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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서 Jun 13. 2017

행복한 호밀밭의 파수꾼

호밀밭의 파수꾼 - J. D. 샐린저

https://youtu.be/uGuGcExJf_4

행복한 호밀밭의 파수꾼


  언제든 떠나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곳이 어디든 영원히 그 자리 그대로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지만 경계를 넘어간다는 건 언제고 쉬운 일이 아니다. 새 학기가 도래하면 맞게 되는 두려움. 군 입대, 첫 직장 등. 긴장감으로 속이 뒤집어질 거 같은 그 순간들. 시계바늘이 흐른 뒤 돌아보면 왜 그리도 무서웠을까 궁금해지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 그런 때에는 이런 생각이 난다. “왜 모든 것은 변하는 걸까?” 그 자리 혹은 순간 그대로 변하지 않고 영원할 수는 없을까? 지난날을 붙잡고 변하지 않기를 소망하여도 소용없다. 속절없이 시간은 흐르고 결국 변한다.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이런 변화의 기로에 서있다.


“그렇지만 이 박물관에서 가장 좋은 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제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 유일하게 달라지는 게 있다면 우리들일 것이다. 나이를 더 먹는다거나 그래서는 아니다. 정확하게 그건 아니다. 그저 우리는 늘 변해간다.”


  그렇다. 그저 우리는 늘 변해간다. 그러니 『호밀밭의 파수꾼』을 그저 아이와 어른의 기로에 선 사춘기 소년 ‘콜필드’의 방황정도로만 읽기엔 너무 아쉽다. 청소년일 때만 방황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청소년보다 어린 시기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우리는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서 방황한다. 어떤 진로를 선택해야하는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포기해야하는가? 정답이 보이는 것은 드물고,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그리고 사안에 따라 결과의 책임이 무거울수록 선택은 어려워진다.


  그러니 선택할 시간이 필요하다. 최소한 선택의 기로에 잠시 서서 이쪽저쪽을 볼 수 있는 곳까지 멀리 내다볼 시간이. 그리고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혹은 발자국이 많든 적든 마음을 정하고 걷기 시작하는 것이다. 서툰 콜필드를 너무 나무라고 싶진 않다. 그는 조금 더 신중하고 여려서 남들보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아무 데도 가지 못할 거라고 말했어. 내가 대학을 가고 난 후에는 말이야. 내 말 똑똑히 들어봐. 그땐 모든 게 달라질 거야. 우린 여행 가방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겠지. 알고 지내던 사람들한테 전화로 작별 인사를 하고, 호텔에 들어가면 그림 엽서를 보내야 할 거야. 난 회사에 취직해서 돈을 벌고, 택시나 매디슨 가의 버스를 타고 출근하겠지. 신물을 읽거나, 온종일 브리지나 하겠지. 그게 아니면, 극장에 가서 시시하기 짝이 없는 단편 영화나, 예고편, 영화 뉴스 같은 걸 보게 될 거야. 영화 뉴스라. 그게 또 대단한 거지. 언제나 경마를 보여주거나, 어떤 귀부인이 배 위에서 병을 깨뜨리는 모습이라든가, 침팬지가 팬티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 같은 것만 보여주니 말이야.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넌 하나도 모르고 있어.”


  조금은 특이한 자신을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하니 콜필드는 우울하다. 어디를 가도 거절당하고, 무시당하고,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모두가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본다. 정말 좋아하는 동생 ‘피비’에게만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니. 눈앞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면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혹은 우리 자신이 이런 말을 하는 순간에 상대방이 어떤 표정을 지어주길 바랄까? 내리는 빗속에서 옷이 흠뻑 젖으면서도 회전목마를 타는 피비의 모습을 행복하게 바라보는 콜필드. 그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이다. 그 후 짧은 근황을 전하지만 그때도 무언가 확실히 정해진 순간은 아니다. 그렇게 언제나 콜필드는 방황의 대명사로 우리에게 남는다.



  앞으로 우리내 인생에 얼마나 많은 기로가 존재할까? 언제나 정답을 고르긴 쉽지 않다. 때로는 결정을 내리지 못해 괴로운 순간들이 올 것이다.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순간이라면 부디 잘 이겨내길 바란다. 시간이 필요하다면 가능한 시간을 많이 쓰기를 바란다. 그리고 빗속에서 옷이 흠뻑 젖더라도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피비가 목마를 타고 돌아가고 있는 걸 보며, 불현 듯 난 행복함을 느꼈으므로. 너무 행복해서 큰소리를 마구 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피비가 파란 코트를 입고 회전목마 위에서 빙글빙글 도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다. 정말이다. 누구한테라도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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