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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서 Jun 17. 2017

소유할 수 없는 붉은 꽃

카르멘 - 프로스페르 메리메

https://youtu.be/lNOCsj6TeSs

소유할 수 없는 붉은 꽃


  ‘카르멘(Carmen)'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더라도 들어봄직한 이름이죠. 무엇보다도 조르주 비제가 작곡한 오페라 ’카르멘‘으로 가장 유명합니다. 1875년 첫 공연 당시에는 상당한 비판을 받았으나, 현재는 오페라 하면 빠지지 않는 단골처럼 많이 무대에 오르는 작품입니다. 그런 ’카르멘‘은 사실 조르주 비제의 온전한 창작물은 아닙니다. 원작이 따로 있지요. 작가는 프로스페르 메리메, 작품 이름은 동명인 『카르멘』입니다. 메리메가 1845년 집필한 이 소설은 한글 번역으로 70여 쪽에 달하는 단편입니다. 이 『카르멘』을 이후 비제가 오페라로 각색하여 무대에 올린 것이지요. 그리고 흥미롭게도 원작보다 더 유명해진 것입니다.


  메리메의 『카르멘』은 그리 복잡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페라 역시 메리메의 작품을 기초로 각색을 하였으나 크게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간단히 말해 ‘카르멘’이라는 한 집시와 그녀에게 빠져 비극을 맞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지요.


  작품은 액자식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고고학자인 ‘나’는 우연히 안내인과 협곡에 들어섭니다. 잠시 쉬기 위해서였죠. 그러나 이미 누군가 자리 잡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안내인은 경계하지만 ‘나’는 태연하게 총을 든 상대에게 시가와 음식을 권하며 친해집니다. 안내인은 낯선 남자가 강도일 것이라 생각하여 경계를 풀지 않습니다. 그리고 밤중 몰래 안내인이 이 남자를 신고하러 간 사이 ‘나’는 그에게 호의를 베풀어 미리 언지를 해주고, 남자는 고마워하며 도망갑니다. 그리고 이런 인연으로 후에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이 남자는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게 되는 것이지요. 바로 이 이야기가 『카르멘』의 주 서사가 됩니다.


  남자의 이름은 돈호세 리사라벤고아입니다. 이름에 돈이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남자는 귀족이었지만 어느 날의 싸움의 결과로 고향을 떠나야만 했지요. 직업 군인으로 하사가 된 돈호세는 원사를 바라보는 상황에서 세비야의 담배 공장 경비를 맡게 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를 비극으로 이끌고 갈 카르멘을 만나게 되는 것이지요. 카르멘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카르멘에 대한 돈호세의 묘사가 여기 있습니다.


그녀는 붉은 치마를 입었는데 몹시 짧아서 구멍이 여럿 뚫린 흰색 비단 양말과, 불 빛깔의 리본이 달린 귀여운 붉은색 가죽 구두가 보였습니다. 어깨가 드러나도록 그녀는 만틸라를 벌리고 있었고, 커다란 아카시아 꽃다발을 블라우스 가장자리에 꽂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입 가장자리에도 아카시아 꽃을 물고 마치 코르도바 종마 사육장의 암망아지처럼 엉덩이를 일렁이며 걸어갔습니다.


  처음에 돈호세는 카르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돈호세에게 그녀는 너무 선정적으로 보였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부르면 오지 않고 안 부르면 오는 고양이처럼 카르멘은 도리어 돈호세에게 다가옵니다.


그녀는 입에 물고 있던 아카시아 꽃을 엄지손가락으로 톡 튕겨서 정확히 제 미간을 향해 날렸습니다. 선생님, 그것은 마치 총알이 날아오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어디로 숨어야 할지를 몰랐고, 마치 널빤지처럼 미동도 않은 채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녀가 공장으로 들어갔을 때, 저는 제 발 사이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아카시아 꽃을 보았습니다.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동료들 모르게 그 꽃을 주워 들었고, 웃옷 속에 소중히 간직했습니다. 제 첫 번째 실수입니다!


  그렇습니다. 카르멘은 미끼를 던졌고 돈호세는 미끼를 물어버렸죠. 이후 돈호세의 삶은 모두 카르멘 때문으로 흐르기 시작합니다. 그가 그녀의 아카시아 꽃을 간직하기 시작한 순간, 그가 살인을 저지른 카르멘을 일부러 놓아주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된 것입니다. 그로 인해 감옥에 갇히게 된 돈호세의 승진에 대한 꿈은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리죠. 카르멘을 만나고부터 그의 인생은 완전히 어긋난 방향으로, 비극의 종착점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런 사실을 돈호세가 몰랐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카르멘은 누차 그에게 경고합니다. 자신이 유혹해놓고도 자신과 얽히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하죠. 계속해서 미끼를 거두지 않고 돈호세 앞에 흔들면서도 미끼를 물면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카르멘입니다.


