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 - 사뮈엘 베케트
기다렸고, 기다리고, 기다린다.
가끔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며칠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벌써 수요일이야?’ 혹은 ‘벌써 3월이야?’라며 놀라는 순간들이 있죠. 열심히 하루를 보내시고 알차게 지내시는 분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만, 제게는 때로 삶이 그저 구간반복을 시켜 놓은 듯 되풀이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할 때가 있어서요. 물론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요. 주어진 하루를 나름의 순서대로 보내고, 다음 날 일어나서 다시 똑같은 순서로 반복하다 보면 그런 순간이 올 때가 있죠. 문득 인지하게 되는 그냥 반복되는 삶. 오늘의 책은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입니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내용은 굳이 구구절절 이야기할 필요도 없이 간단합니다. 정말 ‘고도’를 기다리는 내용이니까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나무 한 그루가 서있는 어느 언덕에서 하루 종일 ‘고도’를 기다립니다. 의미 없는 말들과 행동을 하면서요. 맞지 않는 구두를 벗으려 낑낑대기도 하고, 서로의 말은 듣지 않으면서 자기 할 말들만 하기도 하죠. 그럼에도 언제나 마지막은 고도를 기다립니다.
에스트라공
멋진 경치로군. (블라디미르를 돌아보며) 자, 가자.
블라디미르
갈 순 없어.
에스트라공
왜?
블라디미르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
참 그렇지. (사이) 여기가 확실하냐?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의미 없는 행동과 말들을 반복하고 그들 스스로도 그러한 사실을 깨닫는 순간도 있지만 마지막엔 언제나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반복하죠. 그리고 어떠한 의문도 없이 고도를 기다리죠.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삶은 변하지 않아요. 1막과 2막 모두 같은 배경에 그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멍하니 고도를 기다리는 것뿐이지요. 그들의 삶은 그냥 반복됩니다. 이쯤 되면 모두가 한 번은 생각하는 질문이 있죠. ‘왜? 왜 고도를 기다리지? 고도가 누구길래?’ 고도가 누구인지는 1막과 2막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소년이 주는 아주 조금의 힌트밖에 없습니다. 그마저도 고도가 누구이고 무엇을 하고 왜 오는지 그리고 와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내용과는 전혀 관련이 없죠.
그러니 이 짧은 극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고도를 기다린다는 사실 딱 하나뿐입니다. 1막과 2막의 구성도 거의 비슷하고 내용 전개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심지어 1막 마지막에 찾아온 소년이 2막 마지막에 또 찾아와 같은 소식을 전합니다. 고도가 못 온다는 말을요.
<1막 중>
블라디미르
그래서?
소년
고도 씨가…….
블라디미르
(말을 가로막으며) 너를 전에도 본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소년
글쎄요…….
블라디미르
넌 나를 모르겠니?
소년
모르겠는데요?
블라디미르
너 어제도 오지 않았냐?
소년
아뇨.
블라디미르
그럼 처음 온 거야?
소년
네.
침묵
블라디미르
그렇게 말하겠지. (사이) 그래, 얘기해 봐라.
소년
(단숨에) 고도 씨가 오늘 밤엔 못 오고 내일은 꼭 오겠다고 전하랬어요.
블라디미르
그게 다냐?
소년
네.
<2막 중>
소년
아저씨…… (블라디미르가 돌아선다) 알베르 아저씨는…….
블라디미르
다시 시작이로구나. (사이. 소년에게) 너 나 모르겠니?
소년
모르겠어요.
블라디미르
너 어제도 왔지?
소년
아니요.
블라디미르
그럼 처음 오는 거냐?
소년
네.
침묵
블라디미르
고도 씨가 보낸 거지?
소년
네.
블라디미르
오늘 밤에는 못 오겠다는 얘기겠지?
소년
네.
블라디미르
하지만 내일은 온다는 거고?
소년
네.
블라디미르
내일은 틀림 없겠지?
소년
네.
사실 이쯤 되면 기다리지 않을 법도 하지 않나요? 매일 오기로 해놓고 오지 않는 고도와 그럼에도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그들은 언제나 기다리기만 합니다. 그들의 기다림이 끝나는 날이 오기는 할까요? 정말 고도가 도착하는 날이 올까요? 그리고 혹은 고도가 도착하고 나면 어떻게 될까요? 정말 끝이 찾아올까요, 아니면 새로운 시작이 되는 것일까요.
부조리극의 정수라고 이름 붙여지는 『고도를 기다리며』. 실제로 읽어보면 그 말이 이해가 갑니다. 인물들의 대부분 행동과 말이 어처구니가 없으니까요. 조리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죠. 그렇다고 여기서의 부조리가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부조리’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도 비슷하지 않나요? 우리 역시 평생 동안 무언가를 기다리며 살죠. 그게 사랑일 수도 있고요, 행복일 수도 있고, 혹은 죽음일 수도 있겠습니다. 구구절절 이유는 없어요. 그냥 기다리죠.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기다릴 수밖에 없으니까요. 너무 수동적으로 느껴지시나요? 조금은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여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도 사실은 사실이니까요.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기다립니다. 어찌 보면 삶이란 영원한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나이마다 모두가 기다리는 것은 다르겠지만, 우리는 분명 무언가를 기다리니까요. 마찬가지로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이 ‘고도’라면, 정말 ‘고도’는 올까요? 그리고 ‘고도’가 도착하면 기다림은 끝나는 것일까요. 저 역시 언제나 무언가를 기다립니다. 때에 따라 죽음일 수도 있고요, 기회일 수도 있고요, 행복이기도 하죠. 아니면 이것저것 다 섞여서 하나라고 말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때에는 그냥 ‘고도’를 기다린다고 하면 될까요?
반복되는 기다림. 반복되는 삶. 왜 그리 계속 반복해서 이야기하느냐고 물으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게 바로 『고도를 기다리며』이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역시 여전히 납득이 안 가실 수도 있겠지만요. 무엇을 기다리는 지도 모른 채 오늘도 기다리는 우리의 삶. 그러니 그저 ‘고도’를 기다린다고 말해봅니다. 분명 언젠가는 오겠죠? 제 삶에도, 혹은 여러분의 삶 어느 순간에 언제인가는요. 『고도를 기다리며』였습니다.
에스트라공
뭐랄까…… 넌 늘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거지.
블라디미르
(꿈꾸듯이) 마지막 순간이라…… (생각에 잠긴다) 그건 멀지만, 좋은 걸 거다. 누가 그런 말을 했더 라?
에스트라공
나 좀 안 거들어줄래?
블라디미르
그래도 그건 오고야 말거라고 가끔 생각해 보지. 그런 생각이 들면 기분이 묘해지거든. (모자를 벗는다. 모자 속을 들여다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흔들어보고 다시 쓴다) 뭐라고 할까? 기분이 가라앉으면서 동시에…… (적당한 말을 찾는다) ……섬뜩해 오거든. (힘을 주며) 섬―뜩―해―진단 말이다. (다시 모자를 벗고 속을 들여다본다) 이럴 수가! (무엇을 떨어뜨리려는 듯 모자 꼭대기를 툭툭 친 다음 다시 안을 들여다보고 다시 쓴다) 결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