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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날

2025년 2월 13일 열 여덟 번째 일기

by 무무

그런 날이 있다. 일이 많고, 바쁠 줄 알았던 날.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출근한 날. 뭐, 사실 예전이랑 비교하면 새 발의 피라고 생각하지만 나름대로 좀 그런 날. 그런 날은 보통 웃을 일이 잘 없는 것도 없지만, 설사 있더라도 무언가 개그를 자발적으로 만들어 내서 웃어야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거다. 그렇다고 정말 너무 정신없이 바빠서 눈물이 날 그런 정도는 아니었고, 그냥 딱 업무시간과 약간의 야근시간 동안 빡 집중을 해서 일을 처내야 적당히 끝내고, 적당한 시간에 퇴근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하필 또 저녁에 번개 모임이 있어(일부 회사 사람들과) 과한 야근은 서로를 위해 지양해야만 했다.


나는 바쁜 걸 싫어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분주함은 시간을 유익하고 빠르게 삭제해주기도 하고, 어느 정도 업무를 수행하고 나면 뿌듯함도 드는 거다. 별로 할 일이 없는 여유로운 하루도 가끔 끼어있으면 좋지만, 분주함과 조화되었을 때 더 가치를 가진다. 예를 들어,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상태에서 하는 웹툰 정주행은 재미있기는 하지만 허탈함이 든다. 하나가 끝나면 다음 것을 찾아 헤맨다. 그래야 내 시간을 무언가로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라. 가지 않는 시간이 지루하기도,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시간이 아깝기도 하다.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강제성의 부재가 나를 게으르게 만든다.


그러나 뭐랄까? 외부 압력으로 인한 바쁜 일정 사이의 웹툰 한 편은 고양감이 든다. 더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하고, 다른 한 편을 볼 여유가 생길 때까지의 설렘도 가질 수 있다. 일요일 저녁 6시는 휴일이 다 지나가버린 슬픈 6시 지만, 수요일 저녁 6시는 드디어 한 주가 지났으며 심지어 칼퇴까지 했기에 여유로운 식사를 즐길 수 있는 6시다.


세상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절대적인 미덕과 가치를 찾으려 노력하지만,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그런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지 의문이 드는 거다. 절대악과 절대선을 논하는 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닐지. 비교를 통해 가치를 찾아내는 건 그저 인간이 인간이기에 할 수밖에 없는 본능이 아닐지. 존재만으로 가치 있다. 절대적으로 가치 있다. 이런 말에 집착하게 되고, 그런 의미를 추구하게 되는 게 어쩌면 역설적으로 인간은 그렇게 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은 아닐지.


어쩌다 보니 구구절절 장황하게 글을 썼지만,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이라 하면.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고, 고생이 있어야 과실이 더 달콤한 법. 평소에 마시는 물 한 잔과 열심히 달린 후의 물 한 잔의 가치는 같을 수 없다. 본질적으로는 물 한 잔일뿐이라고 해도, 타고난 본질보다는 부여받는 가치에 대한 평가가 더 크기 때문이겠지.


나에게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바쁘게 일을 끝내고 난 후 느껴지는 만족감이나 뿌듯함, 충족감이 컸던 날. 그래서 휴식이 더 편하고, 저녁이 유독 맛있었던 날. 조금은 들떴던 건지 평소엔 입에 담지도 않을, 부담스러울 정도로 무거운 대화, 불필요한 공개 같은 것들이 이어지기는 했지만 부디 잘 휘발되기를 바랄 수밖에. 약간의 찝찝함이 남았지만 전반적으로는 가끔 웃고, 만족하고, 즐겼던 하루. 바쁜 날, 역설적으로 즐겁기도 했던 날. 상대적인 가치가 올라갔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만일 내가 이 상대성을 부정한다면? 모든 말을 번복하고 인간은 오로지 쫓을 수밖에 없다 생각하는 절대적 가치게 초점을 둔다면? ‘바쁘다’라는 상대적 개념이 없었다면 오늘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날이었나? 바빴기 때문에 달콤했던 여유가 나를 즐겁게 했다. 그렇다면 그 여유는 내가 바쁘지 않았다면 가치 있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는 거다. 만약 평소처럼 적당한 강도의 업무가 짧은 휴식이 곁들여진 날이라고 친다면, 사실 오늘의 내게 웃을 일은, 아주 오랜만에, 없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역설적인 생각이 드는 거다. 나 또한 내가 닿을 수 없는 본질과 절개적인 대상을 추구하는 인간이기에. 내가 원하는 진정한 웃음이란, 이보다 조금 더 감정적이고 감성적으로 다가왔으면 하는 거다. 아, 어쩌면 조금 슬펐던 하루 속에서. 그럼, 내일은 명확한 웃을 일이 생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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