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코파이 Jan 25. 2024

오늘 오후, 저랑 미술관 가실래요?

DJ 초코파이입니다

<opening>

한겨울에도 피는 꽃이 있다는 걸 아시나요? 이렇게 춥고 건조한 날씨에 자기 세상을 만난 듯 만개한 꽃을 보고 있으면 생명이 가장 활짝 피어나는 시기는 다 제각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봄, 여름, 가을에 피는 꽃들이 있듯이, 겨울에 피는 꽃도 있기 마련이니까요. 겨울에 제주도를 가게 된다면, 까멜리아힐에 들러 가벼운 산책과 함께 동백꽃을 보고 오세요. 눈이 오는 날이면 더 좋겠지요. 새하얀 눈 속에서 빨갛게 핀 동백꽃의 생명력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그 모습이 얼마나 도도하고 위엄이 있는지, 쫙 펼쳐진 설경 속 크리스마스 마을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드실 거예요.(음악)


<인사>

안녕하세요. 요 며칠 계속되는 한파에 잘 지내고 계시죠? 저는 오늘의 DJ 초코파이입니다. 첫 곡은 이미자 님의 동백아가씨 들어보셨습니다. 동백아가씨가 그리움에 울다 지쳐 꽃잎이 빨갛게 멍이 들었다는 가사가 인상적이네요. 옛 노래들을 듣다 보면, 의외로 가사가 서정적이고 절절한 시를 읽는 것 같을 때가 많아요. 요즘의 감성과는 또 다르죠.


<코너 소개 및 시작>

오늘은 대학에서 서양미술을 전공하시고 동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시는 한유정 교수님과 함께 미술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에요. 짐작하셨겠지만 opening으로 동백꽃 이야기를 한 이유가 있지요. 어릴 때부터 부유한 환경에서 지원을 받고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자라, 살아생전 인정받고 유명해진 화가들도 많지요. 하지만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화가들은 시련이 있었죠. 한겨울의 시련 속 아름답게 핀 동백꽃처럼, 인정받지 못하고 찬밥 신세로 지내다가 나중에서야 꽃을 피우거나 죽어서 인정받은 경우도 많답니다. 오늘은 봄, 여름, 가을을 추위 속에서 지내다가 겨울이 되어서야 비로소 꽃을 피운 화가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커피 한 잔 들고 만나요.




<미술관 가는 가벼운 발걸음>


#1. 인사와 소개


DJ : 교수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한 : 안녕하세요. 시간이 금방금방 가네요. 2024년이 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월 중순입니다.

DJ : 그러게 말이에요. 이번 시간에는 이름이 생소한 여류 화가를 소개해 주신다고 들었어요.

한 : 네. 오늘 소개해드릴 화가는 스웨덴 여성 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1862-1944)예요.

DJ : 아, '20년 동안 나의 작품을 공개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거의 100년간 미술계에서 사라졌다고 하는 그분 말씀하시는 거죠?

한 : 맞습니다. 그녀는 2만 6천 쪽 이상의 글과 1300점의 그림을 유산으로 남겼지만 사후에 그걸 20년간 비공개했어요. 


<왼쪽 : 바실리 칸딘스키, 오른쪽 : 힐마 아프 클린트>


#2. 힐마 아프 클린트가 재조명을 받게 된 계기


한 : 자, 들어가기 전에 질문부터 드릴게요. 세계 최초의 추상화가는 누구일까요?

DJ : 칸딘스키 아닌가요? 제가 잘못 알고 있나요?

한 :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어요. 1911년 바실리 칸딘스키가 세상에 공개한 추상화가 처음이라고 알려져 있었거든요. 칸딘스키조차도 죽을 때까지 그렇게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2018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미래를 위한 그림'이라는 제목으로 힐마 아프 클린트의 회고전이 열려요. 그때 처음으로 그녀의 작품들이 공개되고 나서, 칸딘스키보다 5년이나 앞서 거대한 추상화를 그렸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어요. 미술계에서는 미술사를 다시 써야 하나 말이 나올 정도의 충격을 받게 되지요.   

DJ : 그도 그럴 것이 1900년대 미국은 추상화 열풍이라고 할 정도로 추상화가 유행이었으니까요.