  저는 그녀에게 언제 다시 볼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당신이 좀 덜 멍청해지면.” 그녀가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그러고는 진지한 어조로 덧붙였습니다. “그거 알아? 내가 당신을 약간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는 거. 하지만 이건 지속될 수 없어. 개와 늑대는 오래가지 못해. 만약 당신이 이집트의 법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아마도 기꺼이 당신 색시가 될 거야. 하지만 그건 바보짓이야.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쳇! 아저씨, 당신은 싸게 막는 거야. 당신은 악마를 만났어. 그래, 악마. 악마가 언제나 검은색인 건 아니야. 당신 목을 비틀지도 않았지. 나는 양모로 된 옷을 입었어. 하지만 내가 양인 건 아니잖아.


  돈호세도 알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카르멘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요. 그녀는 위험하고, 그러니 그녀에게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요. 하지만 이미 그는 카르멘에게 빠져버렸습니다. 결국 그녀에 대한 질투로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지요. 카르멘 때문에 위험에 빠진 그는, 카르멘 덕분에 위험을 모면하게 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카르멘과 한 패가 되어버립니다. 울며 겨자 먹기라고 이야기하였지만 카르멘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돈호세는 기꺼이 그리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부터는 영원한 고통뿐입니다. 카르멘과 한 패가 되었지만 카르멘은 절대 누군가가 소유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돈호세는 카르멘을 자기만의 것으로 소유하고 싶어 하죠. 언제나 카르멘은 돈호세의 손아귀에서 도망치고, 돈호세는 그런 카르멘의 뒤를 쫓습니다. 카르멘의 남편이었던 가르시아를 죽이고, 카르멘과 함께 있는 모든 남자를 질투하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돈호세의 광기가 짙어져가는 게 느껴집니다. 문제는 카르멘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알아, 그거?” 그녀가 제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남편이 되고 나서부터 난 당신을 덜 사랑해. 당신이 애인일 때보다 말이야. 난 괴롭힘 당하고 싶지 않아. 특히 명령은 질색이야. 내가 원하는 건 자유로운 것, 그리고 하고 싶은 걸 하는 거야. 나를 막다른 길로 몰지 마. 계속 짜증 나게 하면 착한 남자 하나를 골라서 당신이 애꾸눈에게 해준 것처럼 해주라고 할 거야.”


  새로운 곳으로 떠나 완전히 새롭게 살아가자고 이야기해도 카르멘은 듣지 않습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이 어찌 바꿀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까요. 사실 이쯤 되면 카르멘이 도망갈 법도 하지만, 카르멘은 도망가지 않습니다. 그녀는 돈호세가 위급한 순간에는 언제나 찾아와 그야말로 헌신적으로 돈호세를 위합니다. 도대체 뭘까요? 이 사랑은.


  이윽고 비극이, 파국이 찾아옵니다. 카르멘의 자유로움을 더 이상 참지 못하는 돈호세는 그녀와 함께 죽으려 결심하죠. 카르멘도 알고 있습니다. 보헤미안인 그녀는 애초에 점을 치면서 수없이 그렇게 될 운명임을 알고 있었죠. 참으로 비극적인 사랑입니다.


  “제발,” 제가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봐. 내 말 잘 들어! 모든 과거를 잊었어.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나를 파멸시킨 건 당신이야. 당신 때문에 나는 강도가 되고 사람을 죽였어. 카르멘! 나의 카르멘! 당신을 구하게 해줘. 당신과 함께 나를 구하게 해줘.”
  “호세,”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불가능한 걸 요구하고 있어. 나는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그리고 그 때문에 나를 죽이려고 해. 나는 아직도 당신한테 얼마간의 거짓말을 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러고 싶지가 않아. 우리 사이는 끝났어. 당신은 남편으로서 나를 죽일 권리가 있어. 하지만 카르멘은 언제나 자유로울 거야. 보헤미안으로 태어나서 보헤미안으로 죽을 거야.”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을 필요로 하고 원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죠. 그 어떤 것은 아무리 바라고 욕망하여도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카르멘이 바로 그런 존재이지 않을까요? 그러니 사실 돈호세의 사랑은 이미 시작부터 결말이 정해진 비극이었습니다. 설령 알고 있었음에도 멈출 수 없었지만요.


  카르멘은 불꽃같은 여자입니다. 그녀는 지치지 않고 끝없이 타오르는 존재죠. 그리고 불꽃이 꺼지지 않기 위해 태울 것을 찾아 탐욕적으로 돌아다닙니다. 그런 카르멘에게 접근하는 모든 남자는 마치 불나방 같습니다. 가까이할수록 자신이 파멸에 이를 것임을 알면서도 어느새 그녀 곁에 가지 않을 수 없는, 불로 뛰어드는 불나방.


  『카르멘』을 읽노라면 돈호세의 마음을 알 것도 같습니다. 카르멘은 남성들에게는 마치 판타지 그 자체이죠. 비현실적인 그 달콤한 마법에 어떤 누가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녀와 같은 존재를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음은 아주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아주 다행이겠습니다. 하지만 또 어찌 알겠습니까? 예상치 못한 그 어느 순간에 번개처럼 카르멘이라는 불꽃을 보게 될지. 소유할 수 없는 붉은 꽃, 『카르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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