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에 관하여
요즘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를 읽고 있다. 특히 그가 생각하는 현세기 AI 이전 정보의 역사를 재미있게 훑는 중이다. 오늘은 스탈린의 소련 전체주의 시절의 이야기를 읽었는데 통제에 대한 생각들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스탈린과 히틀러 같은 독재자들의 공통점은 정치, 경제, 언론, 집단, 국민 등 그 무엇이든 통제했다는 것이다. 그래야 독점적으로 집권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에너지는 하나로 모으면 강력해진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여기에 재미있게 비교되는 것이 바로 가톨릭 교회이다. 종교 역시 통제의 역사를 지닌다. 독재정권과의 공통점은 통제를 한다는 것이지만 다른 점은 힘을 모으는 시간의 속도이다. 종교는 오랜 시간 천천히 권력을 키웠지만, 독재정권 대부분은 굉장히 빠른 시간에 힘을 키웠다. 이 차이점은 영향력의 소멸 시간과도 비례한다. 종교는 그 힘이 미미할지라도 여전히 살아남아있으며 반면 독재정권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붕괴된다.
역사 전체를 통틀어 봐도 빠르게 형성된 정치권력은 단숨에 무너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간은 빠른 속도를 언제나 갈망하기에 이런 역사적 사건들은 매력적이며 오래오래 회자된다. (히틀러와 나치 관련된 문학과 영화가 얼마나 많은가.) 인간의 수명이 짧기에 긴 호흡보다는 속도감 있는 것을 선호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빨리 모인 것은 빨리 사라지고 천천히 쌓아 올린 것은 무너지기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같은 통제라고 하더라도 빠른 속도 속의 통제는 언제나 파멸에 이른다. 반면 느린 속도 속의 통제는 자산이 되는 경우가 많다.
빠른 속도는 매혹적이다. 재미있다. 느린 것은 외면하기 쉽다. 재미가 없다. 지루하다. 그러나 결과는 충실하다. 여기서부터는 선택의 문제이다. 나같이 통제감을 좋아하는 성향은 빠른 속도에 매료되기 쉽다. 하지만 어는 순간부터는 느림을 선택하고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당연히 자신답지 않게 살고 있다고 내면의 목소리가 들린다. 질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렇게 갈팡질팡 하긴 하지만 예전처럼 속절없이 휘둘리지 않는다. 중요한 것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삶의 균형이었다. 빨리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충실하고 견고한 것을 원한다. 그렇기에 숨 막히는 통제보다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단련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