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의 압력을 견디는 일
어제 10km 달리기 내 최고 기록을 경신하였다. 원래 최고 기록은 39분이었는데 2달 반 만에 37분으로 2분 단축하였다. 겨우 2분- 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이것은 엄청난 결과이다. 10km 완주에서 30분대 기록은 대회 순위권 기록이다. 2분을 단축했다는 것은 10등에서 3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정도의 기량을 올린 것이다.
사실 나는 달리기의 재능이 있다. 상체 대비 하체 근육이 발달했고, 몸도 가벼운 편이다. 특히 심박수가 일반인 보다 낮은 편이라서 매우 유리한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보다 끈기와 승부심이 월등이 높은 편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러너로서의 조건은 다 갖췄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시작한 지 3달도 안되어서 40분 초반까지 기록을 끌어올렸다. 확실히 타고난 재능이 있으니 기록 단축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30분대 - 대회 순위권 구간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겨우 39분까지 기록을 단축했으나 그 아래로는 무리였다. 계속 시도했지만 절대 39분 아래로는 절대 내려가지 않았다. 그때 생각했다. 기록 이런 거 생각하지 말고 그냥 즐기면서 달리기로. 포기한 것이다. 왜냐하면 내 성격상 이런 기록에 매달리면 집착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달리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록과 상관없이 존 2를 달리기를 했다. 정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달렸다. 최근에는 몰입 러닝까지 하면서 달리기의 기쁨을 느꼈다. 하루는 6-7km 하루는 10km 이렇게 번갈아 가면서 달렸다. 나의 달리기도 하나의 패턴이 형성되었다. 예전에는 수시로 애플 워치를 보면서 기록을 살폈는데 이제는 그런 거 없이 그냥 달리기만 했다. 얼마나 빨리 달리느냐, 얼마나 멀리 가느냐가 아니었다. 내가 집중한 것은 얼마나 반복적으로 같은 속도로 달리느냐였다. 더 빠르지도 않고 더 느리지고 않고 나의 페이스를 얼마나 잘 유지하느냐에만 집중했다. 이렇게 달리면 목적 따위는 다 사라진다. 그냥 달리는 나의 현재만 집중할 뿐이었다.
그렇게 기록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2달 반 동안 매일 달리기만 했다. 그러다 어제 오랜만에 좀 빨리 달려볼까 하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사실 초반 1-2km 기록이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쭉 속도를 내면서 달리기를 했다. 그런데 중간 5km 구간을 19분으로 주파한 것이다. 갑자기 기록을 경신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더 속도를 내고자 하지 않았다. 이 속도를 계속 유지하는 것에 집중을 하면서 달렸다. 사실 굉장히 빠른 속도였다. 구간 평균 페이스가 3.20km/h였으니. 관건은 속도의 압력을 이겨내면서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이었다. 8-9km 굉장한 속도와 압력이 느껴졌다. 순간 나의 내면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곤(鯤)에서 붕(鵬)이 되려면 이 정도 압력은 견딜 수 있어야지.' 와- 여기서 이 이야기가 나오다니. 갑자기 기운이 올라왔다. '나는 붕(鵬)이 되어야 하기에 이런 압력 정도는 견딜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결국 37분에 10km를 완주했다.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언제가 기록을 경신하겠지의 그 '언제가'가 바로 어제였다.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그날은 찾아왔다. 기록을 포기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집착을 내려놓는 일이었던 것이다. 나는 매일 묵묵하게 성실히 달리기를 쌓았다. 그 쌓이고 쌓인 수많은 날의 반복적인 달리기들이 어제, 나를 밀어 올려 한계를 넘게 해 준 것이다.
경이로움 항상 매일, 보통, 지루함 속에 숨어있다는 사실을 또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