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고, 받아들이고, 온전히 느끼고
현대 역사에서 소련과 미국의 비교는 상당히 일반화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미국은 여전히 강대국인 반면 전체주의와 공산주의를 지향한 소련은 그 이상을 이루지 못하고 붕괴되었다. 이후 러시아는 여전히 거대한 국가이지만 이전 같이 강력한 영향력은 미치지 못한다. 특히 경제나 기술 분야에서는 상당히 뒤처진 상태이다. 이는 냉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이유가 보이긴 한다.
냉전 시대 소련은 정보의 흐름을 허브 하나로 통하게 하는 중앙 집중 전체주의였다. 감시와 통제로 정보를 억압하고 시스템을 단순화시켰다. 물론 효율은 뛰어났다. 인권과 윤리적인 면을 제외하면 국가 운영에 있어서는 굉장히 잘 돌아가는 모델이었다. 반면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미국은 정보를 통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흩뿌렸다. 모든 것이 자유였다. 그러다 보니 사회는 혼돈 그 자체였다. 자유의 이름으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발언을 하고 빽빽 소리 지르고 싸우고 부셨다. 케네디 암살 사건이 있었던 1960년대 미국은 당장이라도 망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현재 시점 소련은 붕괴하고 미국은 세계 최강의 국가가 되었다. 참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냉전 시대 역사를 엄청 디깅 하지는 않았지만) 정보를 다루는 방식에서 이 두 국가의 차이점은 나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결국에는 시대의 흐름에서 나오는 정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것이다. 즉 정보를 통제하면 안정될 수 있지만 성장은 힘들다는 것이다. 소련도 결국 고인 물만 남고 성장 동력을 잃어버려 자멸하고 말았다. 안정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혼란스럽고 무섭다. 그래서 대부분의 인간들은 새로운 것이 나타났을 때 저항을 한다. 이건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여기서 새로움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다음 세계로 건너가는 사람들은 무조건 성장한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생존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이 되어 있다. 결국 선택의 문제이지만 성장을 원한다면 열린 자세는 무조건 필요한 것은 맞다.
통제에 집착적인 나는 오히려 소련의 전체주의적 성향과 맞다고 볼 수 있다. 자극을 제거하고 내가 편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에만 존재했다. 하지만 깊은 내면에서 나는 성장을 원한다. 소련의 전체주의 역사를 보면서 나는 숨이 막혔다. 질서는 좋아하지만 이것은 아니었다. 윤리와 인권이 무시되는 통제는 내가 지향하는 바가 아니다. 그렇다고 혼돈의 미국도 아니다. 하지만 선택을 해야 한다면 혼돈을 선택하는 게 맞다. 어지러운 것은 싫다. 하지만 고인물이 되는 것은 더 최악이다. 차라리 모든 정보에 귀와 눈을 열고 받아들이고 온전히 느끼자. 시대의 흐름을 타면서 스스로 부서지고 치유하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나에게 필요한 방향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