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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서 Jun 27. 2017

규격 외 소년 둘과 소녀 하나, 삽살개 한 마리

그때는 그에게 안부 전해줘 - 이치카와 다쿠지

규격 외 소년 둘 과 소녀 하나, 그리고 삽살개 한 마리


  최근 읽었던 책 목록을 주욱 살펴봅니다. 이런저런 책을 읽었네요. 새로 읽은 책도 있고, 이미 읽었던 책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편한 책을 읽고 싶었어요. 어려운 책은 이미 읽고 있고, 심각한 책도 이미 읽었으니까요. 그래서 집은 책이 『그때는 그에게 안부 전해줘』였습니다. 작가는 얼마 전에도 소개했던 ‘이치카와 다쿠지’입니다. 『온 세상이 비라면』은 조금 어두운 색채가 짙지만 『그때는 그에게 안부 전해줘』는 전혀 다릅니다. 그야말로 재미있는 ‘이치카와 월드’랄까요? 읽으면서 웃게 되고 기분이 좋아지는 행복한 이야기입니다.


  『그때는 그에게 안부 전해줘』는 2007년에 영화화되기도 했습니다. 일본 유명 여배우 ‘나가사와 마사미(長澤まさみ)’가 주연을 맡았죠. 영화 역시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언제나 책을 더 추천하고 싶네요. 표현 하나하나가 정말 독특하고 재미있거든요. 첫 페이지부터 그렇습니다.


  그는 지독히 특이한 아이였다.
  마치 절멸의 길을 더듬어간 도도새의 마지막 한 마리처럼, 상실하고만 인간의 미덕일 터인 무언가를 달랑 혼자서 계승하고 있었다. 몹시 순수하고 그래서 대단히 상처 입기 쉬운, 우주 로켓으로 지구 둘레를 빙글빙글 돌았던 라이카 개처럼 그는 맑은 눈으로 세상을 내다보고 있었다.


  어떤가요? 독특하지 않나요? 그럴듯하면서도 재치 있고 유니크한 표현들. 이치카와 다쿠지의 책은 이런 재미들이 가득하답니다.


  『그때는 그에게 안부 전해줘』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규격 외 인간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크게 셋입니다. 사토시, 유지, 그리고 카린. 셋 모두 지극히 서툰 인간들이죠. 이 셋이 어린 시절 서로 친구가 된 것은 그래서겠죠? 솔직히 말하면 괴짜에 가까운 셋입니다.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학급에서 '기타'로 분류될 그런 친구들이요.


  독자적인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고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는 소수파다. 그들은 두세 명으로 코믠을 형성하는 일도 있지만, 대게는 단독으로 행동한다. 그리고 혼자라는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내가 만난 두 사람도 바로 이 그룹에 속해 있었다.
  나는…… 글쎄, 나 역시 그 ‘괴짜 그룹’에 속해 있었을까?


  사토시는 물속 세계에 빠져있습니다. 버들말즘, 대가래, 물별이끼, 물괭이꼬리 등 각종 수초들의 이름을 외우고 채집하죠. 방과 후면 냇가로 달려가 물속에 얼굴을 박고 있는 아이. 특이하죠? 유지는 제 얼굴 크기에 맞지 않는 커다란 안경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그런데 유지는 언제나 ‘쓰레기’만을 그립니다. 셋의 아지트 근처에 널린 쓰레기 산에서 유지는 언제나 쓰레기만을 그립니다. 그마저도 매우 독특하고 왜곡된 시선으로 말이죠.


  그곳에 있었던 것은 600cc분의 놀람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그만큼쯤 되는 양의 공기를 들이마셨다는 얘기다. 정말로 후흡 하는 소리가 내 입가에서 새어나왔다.
  이를테면 잘 아는 친구가 “여름방학 숙제로 공작을 했어”라면서 제가 만든 것을 보여주었고 그것이 만일 영구기관이거나 했다면, 역시 그와 똑같은 만큼의 놀람을 느꼈을 것이다.
  예상과 실제의 현저한 괴리. 그의 그림은 열세 살 소년이 그려낼 만한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그는, 여드름과 막 돋아나기 시작한 음모 때문에 남모르게 고민하는 보통 중학생들보다는 오히려 렘브란트나 루벤스 같은 거장들과 훨씬 더 가까운 곳에 있었다.(라고 그때 나는 생각했다)


