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맞아?
내가 아는 사람 중 하나는, 캐리어 한개 정도의 짐만 가지고 평생 생활을 했다고 한다. 옷 한두벌, 책 몇 권, 운동화 한벌. 물론 그가 결혼을 하지 않은 싱글이어서 가능한 일이긴 했지만, 결혼을 했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그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물건 하나를 사면 원래 가지고 있던 물건을 버리도록 교육을 받았다. 남편의 미니멀라이프도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진행이 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세식구 한달이상 여행갈 때도 캐리어 세개면 충분하고도 남았다. 인당 캐리어 하나씩. 그렇다면 우리에게 진짜로 필요한 건, 사실은 그 정도의 짐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소비패턴을 분석해 보았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쇼핑몰은 어디인지, 그 외의 소비는 어디에서 나오는지, 어떨 때 소비를 많이 하는지. 일단 나는 온라인 쇼핑을 주로 한다. 하루 핸드폰 사용시간이 3시간 정도인데, 주로 SNS에 접속하고 그 시간 중에 쇼핑이 이루어진다. SNS를 보는 시간은 남들의 삶을 엿보는 시간 + 내게 필요했던 게 뭐였는지 살펴보고 재정비하는 시간이었다. 역시, 소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SNS였다.
SNS의 시작은 싸이월드부터였다. 대학생때 처음으로 싸이월드가 생기고 너도나도 가입을 했다. 싸이월드와 함께 디지털카메라가 유행하면서, 또 다들 과외나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서 디카를 샀다. 디카 사진을 올리고 짧은 글을 쓰고 공개된 일기장에 보여주고 싶은 일기를 쓰고. 좀 더 긴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은 네이버 블로그도 병행했다. 싸이월드와 블로그가 몇년간 한참 유행하다가, 언젠가부터 인스타그램으로 다들 이사를 했다.
내가 SNS를 했던 건 나를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남들이 궁금해서였다. 싸이월드나 블로그에서 보고싶었던 예쁜 일반인들이 다들 인스타그램으로 넘어가자, 나도 따라서 가입을 하게 되었다. 내가 팔로우했던 그들의 삶을 엿보기 위해서였다. 연예인이 아닌 그들의 일상을 알기 위해서는 SNS가 필수였다. 처음엔 그들도 생활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삶과 관심사, 가치관, 패션같은 것들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공통점을 찾는 재미도 있었다. 보여지는 게 다는 아니라지만 공감이 가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내적 친밀감이 쌓여갔다. 본 적도 만난적도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삶에 나의 삶을 함께 투영시키며 동질감을 느껴갔던 것 같다.
그러던 그들이 인스타그램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처음엔 이러려고 그렇게 열심히 SNS를 한거였어?하는 배신감 같은 것도 느꼈지만, 그들이 파는 물건들은 왠지 신뢰가 갔다. 이상하게도 그들의 생활을 알고 있다는 내적 친밀감 때문인지, 그들이 파는 것들도 믿을 수 있는 것들로 느껴졌다. 신뢰라는 게 이런 식으로 쌓일 수도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들은 어쩜 내가 필요한 것들을 그렇게 잘 알고 있는지. 여름이 되면 수영복을 팔고, 겨울이 되면 방한 용품을 팔았다. 내 머릿결을 위한 헤어제품, 건조하다 생각할 때는 가습기, 이유식 만들 때는 이유식 도구며 믹서기, 다이어트 좀 해볼까 할 때는 다이어트 보조제까지. 전천후였다. 나중엔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것이었는데 그들이 판매를 하면 '아, 나 저거 필요했었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진정으로 필요할 때 소비하지 않고, 남들이 '너 이거 필요하지 않아?'라면서 슬쩍 흘리는 걸 나의 필요로 착각한 건 아니었을까.
"여보, 일루와봐. 이 부분 꼭 읽어봐, 꼭이야 꼭. 딱 한 챕터야."
"아 왜또!! 이런 두껍고 지루한 책을?"
"여기 너를 설명한 부분이 있어. 역시, 넌 트렌드리더였어."
"어머, 나라고?"
남편이 내민 트렌드코리아 2024를 보았더니, 나의 소비패턴을 디토(ditto)소비로 설명한 부분이 있었다. 트렌드리더라기에 무슨 말을 하나 싶었다. 역시 10년차 부부답게 내가 좋아하는 포인트를 파악하고 책으로 끌어들이는 능력, 인정한다.
