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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서 Aug 27. 2017

바스티유 감옥에 갇힌 공주

『소공녀』-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공주’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으리으리하고 웅장한 궁전? 치렁치렁 레이스가 달린 드레스? 흔히 ‘공주’라고 하면 좋은 환경에서 고생이라고는 전혀 모를 것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죠. 오늘은 조금 특별한 ‘작은 공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하지만 이 ‘작은 공주’는 앞선 공주와는 참 달라요. 오늘 소개할 책은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소공녀 A Little Princess』입니다.


  익숙한 제목이지요? 저 역시도 많이 들어본 책입니다. 물론 이전에 읽어본 적은 없지만요. 언제나 그렇듯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정작 읽어본 적 없는 책들을 좋아하는 터라 『소공녀』를 집게 되었습니다.



부자 아빠와 작은 공주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어린이 소설로 분류되는 책이기도 하고 고전이다 보니 복잡하지 않은 줄거리를 갖고 있지요. 지금의 독자들이 읽는다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젊고 잘생기고 아주 돈이 많은 한 남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슬하에는 어린 딸을 하나 두고 있죠. 인도에서 부유하게 지내던 부녀였습니다. 딸이 학교에 갈 나이가 되자 아버지 크루 대위는 딸을 영국 기숙학교에 보내기로 하죠. 바로 ‘민친 어린 숙녀 학교’입니다. 학교는 민친 교장과 그녀의 자매 아멜리아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민친 교장은 아주 현실적인 인물이지요. 자신에게 득이 되는 바를 정확히 따지고, 인정머리라고는 없는 인물입니다. 그런 민친 교장에게 크루 대위의 어린 딸 사라는 아주 소중한 학생이지요. 사라의 아버지가 아주 부자이니까요. 그래서 사라는 본인이 의사와는 상관없이 특별한 대우를 받습니다. 하지만 사라는 그런 취급을 과시하거나 뽐내는 아이가 아닙니다. 아이답지 않을 정도로 아주 생각이 깊은 아이니까요.


  “사람들에게는 어쩌다 우연히 생기는 일이 많아. 내게는 좋은 우연이 많이 따랐어. 어쩌다 보니 늘 공부하고 책 읽는 게 좋았고, 배우고 읽은 걸 잘 기억하게 되었지. 또 어쩌다 보니 잘 생기고 다정하고 머리 좋고, 내가 좋아하면 무엇이든 다 해줄 수 있는 아버지의 딸로 태어난 거고. 난 본래 착한 아이가 아닐지도 몰라. 갖고 싶은 걸 다 가질 수 있고 모두들 잘해 준다면, 누구라도 착해지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거 아닐까?”



바스티유 감옥에 갇힌 공주


  이야기가 이렇게만 흘러갈 리 없겠지요. 인도에 남아 사업을 벌이던 사라의 아버지 크루 대위가 갑작스럽게 사망하게 되고, 사라의 생일날 사라에게 이 소식이 전해집니다. 사업의 실패로 모든 재산을 잃고 갑작스레 무일푼으로 전락한 소공녀, 사라. 이해타산이 빠른 민친 교장의 사라를 대하는 태도는 급변합니다. 언제나 비싼 옷과 최고급을 누리던 사라는 이제 부엌데기로 초라한 다락방에서 지내게 됩니다. 비싼 옷도 더 이상 입지 못하고, 제대로 된 음식도 먹을 수 없는 신세로 전락하죠.


  사라는 이 역경을 어떻게 버텨낼까요? 누리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이제는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려야 하는 소공녀 사라. 사실 사라에게는 아주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바로 상상력이지요. 상상력이 왜 ‘특별한’ 능력인지 고개를 갸웃하실 수도 있습니다. 사라는 단순히 상상만 하지 않습니다. 상상하고, 실제로 그렇게 믿죠.


  “아, 우리가 볼세라 어느새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네. 하기야 쟤들은 언제나 그래. 번개처럼 빠르다니까.”
  사라가 외쳤다.
  어먼가드는 사라와 그 인형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저 인형이, 걸을 수 있단 말이야?”
  어먼가드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그럼. 적어도 난 걸을 수 있다고 믿어. 적어도 난 쟤가 걸을 수 있다고 믿는 척해. 그러면 진짜처럼 믿기거든. 넌 무엇인가를 믿는 척해 본 적 없어?”


  사라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황을 바꾸어 상상하고, 그대로 믿으려 노력합니다. 이런 풍부한 상상력으로 사라는 언제나 아이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었죠. 그리고 상황이 절망으로 바뀐 이후에도 사라는 자신의 놀라운 상상력으로 힘든 나날을 버팁니다.


  “군인은 불평하는 법이 없어. 나도 그럴 거야. 난 지금이 전쟁 중인 척할 거야.”


  “그래, 그게 좋겠어. 여기가 바스티유 감옥인 척하는 거야. 그럼 나는 바스티유 감옥에 갇힌 사람이 돼. 한 해 두 해, 그렇게 몇 해 동안 여기서 지낸 거고, 그래서 모두들 나를 잊어버린 거지. 민친 교장은 옥사장이고, 베키는…….”
  이때 사라의 눈빛이 더욱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래, 베키는 내 옆 감방에 갇힌 사람이야.”


  상상의 힘은 정말 놀랍습니다. 힘든 나날을 사라는 상상력으로 버텨내죠. 하지만 그렇다고 상상력이 만능은 아닙니다. 제아무리 기를 쓰고 상상해보아도 때로는 이겨내기 힘든 것들도 있으니까요. 특히나 배고픔, 추위는 사라를 점점 지치게 합니다. 사라는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요? 이야기의 언제쯤 어떻게 사라는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소공녀 사라


  분명 상상력은 사라의 전매 특허에 가까운 놀라운 능력입니다. 사라는 자신의 상상을 믿음으로써 현실에 덮어씌우죠. 가난해진 이후에도 사라는 자신을 공주라고 생각하고, 공주라고 믿습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이것 하나만은 바뀌지 않을 거야. 내가 만일 공주라면 너덜너덜한 누더기를 걸쳤다고 해도 속마음은 공주처럼 될 수 있어.


  언제나 어느 상황에서나 사라는 자신이 공주라고 믿고, 또 그렇게 행동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민친 교장을 비롯한 사라를 시기하는 아이들도 언제나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사라를 어쩌지 못하지요. 누더기를 입고 있어도, 제대로 씻지 못해서 더러워도, 사라는 언제나 품위 있게 공주처럼 행동하니까요.


  누군가는 낡은 소재, 뻔한 이야기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착한 주인공이 고난을 겪고 이겨낸다는 이야기는 흔한 소재 그리고 뻔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든 생각은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사라가 겪는 고난들, 그리고 분명 그러한 고난이 끝나는 날이 올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 뻔한 이야기가 재미있더란 말이죠.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기도 하고요. 이제는 ‘소공녀’라는 단어를 보면 철부지 공주가 아닌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상상력으로 버티며 나아가는 사라를 떠올리게 되겠죠? 어른이 되어 만난 작은 공주,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소공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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