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락서 Jun 13. 2017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

https://youtu.be/WxVhGedyIGI

잊힌 것과 잊히지 않는 것


  지난날의 일기장을 다시 들추어보거나,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 추억을 되새기다 보면 잊히지 않는 기억들과 까마득히 잊힌 기억들을 마주하게 된다. 전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그 장면 하나하나가 선연히 떠오르는 반면, 후자는 마치 거짓말처럼 기억의 끄나풀조차 잡히지 않기도 한다. 내가 그런 행동을 했었나? 그때는 내가 그랬었지. 현재라는 벤치에 앉아 과거라는 길을 되새기며 삶의 여정을 다시 떠올린다. 당장에 봤던 책의 내용도 떠올리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도대체 우리는 왜 어떤 것은 기억하고 어떤 것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원제: 'The Sense of an Ending')는 이러한 기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억은 얼마나 정확한가?


  한 번 떠올려본다. 내 기억은 얼마나 정확한가? 어린 시절 부모님께 혼이 나고 속상한 마음에 나는 부모님 가게를 나와 언덕길을 올랐다.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교회가 나왔다. 교회 입구에 앉아 나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울었을까. 내 딴에는 부모님이 걱정하실 만큼의 이른바 ‘가출’이었다. 그러나 저녁 날이 쌀쌀하여 결국 옷소매로 눈물 자국을 훔치며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간혹 부모님과 대화를 하다 이 이야기를 하면 부모님은 박장대소를 하면서도 내 어린 시절의 슬픈 그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신다. 정말 그랬냐며 물으시고 무엇 때문에 그리 울었는지 물어보신다. 처음엔 나 역시 놀랐다. 당연히 그날은 내게는 너무도 선명한 기억이라 부모님도 으레 기억하고 계실 줄 알았다.


  작게 보면 우리는 모두 ‘자신의 기억’을 다루는 ‘역사가’이다. 그런데 책에서 에이드리언이 말하는 것처럼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으로 동일한 역사(기억)에 대해 역사가(개인) 간의 오차가 발생한다. 분명히 같은 기억임에도 우리는 조금씩 다르게 기억한다. 그렇게 서로의 기억을 비교 대조하여 따져보면 우리의 기억이라는 것은 얼마나 부정확한가. 주인공 토니처럼 우리는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을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아예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기도 한다.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뭔가 일어났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역사가(개인)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게 과거를 기억하고 재단한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 내가 기억하는 것 중에 무엇을 선택하고 바꾸었을까? 내가 기억하기로 마음먹고 기억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은 무엇일까?



책임의 사슬 어디에 나는 매여 있는가?


  토니는 자신이 했던 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그나마 기억하는 것들도 자기보호본능의 일종으로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한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힌 사건들. 그러나 분명히 우리가 연관되어 있는 사건들.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끝에 토니가 깨닫듯 우리는 모두 책임의 사슬 그 어딘가에 발이 묶여 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한들, 제아무리 책임의 사슬이 길다고 하여도 우리는 결코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항상 재고해야 한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과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 혼란과 책임의 문제에 대해.


‘거기엔 축적이 있다.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너머에, 혼란이 있다. 거대한 혼란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