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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서 Dec 26. 2017

인간이라는 도깨비에 둘러싸인 존재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https://youtu.be/FFhGfvfsXK0

  우리는 인간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며 타자를 치는 존재도, 그렇게 쓰여진 글을 읽는 화면을 마주한 존재 역시 인간이지요. 미래에는 AI가 읽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세세한 부분은 넘어가도록 하죠. 인간이라는 이름아래 우리는 같아요. 한데 묶여있다고도 볼 수 있죠. 외양이 다를지라도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 우리는 서로 부대끼며 살아갑니다. 싫든 좋든 이러한 조건에 내던져진 우리는 그래도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찌어찌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으면서요. 하지만 어디에나 예외는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오늘 이야기할 것은 그 예외적인 존재겠지요. 
  
한 존재의 고백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첫 고백부터 단도직입적입니다. 이 존재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았기에 부끄럼 많은 생을 살았다고 고백하는 것일까요? 정말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내서일까요? 아니면, 겸손의 측면에서 이야기한 것일까요? 이런 첫 고백보다 더 아찔하게 다가오는 것은 다음 고백입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삶을 이해할 수 없다는 두 번째 고백. 단순히 피상적으로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생애를 걸쳐 노력도 해보았지만 인간의 삶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솔직히 말하여 삶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인간은 거의 없습니다. 삶을 이해하였다는 말을 태연하게 하는 사람은 먼저 이상한 인간이 아닌지 의심해보아도 좋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상기의 고백도 당연한 것일까요? 그런데 이 존재는 그 정도에 있어서 일반적인 수준과는 격을 달리 합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사람이란 것이 알 수가 없어졌고, 저 혼자 별난 놈인 것 같은 불안과 공포가 엄습할 뿐이었습니다.


도깨비에 둘러싸인 요조

  이름은 ‘요조’, 머리가 좋고, 잘생기고,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요조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다른 인간들이 불가해한 존재로 여겨집니다. 요조에게는 정의니 도덕이니 따위를 부르짖으면서 서로를 등쳐먹는 인간들이 ‘인간이라는 도깨비’로 보일 정도지요. 그래서 요조는 어릴 때부터 필사적으로 ‘익살’을 연기합니다. 거짓 웃음을 짓고, 부러 익살을 부려 자신도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요. 이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둡니다. 어딜 가나 요조는 장난꾸러기이지만 인기가 많은 존재로 여겨집니다. 허나 이는 어디까지나 겉보기에 불과합니다. 요조는 그런 외양을 유지하기 위해 사실 필사적으로 ‘익살’을 노력합니다. 
  
  온힘을 다해 연기를 하는 요조였지만, 모두가 속아 넘어가지는 않습니다. 요조의 연기를 알아채는 인간들도 있지요. 그럴 때면, 요조는 극심한 공포에 다시 휩싸여 얼어붙습니다. 인간에 대한 공포와 자신의 정체를 들킬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 요조가 다른 수단을 동원하기 시작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그 수단들이 음지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는 것이 안타깝네요.


  술, 담배, 창녀, 그런 것들이 인간에 대한 공포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상당히 괜찮은 수단이라는 사실을 저도 이윽고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긍정적인 방법도 있었겠지만, 요조는 이미 평생을 공포 속에서 힘들게 살아왔던 존재였습니다. 그를 조금 감싸주자면 요조에게는 술, 담배, 창녀 같은 방법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공포를 잊게 해주는 마취제였죠. 
  
순수가 무너지는 세 번의 순간
  
  불쌍하고 연약한 요조. 요조의 삶은 세 번 크게 무너집니다. 유일하게 함께해서 행복했다 말할 수 있었고, 사랑을 느꼈던 여자, 쓰네코가 호리키에게 무시당했을 때.


소위 속물들의 눈으로 보면 쓰네코는 취한의 키스를 받을 가치조차도 없는, 그저 초라하고 궁상맞은 여자였던 것입니다. 의외였지만 뜻밖에도 저는 청천벽력에 박살 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시즈코와의 동거 생활을 통해 그림으로 돈을 벌며 그나마 안정적인 생활을 하던 도중 시즈코의 딸 시게코의 한 마디에서.


  “시게코는 말이야, 진짜 아빠가 갖고 싶어.”
  화들짝 놀라고 아찔하게 현기증이 났습니다. 적(敵). 내가 시게코의 적인지, 시게코가 나의 적인지. 어쨌든 여기에도 나를 위협하는 끔찍한 인간이 있었구나. 타인. 불가사의한 타인. 비밀투성이 타인. 시게코의 얼굴이 갑자기 그렇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무한정으로 믿어주고 보살펴주던 요시코가 겪은 비극적인 순간.   


  신에게 묻겠습니다. 신뢰는 죄인가요?
  요시코가 더럽혀졌다는 사실보다도 요시코의 신뢰가 더럽혀졌다는 사실이 그 뒤에도 오래오래, 저한테는 살아갈 수 없을 만큼 큰 고뇌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이후로 요조는 마약에 손대기 시작합니다. 마약이 아니면 자신의 무너진 세상과 공포를 견딜 수가 없었으니까요. 끝없는 자기파멸의 길에 요조가 이른 곳은 정신병원입니다. 그는 단 한순간도 미친 적이 없었건만, 인간들에게 자신은 치료가 필요한 미친 존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인간 실격
  
  이것이 요조가 고백했던 ‘부끄럼 많은 생애’의 전말입니다. 술과 여자, 자살 시도, 마약으로 점철된 생애지요. 어쩐지 제게는 이 모든 요조의 이야기가 고통의 절규처럼 들렸습니다. 정말 요조라는 이 존재는 ‘인간 실격’인 걸까요? 인간이라는 도깨비에 둘러싸여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삶을 살았던 요조.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었습니다.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눈치 빠르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같이 착한 아이였어요.”


커버 사진 : © kellepics,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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