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락서 Sep 07. 2017

두 가지 시선, 하나의 공포

『나사의 회전』- 헨리 제임스

  날이 무더워지고 땀이 줄줄 흐르는 더위가 찾아오면 덩달아 고개를 내미는 장르가 있습니다. 바로 공포. 여름이면 공포 영화가 개봉하기 마련이고, 무서운 이야기는 더위를 잊게 하고는 하죠. 개인적으로는 공포 장르를 즐기는 편이 아닙니다. 사실 거의 쳐다보는 경우도 드물죠. 특히나 그게 피가 난무하거나 잔인하고 그로테스크하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넘깁니다. 그런데 오늘 소개할 책은 정작 귀신 이야기네요.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실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조금 다릅니다. 공포라고는 하지만 피가 나오지도 않고, 귀신이 달려들거나 놀라게 하지도 않아요. 이 책에 등장하는 귀신은 그저 예상치 못한 장소에 서 있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거의 움직이지도 않아요. 다만 특이한 점은 이 귀신이 어린아이 근처를 맴돈다는 것입니다. 아이와 귀신. 오늘의 책은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 The Turn of the Screw』입니다.


아이와 귀신 이야기


만일 어린아이 하나가 나사를 한 번 더 죄는 효과를 낸다면, 어린아이가 둘일 경우 어떻게 되겠어요?”


  크리스마스 전날 밤, 난롯가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무서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갑작스레 툭 던진 더글라스의 말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관심을 표합니다. 더글라스는 그의 지인이었던 가정교사가 겪었던 일이라고 말하며 가정교사가 썼던 글을 소개하기로 합니다. 그렇게 독자 역시 난롯불 옆에 앉아 기묘하고도 무서운 이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이지요.



전신 거울과 가난한 시골 목사 막내딸


  먼저 이 으스스한 이야기의 화자인 가정교사에 대해 살펴보죠.


어느 가난한 시골 목사의 막내딸이었던 더글러스의 옛 친구가 스무 살 나이에 처음으로 가정교사라는 직무에 응하기 위해 불안한 마음으로 런던에 올라왔다는 것이다.


  가정교사는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젊은 여성입니다. 게다가 가난한 시골 목사의 막내딸이죠. 그런 그녀가 런던에 올라와 만난 자신의 고용주는 젊고 잘생기고 아주 부자인 신사입니다. 세상 물정 모르는 그녀가 이 잘생기고 부유한 신사에게 빠지는 것은 당연한 순서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신사가 부탁한 일은 블라이에 있는 저택에 내려가 자신의 조카 둘의 가정교사가 되어주는 것이지요. 게다가 이 스무 살 여성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합니다.


  높은 보수에 호감 가는 고용주. 하지만 어쩐지 이제 막 시골에서 올라온 스무 살 젊은 여성이 맡기엔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죠.


그 여자에게 앞날은 다소 음울하게 느껴졌어요. 젊고 경험도 없는 데다 신경질적이었거든요. 책임이 막중하고 말을 나눌 사람도 적고, 실로 엄청나게 외로울 거라는 상상이 들었죠.


  가정교사는 마치 귀부인이 된 것처럼 마중 나온 거대한 유람용 마차를 타고 저택으로 들어갑니다. 다시 한번 상기해볼까요? 가정교사는 젊고 경험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시골에서 막 올라왔고, 가난한 목사의 막내딸이었죠. 그런 그녀가 블라이의 저택에서 마주한 모든 것은 생경하기 그지없는 것들이었죠.


  일단 저택부터 ‘내가 살았던 초라한 집과는 다른 웅장함’이 있었고, 가정교사는 ‘저택에서 가장 좋은 방’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 자신의 모습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던 긴 거울’도 있었죠. 이렇다 보니 다수의 하인과 아이들을 맡게 된 그녀가 느끼는 감정이 다소 혼란스러웠을 거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우리가 커다란 표류선에 갇힌 몇몇 승객들이라는 상상을 했다. 그렇다면 이상스럽게도 나는 그 배에서 총지휘를 맡은 키잡이가 된 셈이 아닌가!


  그녀는 갑작스럽게 자신이 누리게 된 위치에 막중한 책임을 느낍니다. 하지만 동시에 내심 기뻐하기도 하죠. 그리고 그 기쁨의 많은 부분은 호감을 느꼈던 자신의 고용주에게 있기도 하였습니다.


