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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서 Dec 28. 2017

광기에 휩싸인 예술혼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어두운 방 문풍지 구멍을 통해 들어오던 작은 빛, 지난밤의 달을 보셨나요? 어둑해진 길을 걷다 고개를 드는 것만으로도 볼 수 있던 달인데, 누군가 달을 빤히 바라보는 모습을 본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제의 달은 부드러운 반달이었어요. 내일이면 달라질 달에 한 번뿐 볼 수 없는 반달이요.
  바닥에 무엔가 떨어뜨려서 눈을 부릅뜨고 찾으려는 것도 아니건만, 왜 그리 우리는 바닥을 보게 될까요. 알고 있어요. 당신의 어깨와 등에 올려진 고민의 무게가 너무 무거운 탓이겠죠. 조금만 짐을 덜 수 있다면, 매일 밤 달라지는 밤하늘의 눈동자를 볼 수 있었을 텐데요.
  
"If you look on the ground in search of a sixpence, you don't look up, and so miss the moon."
  
  다소 감상적인 소리를 했네요. 문득 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 것은 오늘 이야기할 작품 제목에 달이 들어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위의 영어문장을 보셨다면, 어떤 작품을 이야기할지 예상하신분도 계시겠죠. ‘서머싯 몸 W. Somerset Maugham’의 『달과 6펜스 The Moon and Sixpence』입니다.
 

  『달과 6펜스』는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에 대한 기록입니다. 많은 분들이 알다시피 ‘찰스 스트릭랜드’는 화가 ‘폴 고갱 Paul Gauguin'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큰 틀에서는 비슷한 부분도 있고, 세세한 부분에서는 다른 부분도 많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폴 고갱과 스트릭랜드의 삶을 비교하며 읽는 것도 하나의 재미입니다.
  
  다만 이 글에서는 작품에 집중해보겠습니다.
  젊은 작가인 화자가 스트릭랜드를 만나게 되는 건 그다지 대단치 않은 사교모임을 통한 일이었고, 그의 첫 인상도 특별할 것이 없었죠.

그저 선량하고 따분하고 정직하고 평범한 사람이었다. 이 사람의 높은 인품을 존경할 수는 있을지언정 아무도 그를 사귀려 들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무런 특징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돌연 이 평범하고 특징이 없는 사람이 자신의 처자식을 내팽개치고 파리로 훌쩍 떠나버립니다. 주변에서는 스트릭랜드가 바람이 났다는 소문이 흉흉했고, 무책임한 인간이라는 평이 입에 오르내립니다. 생계를 책임지던 가장이 예고도 없이 사라져버렸으니 말이죠. 찰스 스트릭랜드는 정말 무책임한 인간일까요? 이제부터 우리는 화자가 기술하는 스트릭랜드의 삶을 보며 판단해보려 합니다. 끝까지 미친 인간이 아닐까 싶은 기이한 남자를요.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찰스 스트릭랜드?
  
  스트릭랜드를 무책임하다 말하려면, 그가 갑작스러운 도피를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 봐야합니다. 젊은 여자? 풍족한 생활? 이를 확인하러 간 화자가 정작 마주한 것은 비참한 40대 남자의 모습뿐입니다. 여자는 없었습니다. 소문은 소문일 뿐이었고, 스트릭랜드는 오히려 자신에게 추파를 던지는 젊은 여성에게 거리낌 없이 불쾌감을 드러내죠. 부유한 생활도 없습니다. 스트릭랜드는 허름하기 그지없는 호텔에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당장 그는 가진 것도 없습니다.

「법이라 한들 아무것도 없는 데서 뭘 뺏어낼 수 있겠소? 난 한푼도 없어요. 있어봐야 백 파운드나 될까」

  그럼 도대체 이 미친 40대 남자는 왜 파리로 떠난 걸까요? 프랑스어도 못하면서 말이죠. 그는 간단하게 대답합니다.

「나는 그려야 해요」


광기에 휩싸인 예술혼
  
  작품의 끝까지 광기에 가까워지는 스트릭랜드의 예술욕구. 그는 정말 그리는 일 외에는 그 무엇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인간관계, 돈, 명예, 그리고 자신의 건강까지. 화자는 생각합니다.