디토(ditto) 소비 : 디토(ditto)는 나도 혹은 이하동문이라는 의미이다. 소비는 원래 복잡한 의사결정을 필요로 한다. 문제인식, 정보탐색의 과정으로 골라낸 후보들 중 대안평가를 거쳐 구매를 실행하는 정교한 과정이다. 그런데 요즘 이런 복잡한 절차를 다 생략하고 특정인물이나 컨텐츠, 커머스를 추종해 나도(ditto)하고 구매하는 소비현상이 늘고 있다. 이런 소비를 디토 소비라고 한다.
디토소비는 과거 스타나 인플루언서에 대한 맹목적인 따라하기와는 다르다. 예전에는 그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가 광고하고 제안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따라 한다는 맹종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나의 가치관에 맞는 대상을 찾고 그 의미를 해석해서 받아들이는 주체적인 추종의 모습을 띤다. 그래서 과거에는 다수가 좋아하는 대중적으로 유명한 스타를 찾아 몰려들었다면, 디토소비에서는 자신의 뾰족한 취향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는 양상을 보인다. 이런 면에서, 디토소비는 수동적인 맹종이 아니라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추종이다. (트렌드코리아 p.320)
소비에 대한 나름의 명확한 철학이 있는 남편은 인스타그램을 오히려 열심히 해서 피드를 올리고 활용하는 방법을 찾든지, 아니면 언박싱 유투브를 시작해보는 게 어떻냐고 제안한다. 트렌드 코리아에 나온 것의 반대로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단다. 디토소비는 결국 새로운 판매기법일 뿐이며, 그 판매기법에 현혹되는 건 바로 '너야 너'라며. 너가 현혹되는 것처럼 남들에게 소비 유도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남편 말이 맞다. 디토소비를 할 게 아니라, 디토소비를 이용하여 판매를 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무슨 수로. 난 디토소비를 유도할 능력이 아직은 없으니, 일단은 나에게 디토소비를 유도하는 인스타그램을 안보기로 했다. 인스타그램을 지워버렸다.
지우는 건 3초, 간단했다. 내 친구들이 인스타그램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아는 사람 중에 인스타그램을 하는 사람은 사업을 하는 몇몇을 빼고는 거의 없었다. 사실 내가 팔로우하고 있는 사람들은 죄다 나랑은 상관도 없는 타인들일 뿐이었다. 그들이 궁금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삶을 못본다고 해서 내 삶에 그리 큰 영향이 가는 건 아니었다. 인스타그램 겨우 하나 지우는 거였지만 남들의 삶을 엿보지 않음으로써 나의 삶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 느낌이 들었다. 전보다 운동을 조금 더 하고 그간 멀리했던 책도 좀 읽고, 필요한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걸로 삶을 다시 채워보려고 했다. 내 삶이 더 괜찮은 삶이 될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긍정적인 변화가 미묘하게 느껴지긴 했다. 하지만 나의 이런 포부와는 별개로 이미 도둑맞아버린 나의 집중력은 쉽게 돌이킬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인스타그램의 금단증상은 한달이 지나면서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느날 의미없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스타그램을 안할 필요는 없잖아. 거기서 얻을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는데, 내 삶에서 굳이 그걸 삭제할 필요가 있나? 문제는 디토소비인거지, 인스타그램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나중에 인스타그램을 유용하게 쓸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고. 인스타그램이 사라진 내 삶에서 허전함이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머릿속은 또다른 선택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전의 편안하고 본능에 충실한(?) 삶과 지금의 불편하지만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확실한 삶. 그 둘은 평행선을 달리다가, 인스타그램으로 궁금증만 해소하고, 디토소비는 하지 않는 것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사실, 인스타그램을 지우는 것 자체가 소비를 줄이는 방법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나의 자제력이었다. 인스타그램은 지우는데 3초지만 다시 설치하는 것도 3초면 된다. 맘만 먹으면 언제든, 다시 설치할 수 있다. 어플을 지우는 건 미봉책일 뿐이었다. 나 스스로 깨달은 나의 문제는 아무 생각없이 인스타그램을 본다는 거였다. 피드를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무아지경의 상태로 생각이 뱀처럼 스르르 빠져나가는 게 문제였다. 생각이 빠진 자리를, 결제버튼을 클릭하는 습관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이런 편리하고 생각없는 소비가 머릿속에서 몇년에 걸쳐 습관화되고 있었다. 인스타그램을 지우면 당장의 소비는 줄여지지만, SNS라는 게 내 삶에서 영원히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 스스로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실행하는 걸 습관화한다면, SNS로 인한 소비를 줄이는 건 시간 문제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인스타그램을 지우지 않고도 소비를 줄이는 법, 결국 그 해결책은 내 안에 있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빌게이츠의 명언을 뜬금없이 새겨본다.
가난하게 태어나는 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지만, 죽을 때 가난한 건 당신의 책임이다. -빌게이츠
<사진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