  카린도 독특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카린은 여자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짧게 자르고 언제나 넉넉한 군용 점퍼를 입고 다닙니다. 아주 더운 여름에도 마찬가지로 말이죠. 분명 흰 피부에 매우 아름다웠을 카린은 일부러 자신의 아름다움을 감추듯 행동하지요. 이유야 나중에 밝혀지지만 역시 특이하다는 점은 인정해야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옆에는 카린이 ‘트라슈(trash)’라고 이름 붙인 삽살개가 함께입니다. 트라슈는 언제나 ‘휘유익?’이라고 울지요.


  이처럼 셋과 한 삽살개는 뭔가 정상 범위를 벗어나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고 ‘규격 외’로 분류될만한 존재들이죠. 그리고 그렇기에 셋과 한 삽살개는 더더욱 서로가 각별합니다.


  이야기는 사토시가 기억하는 그들의 어린 시절과, 어른이 된 사토시의 현재를 오갑니다. 사토시는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근사한 열대어 가게 주인이 되었으니까요. 재미있는 것은 그의 조그마한 아쿠아숍 이름이 ‘트라슈’라는 것이지요.

<사토시가 그린 가게 상표>

  여전히 어린 시절의 소중한 기억을 잊지 못하는 사토시지만, 이미 다른 친구들과의 연락은 끊긴지 오래입니다. 어찌어찌 어른이 되어 역시나 마이너하게 살아가면서도 사토시는 사토시니까요.


  하지만 인연이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지요. 먼저 카린을 시작으로 유지까지, 사토시는 결국 오랜 친구들과 재회합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예상치 못한 시기에 말이죠. 이런 말도 안 되는 우연이라니.


  “이런 것을 두고 융이라면 싱크로니시티synchronicity라고 할 거야.”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면 신이 인도하셨다고 할 거고.”
  “나라면 잘 만들어진 우연이라고 할 거다. 실제로 그게 세상을 움직이고 있어.”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모두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토시, 유지, 카린뿐만 아니라 사토시의 엄마, 아버지 그리고 소중한 이들 모두가요. 이를 확인하기까지 참으로 많은 시간이 걸린 사토시입니다. 이토록 서툰 인간이 오래 걸려서라도 깨달았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운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요? 문득 읽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대체가 이렇게 나사가 하나 혹은 여러 개 빠진 서툰 존재들이 어떻게 여전히 작게나마 자신의 삶을 꿋꿋이 펼쳐나갈 수 있는 것일까요? 독특하고 마이너한 이들의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대견하기까지 합니다. 세상의 풍파 속에서 자신의 독특함을 잃지 않고 끝끝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이들. 사실 이치카와 다쿠지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대게 이런 경향을 보입니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로 주인공들과 그 곁의 존재들은 조금씩 규격 외에 위치해 있지요. 저 역시 스스로 어느 정도는 사회의 테두리 언저리를 배회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기에 그의 작품을 더욱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분명 그렇기 때문일 거예요.


  그래서 사토시를, 유지를, 카린을 응원합니다. 트라슈의 ‘휘유익?’을 듣고 싶어 하고요. 지독하게도 서툴고 마이너한 그들의 삶이 계속해나갈 수 있도록 작게 마음속으로 빌어봅니다. 그들이 만든 작고 독특한 세계를 들여다보고 같이 소소하게 웃어 보이고 싶네요. 융이라면 싱크로니시티라고 말할 것이고, 종교를 믿는 이라면 신이 인도했다고 말할 것이고, 사토시의 아버지라면 잘 만들어진 우연이라고 할 기분 좋은 일들이 가득한 그곳에서.


  “어서 오십쇼, 아쿠아숍 <트라슈>에.”
  “그게 이 가게의 이름인가요?”
  “그래요.”
  “당신은 ‘쓰레기’를 팔아요?”
  “그게 아녜요, ‘트라슈’라는 건 아름다운 것에 붙이는 이름이죠.”
  “그래요?”
  “그렇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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