한 : 네 그렇습니다. 사실, 힐마 아프 클린트가 주목을 받지 못했던 건 시대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어요. 미술사에서 중요한 화가들이 다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미적인 능력이 떨어져서 그런 걸까요? 아니지요. 미대 진학률을 보면 여자가 훨씬 높아요. 하지만 지금까지도 인정받는 예술가들은 거의 다 남자입니다. 최근에 들어서야 밀려난 예술가들에 대한 재조명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중에 힐마 아프 클린트도 있었던 거고요. 힐마 아프 클린트는 지금껏 미술사 밖에서만 존재하던 인물이었는데, 이제야 재조명받기 시작한 겁니다.



#3. 20년간 작품을 공개하지 말아 주세요.


DJ : 아 그렇군요. 그러면 교수님, 힐마 아프 클린트 작품의 특징이 뭔가요? 그리고 그녀가 20년간 작품을 공개하지 말라고 한 이유는 뭔가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한 : 그녀의 작품들을 보면요. 상당히 영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았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초기 작품들은 풍경화나 초상화가 대부분이고요. 1880년 여동생의 죽음을 기점으로 작품스타일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영적인 부분이 그림에 나타나기 시작하는데요. 특히, 1906년부터 1920년까지 열 점의 대형 연작이 그녀 그림의 전성기라고 볼 수 있어요. 형상들이 화가가 그릴 수 있는 것보다 더 빨리 머릿속에 떠올랐다고 합니다. 심지어 커다란 캔버스에 달걀노른자를 섞은 템페라 물감으로 큰 붓을 이용하는 등 다른 재료와 방식을 이용해 그리기도 해요.



DJ : 영적인 부분이라니, 종교적인 색채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한 : 글쎄요. 어떤 특정 종교라기보다도, 본질적인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DJ : 그렇군요. 알듯 말듯하네요.

한 : 힐마는 그러한 자신의 작품들을 이해해 주고 조언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독일의 철학자 루돌프 슈타이너를 꼽아요. 그는 발도르프 교육이론으로 알려진 독일의 철학자였죠. 그는 신의 계시를 믿는 신지학자로 출발해 나중에는 인식의 중심에 인간이 서 있다는 인지학을 창설해요.

DJ :  발도르프라고 하니 아이 키우는 엄마들에게 익숙한 이름입니다.

한 : 네. 그녀는 루돌프 슈타이너에게 그녀의 작품을 보여주며 조언을 구하지만, 그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했어요. 노인이 된 힐마는 평생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그림을 걸만한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하게 되죠. 아마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지금은 내 그림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DJ : 선견지명이 있었네요. 시대를 앞서간 작품과 더불어 시대를 앞서간 생각까지. 새삼 그녀가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4. 힐마의 작품에 대한 엇갈리는 평가


한 : 한쪽에서는 미술사에 갑자기 뛰어든 힐마의 작품을 영매라고 하며 폄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아주 오래전부터 수태고지를 다룬 고대 작품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작품들이 얼마나 신성하다며 인정을 받았는지요.  

DJ : 이런 부분도 기존의 질서를 깨뜨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인한 반응이 아닌가 싶어요. 어느 세대에서나 기득권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데, 미술계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도 재미있는 미술이야기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 감기 조심하시고 다음 주에 뵐게요.

한 : 네. 오늘도 재밌게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losing>

DJ : 저희와 함께해 주시는 교수님 덕에 지루할 수 있는 미술사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어요. 힐마 아프 클린트, 시대를 앞서간 미술가의 이야기였어요. 그녀의 작품이 공개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미술계에서는 뜨거운 감자인 것 같네요.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에서, 이미 60만 명의 사람들이 그녀의 작품을 보고 갔다고 하죠. 미술계는 그녀를 미술사의 울타리 안으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계속 울타리 밖으로 내몰고 경계할지 궁금하네요.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훌륭한 화가들을 울타리 밖으로 내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속히 그녀의 전시를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 중 인생의 회전목마> 들으면서 이 시간 마칠게요. 저와 함께한 미술관 산책이 오후의 활력이 되었길 바라며,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https://youtu.be/DV-V-ftDNqQ?si=hNj1ynk9GRc-Ogtb




<이미지 출처 : 마노 엔터테인먼트>

매거진의 이전글 사연은 사랑을 싣고, DJ 민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