이들을 담고 갈만큼 큰 비눗방울이 나와서 하늘을 조심스럽게 날아가기도 하고 작지만 수많은 비눗방울이 무리를 지어 하늘로 날아오르기도 한다. 비눗방울이 터지면 연기가 나오는 등의 내가 봐도 신기하고 재미있는 비눗방울 쇼가 펼쳐진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모두 한마음으로 비눗방울의 움직임에 따라 함성을 지르고 폴짝폴짝 뛴다. 다들 신나서 정신 없는 와중에 언니 오빠 사이에서 꺅꺅 소리를 지르며 열심히 비눗방울을 구경하던 아인이에게 아저씨가 비눗방울을 내밀었다. 아이에게 눈높이를 맞춰주는 아저씨에게 새삼 고마웠다.

아인이에게 비눗방울을 건네는 아저씨

아직 만 두살인 아인이가 영화를 보기에는 아직 어려 야외 영화 관람은 뒤로하고 같이 온 친구들과 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네 친구들도 만나고 주변의 사람들과도 눈짓으로 인사하며 그렇게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조금 더 가까워져 본다. 하늘의 달과 별을 보며 점점 고요해지는 텐트에 누워 있다보니 가까운 동네에 사는 같이 아이를 키우고 살아가는 가족들과 어쩐지 연결되는 기분이다. 미국에 살다보니 한국과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그립고 타지에 혼자 붕 떠 있는 이방인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사회에 속해 있음을 느끼고 가까이 살고 있는 이웃들과 만나고 소통할 수 있난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특별했다.

일상의 장소였던 공원이 캠핑 그라운드로 변하는 경험을 통해 많은 준비를 해야만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캠핑에 쉽게 접근 할 수 있었고 동네에서 지나치던 이웃들과 일박이일을 함께 함으로서 같은 추억을 공유할 수 있어 더욱 가까워 지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자랄때만 해도 같은 아파트 단지의 친구 언니 오빠 동생들과 함께 자랐는데 요즘은 점점 이웃사촌이라는 개념이 사라지는 듯 하다.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동네 공원이나 거리를 하루쯤 특별한 곳으로 탈바꿈 하고 주변 이웃들과 인사라도 건넬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생긴다면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네를 그리고 세상을 좀 더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밤새도록 텐트주변을 지켜주시고 계신 경찰 아저씨 덕분에 마음 편하게 발 뻗고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당연하게 누리고 살고 있는 것들에 감사하게 되는 순간이다.


온전히 아인이와 캠핑을 경험해보자는 취지로 참여한 이벤트였지만 어른들에게 좋은 추억이 더해지고 많은 걸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 의미있는 일박이일 이었다. 늘 그렇듯 아이를 통해 세상을 복습하는 기분으로 오늘도 아이와 어딜갈까 힘차게 궁리해본다.


우리의 첫 캠핑! 그래서

매우 성공적!
아빠따라 정리도 척척 돕는 아인

덧, 이벤트후 설문을 위한 이메일이 도착했다. 3분이 채 안걸리는 설문조사를 기분 좋게 마치고 내년의 뒤뜰야영을 벌써부터 기대해 본다.


캠펭후 이메일로 도착한 설문조사의 일부분
매거진의 이전글 자연박물관 필로리 정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