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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파이 Nov 08. 2023

여보, 아이패드는 이제 나한테 넘겨요.

이젠 정말로 용기를 내볼까.

주말 저녁이 되면 거실 식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우리 가족은 각자 할 일을 한다. 주말을 마무리하는 평화로운 시간. 나는 주로 책 속에 숨겨놓은 핸드폰을 보고, 남편은 아이패드로 책을 읽고, 아이는 일기를 쓴다. 아이의 학교 숙제는 주 1회 일기 쓰기다. 보통은 아이가 일기를 다 쓸 때까지 함께 자리에 앉아 있는다. 아이는 엄마아빠와 함께하는 그 시간을 사랑한다. 그래서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걸까? 한 줄 쓰고 엄마, 한 줄 쓰고 아빠.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잔소리는 늘어간다. 

“이제 입 닫고 빨리 써. 언제 쓰고 잘래?”

“엄마!!! 일기 쓰기가 그렇게 쉬운 줄 알아?”

“엄마도 학교 다닐 때 다 해봤어. 말대꾸할 시간에 얼른 써!! 늦게 자면 키 안 커!!!” 

아이는 자기 나름의 기준이 있다. 노트 한쪽 반 분량.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항상 거기 표시를 해놓고 다 써야 노트를 덮는다. 칸트가 따로 없다. 그렇게 분량을 정해놓으니 글의 진도가 더디다. 결국 내가 입에 모터를 달아야 일기는 꾸역꾸역 끝이 난다.




글쓰기를 시작했다. 전부터 브런치를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여기에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20대 이후로는 글을 써본 적이 없다. 내 적성은 분명 문과였지만, 교차지원으로 이과 전공을 했고 그 이후로 쭉 이과형 인간의 삶을 살고 있다. 이과와 글,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이다. 글을 왜 써야 하는지부터가 시작이었다. 

나는 왜 글을 다시 쓰게 되었을까. 

대학 졸업 후, 나와 어울리지 않는 전공과 일 때문에, 내 눈은 계속 돌아가 있었다. 이것저것 참 많이도 시도를 했지만, 뜬구름잡는 나날들이었다. 결국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면서, 방황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마음 한 켠은 무언가를 위해 비워져 있었다. 아이를 낳고는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과몰입을 했다. 읽는 책의 대부분은 육아서가 되었다. 아이는 가만둬도 잘 큰다는데, 내 마음엔 늘 작은 새 한 마리가 있었다. 늦어도 걱정, 빨라도 걱정, 다칠까 봐, 넘어질까 봐 전전긍긍, 나처럼 엄마한테 상처받을까 봐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아이를 대했다. 너무 소중해서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파닥파닥거렸다. 마음은 그랬지만, 들키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 아이를 보며 충만해졌던 내 마음은, 아이가 내 손을 떠날수록 허전해졌다. 미래에 난 외동아들을 둔 시어머니가 될 텐데, 이러다 내 아들 앞길 막는 엄마가 되면 큰일이다. 사랑할수록 놓아주라고 했던가. 그래, 나를 다시 찾아야겠다.



글쓰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한번 쓰려고 마음먹으니, 내 속에 있던 뭔가가 나를 건드려 키보드를 움직이게 했다. 머릿 속에 타자기라도 들어있는 양, 술술 써졌다. 하고 싶은 말이 이렇게나 많았나. 짧은 글 한편 쓰는데 뚝딱, 30분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내 글을 쓰고 나니, 다른 사람들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감동적인 글, 공감 꾹 누르고 싶어지는 글,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글, 웃긴 글, 슬픈 글. 나를 울고 웃게 하는 글들이 생각보다 너무나 많았다. 그들의 다음 글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꼬박 며칠을 눈이 시뻘게지도록 남들의 글을 읽고, 다시 내 글로 돌아왔다. 아니, 이렇게나 초라한 글이었다니. 아이에게는 남들과 비교하지 말라고 매번 이야기하는데, 지금 보니 비교라는 건 무의식의 영역에 있는 거였다. 생각해 보니 싸이월드나 블로그를 할 때도 그랬다. 글을 써놓고 왠지 부끄러워서 공개했다가 비공개로 돌린 게 다반사였다. 긴 글은 특히 더 그랬다.


글을 고치는데만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면서, 그나마 문장을 읽었을 때 걸리는 게 없는 정도가 되었다. 글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렇다고 계속 붙잡고 있어 봤자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읽지 않은지 어언 몇 년, 쓸거리는 한가득인데 표현이 고등학생 일기장에서 멈춰있었다. 차라리 감수성 가득했던 그때가 나았을까? 어휘와 문장은 오히려 퇴보한 듯, 참신한 구석이라고는 없다. 10년을 지문이 닳도록 핸드폰만 손에 쥐고 있던 결과인가. 이렇게나 어려운 글쓰기를 초등학생에게 빨리빨리만 하라고 강요를 했다니, 양심도 없는 엄마였다. 아이가 일기 쓰는 옆에서 책 속에 요망하게 핸드폰을 숨겨놓을게 아니라, 책을 보는 시늉이라도 했음 어휘 하나라도 건졌을 텐데. 지나가버린 허송세월이 후회된다.




맘에 안 드는 글을 더 이상 어찌하지 못해 작가 지원을 했다. 경건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려야 할 것 같아, 괜히 책상 정리도 하고 집청소도 하고 오랜만에 온 집안 정리를 했다. 싱숭생숭한 마음이 꺼내어질까 두려워 평소엔 건드리지도 않던 베란다 창고도 괜히 치웠다. 그리하여 이 주만에 번쩍번쩍해진 집에서 브런치 작가 합격 소식을 받았다. 남편과 아이가 작가님이라고 치켜세워주는 통에, 마치 우리 집 거실 식탁을 처음 샀을 때처럼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지만 작가 타이틀을 달았다는 설렘도 잠시, 글을 발행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합격만 하면 내 인생이 금세 달라질 줄 알았는데, 진짜 시작점은 여기부터였구나. 나에게는 두 가지 미션이 주어졌다. 글을 발행할 것, 그리고 주 1회 글을 쓸 것.


이젠 글을 쓰느라 지문이 닳을 차례가 되었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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