그의 마음속에서 들끓고 있는 어떤 격렬한 힘이 내게도 전해 오는 것 같았다. 매우 강렬하고 압도적인 어떤 힘이, 말하자면 저항을 무력하게 하면서 꼼짝할 수 없도록 그를 사로잡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화자가 느낀 인상이 정확하다면, 스트릭랜드는 선택했던 것이 아닙니다.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면의 악마적 광기가 그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의 영혼 깊숙한 곳에 어떤 창조의 본능 같은 것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 창조 본능은 그 동안 삶의 여러 정황 때문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마치 암이 생체 조직 속에서 자라듯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나서 마침내 존재 모두를 정복하여 급기야는 어쩔 수 없는 행동으로까지 몰아간 것이 아니었을까.

  선택 가능한 것과 선택 불가능한 것.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스트릭랜드가 마주했던 충동은 선택 불가능한 것이었죠. 그의 충동은 그 자체로 방향성을 갖고, 강제적으로 그의 삶을 끌어갑니다. 스트릭랜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충동에 내몰려 그리는 것. 끝없이 내면의 욕구에 따라 그리는 것. 그것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무책임할 수 없습니다. 그것조차 선택할 수 없었으니까요. 실제로 스트릭랜드가 예상한 대로 그의 처자식은 그 없이도 잘살아갑니다. 오직 자신만이 비참하게 정체모를 힘에 휘둘리며 살죠.
  
  스트릭랜드는 거지가 되어서도 그림을 그리려 이리저리 노력하다가 한 섬에 정착하게 됩니다. 남태평양 중부 프랑스령 ‘타히티 Tahiti'. 스트릭랜드는 ’아타‘라는 여자아이와 숲속 깊숙이 들어가 살기 시작합니다. 그는 오지 속에 들어가 나병에 걸려 죽기 전까지 오두막 벽면에 그림을 그립니다.
  멀쩡한 직업을 가지고, 모자란 것 없이 중산층의 삶을 살던 한 중년의 남성. 그는 갑자기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것을 쫒아가고, 그 끝은 오지에서의 고통스러운 죽음입니다. 그는 인생을 망친 걸까요?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허무와 완성, 죽음과 구원
  
  경이로운 삶이지만, 부러워할만한 삶인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습니다. 화자가 말한 대로 그는 어떤 면에서 분명 ‘위대한’ 인간이지만, 동시에 괴팍하고 미친 인간이지요. 스트릭랜드는 어땠을까요? 본인은 본인의 삶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마지막에 자신의 존재를 바쳐 그린 그림을 불태워달라던 스트릭랜드. 악마 같던 예술혼에 휘둘리던 그는 마침내 죽음과 맞바꿔 그린 그림에서 삶의 완성을, 구원을 얻은 것일까요. 솔직히 스트릭랜드의 재능은 너무나 부럽지만, 그의 비참한 삶은 거부하고 싶네요. 참 이율배반적이지만요.

이제 그는 벽에 그려진 그림들을 찬찬히 바라보면서 온통 야릇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이 그림들엔 이상하게도 그를 감동시키는 무엇이 있었다. 방바닥에서 천정에 이르기까지 사방의 벽이 기이하고 정교하게 구성된 그림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뭐라 형용할 수 없이 기이하고 신비로웠다. 그는 숨이 막혔다. 이해할 수도, 분석할 수도 없는 감정이 그를 가득 채웠다. 창세(創世)의 순간을 목격할 때 느낄 법한 기쁨과 외경을 느꼈다고 할까. 무섭고도 관능적이고 열정적인 것, 그러면서 또한 공포스러운 어떤 것, 그를 두렵게 만드는 어떤 것이 거기에 있었다. 그것은 감추어진 자연의 심연을 파헤치고 들어가, 아름답고도 무서운 비밀을 보고 만 사람의 작품이었다. 그것은 사람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신성한 것을 알아버린 이의 작품이었다. 거기에는 원시적인 무엇, 무서운 어떤 것이 있었다. 인간 세계의 것이 아니었다. 악마의 마법이 어렴풋이 연상되었다. 그것은 아름답고도 음란했다.
  「맙소사, 이건 천재다」
  이 말이 입에서 절로 튀어나왔다. 그는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몰랐다.
© saffu,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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