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돈을 아끼지 않게 된 사연
"저는 여행 정말 좋아해요. 대학생 때 학교 쉬고 4달씩 여행한 적도 있어요. 그래서 졸업이 1년 늦었어요."
"와, 저도 여행 좋아하는데. 전 군대 가기 전에 중동, 이집트 여행을 했었어요. 그 여행이 너무 강렬했어서 이후로 제 인생에서 여행은 빼놓을 수가 없어요."
소개팅의 어색했던 분위기가 여행 이야기로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같은 취향을 발견한 순간, 그가 나의 인생메이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나처럼 여행을 좋아하는 남자는 이 사람이 처음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여행지가 아닌 곳에서 여행 좋아하는 남자를 만난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중동이라니. 보통 사람들은 돈 주고 가라고 해도 안 간다는 그곳, 내전이 일상인 곳 아니던가. 날아다니는 총알이며 폭탄을 피해 목숨 걸고 중동을 돌아다니며 종군기자와 게스트 하우스의 방을 함께 썼다고 했다. 또 그는 여행이야기에 반짝거리는 내 눈을 보며 시리아에서 지천에 널린 체리를 따먹은 이야기, 이집트 어딘가에서 쌍코피 터지며 스쿠버 다이빙을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의 여행기를 듣고 있으니, 내 앞의 탐험가가 점점 더 내 운명의 짝처럼 느껴졌다. 결혼 10년 차인 지금, 남편이 그런 곳에 혼자 가겠다고 하면 등짝 스매싱을 사정없이 날릴 일이긴 하지만.
나도 만만치 않았다. 사춘기가 뒤늦게 온 탓에, 나의 길을 찾겠노라 대학교 4학년에 졸업을 1년 앞두고 휴학을 했다. 졸업하면 진로가 정해져 있는 과에 입학해, 뻔히 보이는 나의 길이 노잼으로 느껴졌다. 분명 내가 하고 싶은 나의 길이 있을 텐데. 학교는 즐겁게 다녔지만, 진로 고민으로 속앓이만 몇 년째. 그전 해에 갔던 인도 여행의 여파가 커서였는지, 교수님들께 혼나가며 부모님 가슴에 불을 질러가며 휴학을 하고 장장 4개월의 여행길에 올랐었다. 거기서 평생 할 고생을 다하면서도, 나의 삶에 이렇게 주체적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스스로 감탄하고, 울고 웃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휴학을 한다고 나의 길이 찾아지는 건 아니었고 결국 현실에 순응하게 되었으나 그때 내가 한 뼘 두 뼘 성장했다는 건 확실하다. 그 후로 얌전히 회사를 다니게 되었지만 주말이면 동료들과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니는 게 일상이었다. 휴가에 월차를 앞뒤로 최대한 붙여서 해마다 친구들과 해외를 나가기도 했다. 적금은 안 들어도 여행 가려고 친구들과 매달 얼마씩 모으는 여행계는 필수였다.
여행을 좋아하는 남녀가 만나버렸다. 여행의 순기능을 잘 알고 있었기에 서로에게 어떤 이끌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자는 남자와 사귄 지 1달도 안되어 친구와 스페인을 갔다. 2주 갔다 온다더니 어찌하다 보니 3주로 늘었다. 얼떨결에 남자는 연애 초반에 생이별을 경험하고서 그리움에 몸부림치다가 눈물 젖은 편지를 몇 통이나 쓰게 되었다. '우리 결혼하면 일 년에 한 번씩 같이 꼭 해외여행 가자'고 그때부터 약속을 했다.