요컨대 나는 자신을 비범한 젊은 여자로 상상하였고, 이것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리라는 믿음에 위안을 얻는다고 말하련다.


  천사같이 어여쁜 어린 소녀 ‘플로라’와 자신을 믿고 돕는 ‘그로스 부인’까지. 버겁기는 하지만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였습니다. 플로라의 오빠인 역시나 천사 같은 소년 ‘마일스’가 학교에서 쫓겨났다는 편지를 받고도 가정교사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죠. 아이들은 천사 같았고, 저택은 평화로워 보였으니까요. 그녀가 귀신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죠.



귀신을 보는 가정교사


  이 이야기에서 가정교사는 귀신과 총 8번 마주칩니다. 처음 마주친 귀신은 전에 이 저택에 있었던 남자 ‘퀸트’였고, 후에 마주치는 귀신은 자신의 전임교사 ‘제셀 양’이었죠. 가정교사는 이 둘을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묘사는 꽤 구체적입니다.


    남자 귀신에 대한 묘사


“붉디붉은 머리카락에다 오밀조밀한 곱슬머리의 창백한 얼굴이었어요. 길고 꼿꼿한 몸은 보기에도 좋은 형상이었죠. 그리고 다소 괴이한 자그마한 구레나룻은 머리카락만큼 붉었지만, 눈썹은 다소 검은 편이었고, 특히나 활 모양으로 굽어 있어 마음대로 움직이는 듯이 보였죠. 눈매는 날카롭고 이상했어요. 끔찍하긴 했지만, 난 그 눈이 다소 작고 매우 고정되어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아요. 입은 넓고 입술은 가늘었어요. 게다가 자그마한 구레나룻만 제외하고는 꽤나 말끔히 면도를 했던데요. 그 사람은 마치 배우 같은 느낌을 주더군요.”


    여자 귀신에 대한 묘사


  “상복을 입고 있었어요. 다소 빈약하고 초라하던데. 하지만 정말이지 굉장한 미모를 가졌더군요.” 나는 내 비밀을 들어준 사람을 마침내 어느 지경까지 몰고 갔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부인이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하는 모습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아, 보기 좋은 용모였어요. 정말이고말고요.” 나는 주장했다. “굉장한 용모였죠. 하지만 품위는 없었어요.”
  그로스 부인은 천천히 내게 돌아왔다. “제셀 양은 품위가 없었어요.”


  가정교사는 자신이 본 귀신의 모습을 그로스 부인에게 확인하였습니다. 그로스 부인은 퀸트와 제셀 양 둘 다 본 적 있기 때문이었죠. 무서운 것은 단순히 귀신이 나타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퀸트가 마일스를, 제셀 양이 플로라를 노리고 있으므로 무서운 것이죠.


  “어린 마일스를 찾고 있었어요.” 불길하리만큼 선명한 생각이 이제야 나를 사로잡았다. “그게 그 사람이 찾고 있던 거였어요.”
  “하지만 어떻게 아세요?”
  “알고말고요. 여부가 없는데요!” 나의 흥분이 고조되었다.


  “그럼요. 하지만 플로라가 알고 있던 사람이에요. 당신도 알던 사람이죠.” 그런 다음 이 모든 것을 내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보여주려고 입을 열었다. “내 전임자였던 죽은 가정교사였어요.”
  “제셀 양 말이에요?”
  “그럼요. 당신은 내 말을 믿지 않겠죠?” 나는 다그쳤다.
  부인은 당황하여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어떻게 확신할 수 있어요?”
  신경이 곤두선 나는 순간적으로 이 말에 안절부절못했다. ‘그렇다면 플로라에게 물어봐요. 그 애는 확실할 테니까!’ 그러나 이렇게 말하려다 나는 금방 자신을 억제했다.


  후반부로 갈수록 귀신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아이들과 가정교사의 눈치 싸움이 첨예해집니다. 하지만 금기에 가까운 주제를 직접 건드리지 못하고 서로 주변을 빙빙 돌기만 합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가정교사의 앞에서는 천사처럼 아무 문제 없는 듯 행동하고, 가정교사는 계속 귀신을 봅니다. 이 괴리에서 긴장감은 극대화되죠.



귀신을 보는 가정교사'?'


