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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파이 Jan 23. 2024

10년간 한 번도 친정에 내려가 본 적이 없다 2

2024, 새해 같지 않은 새해를 맞이했다

어머니는 단단히 화가 나셨다. 친정의 물리적인 거리는 생각하지 않고 싶으신 듯했다. 이렇게 불편한 배려를 해주시고는 당연히 바로 시댁으로 올 것을 재촉하는 게 너무나 화가 났다. 우리는 오늘 갈까, 내일 갈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점심이 지나자 슬슬 불안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둘 다 부모님 말씀을 거역해 본 적이 없는 K장녀 K장남이라 쉬고 있어도 쉬는 게 아니었다. 친정에 있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을 바에야 가서 부딪쳐 보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정 부모님께는 화난 마음을 애써 티 내지 않고, 직장에 일이 터져서 내일 출근해야 할 것 같아 얼른 가봐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다. 그렇게 우리는 가슴에 바윗덩이를 짊어진 채로 정신없이 차를 달렸다. 오는 차 안에서 이성적인 남편은 기왕 이렇게 된 거 이번이 기회라고 했다. 우리가 천천히 진행하려고 했던 바 즉, 명절 한 번은 시댁, 한 번은 친정을 가는 걸 말씀드리자고 했다. 화가 잔뜩 나신 어른들을 어떻게 설득시킬 수 있지. 그보다 나도 지금 화가 났는데, 얘기나 제대로 될까. 냉정하고 이성적인 남편을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밤이 다 되어 시댁에 도착하니, 시베리아 한복판에 있는 듯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어머니는 우리 입에서 잘못했다는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눈치였다. 시부모님의 화가 난 얼굴을 보니, 좋게 얘기하고 싶었던 마음은 싹 달아나 버렸다. 너무나도 피곤하고 지치고 짜증만 났다. 만삭에 8시간씩 차로 왔다 갔다 하는 건 그렇다 쳐도, 잘못한 게 없는 채로 제 발로 여기까지 찾아와 왜 다 큰 어른인 우리가 혼나길 기다려야 하는지. 왜 우리에 대한 존중은 없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까지 피곤한 명절을 보내야 할 거면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지만, 행여나 목구멍으로 나올까 말을 삼켰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명절은 없는가? 왜 며느리가 희생을 해야 시부모님은 행복하다고 생각을 하시는 걸까? 협상을 해보자던 남편도 무거운 분위기에 짓눌려 숨이 턱턱 막혔는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있었다. 다들 아무 말이 없자, 내 머릿속에서 생각은 더욱더 많아져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침묵을 깨고 가장 먼저 서러움이 폭발한 건 나의 임신 호르몬이었다.



"저희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이러세요? 친정 먼저 갔다 오라고 한건 어머니잖아요. 다섯 번도 넘게 거절했다고요, 아시잖아요. 근데 왜 기어이 가라고 보내주시고는 화를 내시는 거예요!"

"그러면 친정에 도착해서 연락해야지, 그게 당연한 예의 아니니?"

"밤 12시 넘어서 도착했는데 어떻게 연락을 해요!!"

"그럼 그 전날 출발 할 때라도 연락을 해야지, 아니면 가는 차 안에서라도 전화 한 통 못하니? 연락도 없이 그냥 가는 법이 어디 있니? 기다리는 사람은 생각도 안 하니?"

"어차피 추석날 전화드릴 거였는데, 출발하기 전에 꼭 연락을 드려야 해요? 친정 가기 전날에도 잘 다녀오라고 이미 통화하셨잖아요!! 어떻게 매번 가기 전에 연락하고, 가서 연락하고, 출발할 때 연락하고 이걸 꼭 지켜요?"

"너네가 이번만 그런 줄 아니? 평소에 전화도 잘 안 받고, 꼭 무슨 일이 있어야만 만나고. 그런 서운한 점들이 한두 개인 줄 아니?"

"제가 핸드폰을 항상 갖고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전화를 꼬박꼬박 다 받아요? 그렇다고 부재중 전화 보고 무시한 것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저희 한 달에 한 번씩은 만났잖아요?"

"연락이 제때제때 안 되는 게 얼마나 답답한 일인 줄 아니?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이라고 해도 꼭 누구 생일이 있거나 명절이거나 해서 만난 거지, 그냥은 만나면 안 되는 거니?"

"왜 이렇게 만나고 연락하는 걸 강요하세요? 시간이 필요하다고요, 시간이."

"그러면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하겠다는 거니?"

"좀 자연스럽게 하면 안 되나요? 편해지고 자주 보면 되잖아요!! 왜 이렇게까지 화내시는지 이해가 안 가요!!"

 

임신호르몬과 갱년기 호르몬이 맞붙었다. 어쩌다 보니 호르몬의 지배를 가장 많이 받는 두 여자의 대결이 되었다. 밖에서 한 번도 누구랑 큰소리내고 싸워본 적도 없던 내가, 그 상황에서는 나도 모르게 울면서 하고 싶었던 말들을 두서없이 막 쏟아냈다. 당황하신 어머니 역시 말문을 열기 시작하셨고, 갑자기 서로 서운함을 성토하는 자리가 되어버렸다. 친정 먼저 다녀온 것에 대해, 명절에 대해 얘기할 예정이었던 나는 다 잊어버리고 본질을 한참 비껴가는 시어머니 말씀에 변명하듯 울분을 토해냈다. 얘기할 타이밍을 보고 있던 남편은 임신한 아내와 갱년기인 어머니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란함에, 화가 가중이 되어 내내 씩씩거리고 있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질라. 일단 가자면서 다시는 시댁에 발도 안 붙일 것처럼 내 손을 잡아끌고 문을 꽝 닫았다. 그 길로 우리는 시댁을 빠져나와 집으로 갔다.