신혼여행을 시작으로 우리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결혼하고 3개월 있다 임신을 하는 바람에 두 번째, 세 번째 여행은 태교여행이 되었다. 아기 태어나면 놀러 다니기 힘들다는 핑계였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나고는 돌이 채 되기도 전에 제주도를 갔다 오고, 두 돌이 될 때까지 기다려 유럽을 갔다. 아기 두 돌 전까진 비행기표를 따로 안 끊어도 되어서, 두 돌 되기 10일 전에 출발하는 표로 예약을 했다. 그렇게 아이는 독일에서 두 돌 생일을 맞이하고 엄마 아빠와 장장 40일간 자동차 여행을 하게 되었다. 큰 계획은 세우고 출발했지만 사정에 따라 계획은 계속 수정이 되었다. 아이는 낯선 상황을 싫어하는 성향이었는데도, 엄마아빠와 함께하는 안정감 때문이었는지 엄마아빠가 너무 즐거워해서였는지 이내 적응해서 우리와 함께 여행을 즐기게 되었다. 모든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었고 힘들 때도 있었겠지만 즐거운 여행으로만 기억에 남아있는 걸 보면, 여행엔 망각의 기능도 있는 것 같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우리에게는 폐업의 아픔이 선물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변해가는 상권을 모르는 척하고 게으름을 피운 결과였지만, 남편은 왠지 유럽여행도 원망스럽다고 했다. 그나마 한국에 있었다면 어떻게든 대처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와, 여행이 뭐라고 생업도 내팽개치고 갔다 온 걸까 하는 자책감에 당분간 우리의 추억은 깊은 곳 어디쯤 묻어놓게 되었다.
다시 여행을 즐기게 된 것은 그로부터 시간이 지난 후였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생활이 다시 여유를 찾게 되자, 그동안 외면해 왔던 여행 욕구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가는 여행은 비행기표를 끊고 숙소 예약을 할 때까지만 해도 아무 감흥이 없었다. 집 떠나면 고생이지, 뭘 굳이 멀리 가야 해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인천공항에 갈 때부터 조금씩 설레기 시작하더니, 라운지에서 컵라면 먹고 면세점 구경을 하고 지루한 비행시간을 견디며 기내식을 먹고 영화를 보는 이 과정을 거치면서 여행 세포는 점점 살아나기 시작했다. 여행지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첫 숨을 내쉬자마자 기억이 났다. 그래, 이 느낌.
여보, 여행 오니깐 살 것 같아.
왜 이렇게 여행을 좋아하냐고 하면 나도 잘 모르겠다. 20대에는 도전하고 경험하는 게 재미있었다. 새로운 풍경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설렘이 발걸음을 움직이게 했다. 40대에 느끼는 여행이란 사실 불편하고 귀찮은 일의 연속이다. 편리한 대로 세팅해 놓은 나의 일상과는 달리, 여행은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새로운 것과 자꾸만 부딪쳐야 한다. 끊임없는 선택을 강요받는다. 그러다 보면 나의 욕구와,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이런 자극이 나에게 '넌 이런 사람이잖아' 알려주고,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남편이 여행을 좋아하는 건 나와는 조금 다르다. 그는 일을 할 때만큼은 일에 푹 빠져있는 일중독자이다. 남편에게 여행이란 이런 바쁜 일상에서의 도피다. 하고자 했던 일들을 마무리해 놓고 여행지에 가서 푹 쉬는 그에게도 여행은 다른 의미에서 신선한 자극이다.
여행의 끝에 항상 다짐을 한다. 여행을 하는 것처럼 일상을 살아가자고. 별 거 아닌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아름답게 포장하는 게, 꼭 여행지에서만 되리란 법은 없지 않은가. 여행지에서는 길 가다 마주치는 병뚜껑조차도 다르게 보이는데. 그렇게 생각해 보니, 작가의 시선은 여행자의 시선과 닮아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영하 작가도 여행의 기술에서 말하지 않았는가. 여행자는 정제된 환상을 경험하고 있다고. 그 정제된 환상을 일상으로 가져와 보리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온 집순이는 설레면서 했던 다짐들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일상은 일상으로만 살아가게 마련이다. 그러면서 또 여행을 갈구하겠지. 그러므로 나같이 심각한 건망증을 앓고 있는 작가에게 여행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일 년에 해외여행 몇 번이라고?"
"우리 다른 취미도 없잖아. 여행은 될 수 있는 한 많이"
여행을 할 때 나는 언제나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낚아챈다.
- 괴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