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과 구상의 조화
두려움이란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데서 온다. 마치 유령 같은 것이다. 막상 그 실체를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별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리고 질량이든 부피든 그 무엇이든 쪼개서 실체를 해체한다. 그렇게 아주 작은 단위로 나눈다면 세상에 못할 것은 없다. 이론상 아주 간단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간단한 것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쪼갤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은 이미 큰 덩어리가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그것은 크다. 그래서 우리는 큰 것을 먼저 볼 수밖에 없다. 큰 것은 아름답고 웅장하다. 욕망이 생긴다. 작은 것들이 하찮아 보인다. 반면 그 큰 것은 절대적 공포로 보이기도 한다. 두려움이 생긴다.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시작조차 하고 싶지가 않다. 그렇게 무엇을 욕망하다 과속을 해서 박살이 나거나 두려움에 떨다 정체되어 자멸의 길을 걷는다.
나 역시 오랜 세월 이 딜레마에 시달려왔다. 욕망과 두려움 사이에서 우스꽝스러운 댄스를 지속해 왔다. 하지만 더 이상 이렇게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수많은 자료를 보고 정보를 모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겨우 알게 된 방법이 하나 있었다. 원하는 것을 이루는 방법 말이다. 그것은 바로 목표는 어렴풋한 느낌으로 정하고, 실행은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목표는 그저 느낌이다. 그냥 그 감정을 느끼고 잊어버려야 한다. 욕망으로 변환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이것을 여러 경험 데이터를 검토하다가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 대학교에 가고 싶다.라고 하자. 그냥 그 대학에 들어가서 생활하는 충만하고 기쁜 그 감정만 미리 느껴보는 것이다. 그리고 잊어버린다. 마치 꿈 같이. 잊어버리는 것이 핵심이다. 계속 생각하면 욕망으로 변질된다.
반면 실행은 선명하고 날카로워야 한다. 그리고 작아야 한다. 욕망이 없는 상태에서 그 대상이 작으면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작은 실행들이 매일매일 연결된다. 목표는 굳이 의식적으로 상기할 필요는 없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해도 그것은 이미 무의식에 들어왔기 때문에 실행은 자동으로 정렬된다.
추상과 구상의 적절한 조화- 이것이 바로 원하는 것을 구현하는 시스템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