사실은 누구의 잘못이랄 것도 없었다. 어머니와 나의 기준이 달랐을 뿐이다. 아들 둘만 있으신 어머니는 며느리가 들어오니 딸이 생긴 것처럼 설레셨고 며느리와 빨리 친해지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자주 연락하고 자주 만나길 바라셨던 거였다. 나는 누구와도 친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타입이라, 속도를 늦추고 싶었던 것일 뿐이다. 그 대상이 시어머니니까 더 어려웠던 거고. 그렇게 서운했던 것들이 어머니의 마음속에 몇 달간 쌓이고 쌓여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노력했던 최선이 절대 어머니의 양에 차지는 않았을 테고, 어머니도 나를 챙겨주고 배려해 주셨던 부분이 많이 있었는데 무심한 며느리는 피드백이 약했다. 그러다가 이번엔 배려라 생각하셨던 부분들이 무색해지면서, 호르몬들의 폭발과 함께 대참사가 일어난 것이었다.


남편은 태세전환이 빠른 사람. 나를 멋지게 데리고 나와서는, 발을 동동 구르며 초조해서 밤새 한숨도 못 잤다. 아마 이성이 돌아온 남편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 댓바람부터 남편은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렇지만 명절마다 시댁 갔다 친정 갔다 양쪽을 다 왔다 갔다 하는 건 너무나도 힘들다, 엄마 때랑은 시대가 달라져서 친정을 안 갈 수는 없다, 그러니 제발 양가를 명절마다 번갈아가며 한 번씩 가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다. 밤새 생각을 많이 하신 다정하신 어머니도 이성적인 남편의 말을 듣고 오랜 대화 끝에 결국 승낙을 하시고, 앞으로는 구정대신 신정에 시댁에 오라고 마지막 통보를 하셨다.


그 이후 어머니와 어떤 대화를 하고 관계를 회복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마도 죄송하다는 얘기와 함께 어색한 화해의 과정이 있었으리라. 하지만 확실한 건, 폭발하듯 얘기했지만 어쨌든 의견 교환을 하고 나니 서로의 생각을 알게 되어 훨씬 관계가 부드러워졌다는 사실이다. 어머니는 나의 성격을 인정하고 나를 좀 더 조심스럽게 대하게 되셨고, 나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어머니께 좀 더 자연스러워질 수 있도록 노력하게 되었다. 물론 시간이 갈수록 호르몬들이 더 이상 날뛰지 않게 되어 저절로 해결이 된 부분도 있었고.


우리는 끼인 세대여서, 순종적이기만 했던 어른들과 개인주의적인 MZ세대 사이에서 두 세대의 특성을 다 갖고 있지만 어느 쪽의 특성도 뚜렷하게 나타내지 못하는 애매한 세대인 것 같다. 나이만 범위에 포함되는 무늬만 MZ세대. 그래도 이런 투쟁 아닌 투쟁(?)의 과정을 거쳐 명절에 양가를 한 번씩 번갈아 가게 되는, 내 친구들 중에서는 최초로 민주적인 명절을 보내는 며느리가 되었다.   




그 뒤로도 오랜 기싸움이 있었다. 구정을 되찾고 싶어 하는 어머니와 그걸 철저히 무시하지 못하는 나 사이의 애매한 구정 쟁탈전. 시어머니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시며 한 번은 가볍게, 또 한 번은 진지하게 명절만 다가오면 말씀을 하신다. 나는 들은 척도 했다가, 못 들은 척도 했다가 추석과 바꾸자며 협상 카드를 내밀었다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리 대처한다. 그리고 상황이 심각해질 것 같으면 남편에게 토스해 해결하도록 하는 게 나의 포지션. 어떻게 얘기를 해도 한 번씩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서운함은 나오기 마련이니까. 어머니의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이번 신정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시어머니께서 올해 신정에는 못 만날 것 같다고 말씀을 하신다. 시할머니께서 아프셔서 요즘 정신이 없으시다. 도와드릴 건 없냐니까, 일단은 날짜를 미뤄 만나자고 하셨다. 구정 얘기를 안 꺼내시는 걸 보니, 이제는 정말 <추석+신정세트>에 적응하신 것 같다. 아니면 며느리의 또 한 번의 거절에 맘 상하고 싶지 않으신 것 같기도 하다. 잠깐 '이번엔 구정에 뵐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다음에 또 이어질 기싸움의 연장에 도리질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올해 처음으로 세 가족의 새해를 맞게 되었다. 항상 시댁 식구들과 함께하다가 우리 셋이 새해를 맞으니, 홀가분하고 좋기만 할 줄 알았는데 뭔가 허전한 기분마저 들었다. 한참 늦은 신정맞이지만 시댁 가져갈 갈비도 재놨고, 아이와 함께 어머니 좋아하시는 쿠키도 구워서 가져가볼까 한다. 그리고 내년 신정엔 꼭 함께 새해를 맞이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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