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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파이 Jan 22. 2024

10년간 한 번도 친정에 내려가 본 적이 없다 1

명절에 며느리가 친정에 먼저 가면 생기는 일

결혼한 지 세 달 남짓 된 어느 구정 무렵. 첫 명절이라 약간의 긴장과 함께 시댁의 구정 문화를 알아보고자 시어머니께 구정을 어떻게 보낼지 여쭤봤다. 사실, 남들 하는 대로 음식 몇 가지 정도 하고, 시댁 갔다 친정 갔다 하면 되겠지 하는 가벼운 생각이었다. 시어머니는 나름의 질서를 잡고 싶은 생각이 있으셨을 것이다.

"어머니, 설날은 어떻게 지내요? 음식은 뭐 할까요?"


얘, 나는 결혼 10년 동안 한 번도 친정에 내려가 본 적이 없다.

말문이 막혔다.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저런 말씀을 하시는 의도가 뭘까. 다정하신 성격의 시어머니는 내가 시댁을 갔다가 4시간 거리의 친정을 가면 힘들까 봐 걱정을 하시는 거였을까? 아니면 그 당시 장롱면허였던 며느리를 차에 태워가는, 큰아들의 고생길이 훤히 보여서 하신 말씀이었을까? 그날 저녁, 남편에게 물었다.

"어머니 아까 하신 말씀 들었어? 결혼하고 10년간 한 번도 친정을 가본 적이 없으시대."

"응 맞아. 우리 엄마 진짜 그랬어."

"참 대~단하시다."

"걱정 마.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나의 대단한 말투를 듣고서, 선택적 눈치발달자인 남편은 그 길로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명절 전날 저녁에 시댁을 갔다가 당일에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친정에 가는 일정으로 통보를 했다. 그리고 우리는 시어머니의 서운함과 원망 어린 눈초리를 뒤로 하고, 명절에 시댁과 친정을 왔다 갔다 하는 신세가 되었다. 남들 다 그렇게 하니,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도 참 피곤한 일이었다. 시댁은 집과 1시간 거리, 친정은 4시간 거리였으니까. 명절에 친정에 갈라치면 도로가 주차장이 되는 바람에 8시간은 족히 걸렸다. 어머니의 선견지명대로 친정에 가기는 체력적으로 정말 힘든 일이었던 것. 그렇다고 결혼했다고 명절에 친정을 안 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우리는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명절이 두 번이니, 한 번은 시댁, 한 번은 친정에 가기로 일단은 '우리끼리' 합의를 봤다. 이번 추석까지는 얼마 안 남았으니 지난번처럼 그대로 하고, 추석 지나고부터 다음 구정이 될 때까지 타이밍을 잘 봐서 얘기를 꺼내보자는 게 우리의 계획이었다. 오래전부터 명절을 시댁위주로 지내오신 시어른들을 설득시키기는 아마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추석을 잘 보내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추석이 되기 며칠 전, 당시 내가 임신 8개월쯤 되었으니 만삭의 임산부였던 셈. 추석을 앞둔 나와 다정하신 시어머니의 대화.

"어머니, 이번 추석은 어떻게 할까요? 저번처럼 식구들 먹을 음식 좀 이것저것 해갈게요."

"만삭의 임산부한테 일 시켰다는 소리 안 듣고 싶다, 얘. 이번에는 해오지 말고, 간단하게 지내자."

"그럼 과일이랑 어머니 좋아하시는 디저트류 좀 사가지고 갈게요.

"그래. 그런데, 친정은 이번에도 갈 거니?"

"가야죠. 지금도 자주 못 가는데, 애 낳으면 더 못 갈 것 같아서요"

"그 몸으로 어떻게 친정을 간다는 거니. 아유 참."

"걱정 마세요. 차 타고 슬슬 가면 돼요."

"운전은 누가 하고?"

"네? 남편이 해야죠. 저 아직 운전을 못해요."

"난 만삭 때까지 운전했었다, 얘. 몇 시간이나 걸리니?"

"모르겠어요. 한 8시간? 9시간? 명절에는 차가 막히더라고요."

"아유 참. 이번에는 집에서 쉬지 그러니?"

"의논해 보고 결정할게요. 일단 추석 전날 봬요."

어머니는 왜 또 친정에 간다는 걸 말리시는 걸까? 이것은 나에 대한 걱정인지, 어머니가 그렇게 해왔으니 나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인 건지, 내 소중한 큰아들에게 그렇게까지 운전을 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인지. 나 혼자 머릿속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쯤, 어머니께 연락이 왔다.


너네 이번엔, 친정에 먼저 다녀와라.


어머니께서 친정에 먼저 다녀오라고 하신다. 그런데 말씀하시는 말투가 '내키지 않는데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는 식이셔서, 나도 선뜻 그렇게 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괜찮다고 몇 번을 사양했다. 어차피 친정을 먼저 가냐, 시댁을 먼저 가냐는 나에게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너무 완강하게 말씀하시는 바람에 계속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친정에 먼저 다녀오지 않으면 우리를 혼내실 기세로 몰아붙이셨다. 애초에 나는 갈등을 싫어한다. 갈등 상황이 생기면 일단은 피하는 게 나의 방식이었다. 거절을 거절한다는 어머니의 불편한 배려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어머니의 계산으로는, 친정을 번개처럼 다녀오고 시댁을 오면 (내 아들이) 푹 쉴 수 있겠다는 거였다. 덤으로 만삭의 며느리를 명절에 친정 먼저 보내준 개념 있는 시어머니가 되고 싶으신 것 같기도 했고. 그렇게 우리는 추석 전날, 억지로 친정에 먼저 가게 되었다. 연휴엔 언제 가도 막히는 친정 가는 길. 추석 전날, 남편의 근무가 끝나고 느지막이 출발을 하자, 밤 12시가 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친정 부모님과 인사만 겨우 나누고 급한 대로 잠자리에 들었다. 너무 피곤하니 내일 하루는 쉬었다가 그다음 날 시댁을 가야겠다고 남편과 이야기한 후였다.


기진맥진한 우리는 다음날 아침 즉, 추석 당일 아침 10시경 느지막이 일어났다. 부모님은 피곤에 절어 보이는 우리를 깨우지 않으시고 푹 자게 놔두셨다. 엄마가 분주하게 아침 겸 점심을 먹으라고 이것저것 차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깨자마자 한 일은 시댁에 전화를 드리는 일이었다. 억지 배려였지만, 그래도 추석에 친정에서 푹 자고 일어난 아침이라 감사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어라? 내 전화를 안 받으시네? 남편이 전화를 했다.

“너희 아직 출발도 안 했니? 친정을 먼저 갔다고 해서 시댁을 오지 말란 말이 아니다.”

“엄마, 우리 어젯밤 12시 넘어서 도착했어요. 이제 일어나 아직 밥도 안 먹었는데. 아니, 이건 오자마자 바로 출발하라는 거예요?”

“그럼 영원히 오지 마라.”

단단히 화가 나신 어머니는 마지막 말을 끝으로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안부전화를 드리고 밥숟갈이라도 뜨려던 우리는, 갑자기 진행된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감도 안 왔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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