  하지만 이 작품의 흥미로운 점은 귀신에게만 있지 않습니다. 귀신이 분명히 존재하고 가정교사는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귀신을 보는 것은 가정교사 혼자만이라는 점입니다. 일인칭으로 서술되는 이야기에서 귀신을 보는 일은 모두 가정교사의 개인적인 경험일 뿐이죠. 마일스나 플로라가 귀신과 관계를 맺고 있다고 의심하지만 실상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오로지 가정교사의 느낌이죠. 게다가 가정교사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로스 부인 역시 귀신을 보지 못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눈앞에 있는 귀신을 가리켜도 그로스 부인은 이렇게 대답할 뿐입니다. “정말 황당하군요, 선생님! 도대체 어디에서 뭘 보고 있는데요?” 혼자만 귀신을 본다는 사실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바로 이 순간에 독자는 가정교사의 시선에 대한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게 되고, 지나왔던 모든 것이 소름 끼치는 의혹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러한 의구심으로 가정교사를 바라보면 가정교사의 생각에 석연찮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시 한번 가정교사의 말을 살펴볼까요.


  “어린 마일스를 찾고 있었어요.” 불길하리만큼 선명한 생각이 이제야 나를 사로잡았다. “그게 그 사람이 찾고 있던 거였어요.”
  “하지만 어떻게 아세요?”
  “알고말고요. 여부가 없는데요!” 나의 흥분이 고조되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그게 더 무서운 거죠. 혼자서만 알고 있거든요! 여덟 살밖에 안 된 아이가 말이에요!” 나는 기가 막혀 말을 할 수 없었다.
  물론 그로스 부인도 입만 더욱 크게 벌릴 따름이었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어떻게 알았죠?”
  “난 거기 있었어요. 내 눈으로 보았으니까요. 플로라가 완벽히 알고 있다는걸요.”


  그로스 부인이 묻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알았죠?’ 가정교사는 대답합니다. ‘알고말고요.’ 아주 짧은 귀신과의 마주침에서 가정교사는 모종의 확신을 갖습니다. 아이들이 귀신과 소통하고 있다고 말이죠. 심지어 저택에서 도망치려다 귀신과 마주친 일화를 나중에 그로스 부인에게 이야기할 때에는 마치 자신이 귀신과 대화하려고 했다는 듯이 말합니다. 게다가 귀신이 자신에게 고통을 호소했다고까지 말하죠. 가정교사의 의심은 귀신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믿지 못하는 그로스 부인도 의심하죠.


부인은 내가 외로운 처지를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어, 주인이 눈여겨보지 않은 나의 매력에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이 기막힌 계략을 꾸몄다고 생각하며, 나를 조롱하고 흥겨워하며 경멸했다.


  가정교사의 표현을 다시 요모조모 뜯어보면 이상한 부분도 많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이 ‘기회’라고 말하기도 하고, 귀신을 보았을 때 증거를 포착했다는 ‘짜릿한 기쁨’을 느꼈다고도 말합니다. 특히 결말 부분에서는 아이에게 집착하는 모습도 볼 수 있죠.



믿어도 안 믿어도 무서운 이야기


  어떤가요? 이 모든 귀신 소동이 막중한 책임감에 짓눌렸던 가정교사의 망상에 불과한 것이었을까요? 하지만 가정교사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퀸트와 제셀 양의 모습을 그로스 부인에게 꽤 상세히 묘사한 부분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가정교사는 정말 귀신을 본 것이었을까요? 그런데 어째서 그로스 부인은 보지 못했던 것일까요? 의문은 끊이지 않습니다.


  심리소설, 공포소설, 고딕(Gothic)소설이라고 불리는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 이 소설은 화자의 시선에 대해 의문을 갖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우리는 흔히 화자의 이야기는 진실로 믿기 마련입니다. 마땅한 근거가 없음에도 화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으레 화자가 하는 말을 진실로 받아들이게 되죠. 그러니 『나사의 회전』의 믿음직하지 않은 화자(unreliable narrator)의 존재는 독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줍니다. 피가 나오거나 잔인하지도 않은 이 이야기에 소름이 끼치는 이유죠.


  무더운 여름, 어느 시선이든 좋으니 이 가정교사의 이야기를 읽어보심은 어떨까요? 가정교사의 시선을 진실로 믿거나 말거나 두 경우 모두 더위를 잠시 잊게 할 소름 끼치는 이야기일 테니까요.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이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스티유 감옥에 갇힌 공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