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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볼 모으기 Day 8.

'반복'을 신뢰한다.

by 쾌락칸트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사람들에게 가장 안전한 것은 '능숙함'이라고 한다. 스케이트 보더들은 대부분 도심 안에서 탄다. 그들에게 도시 공간의 모든 것이 장애물이고 필연적으로 거의 대부분 정말 많이 다친다. 하지만 그들은 또 위험에 도전하고 보드를 날리고 몸을 싣는다. 가만히 보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그들은 같은 행위를 반복 또 반복한다. 그래야 안 다칠 수 있다. 능숙해져야지만 다치지 않는다. 능숙은 반복에서 나오기에 그 '반복'은 필수적이다. 그래서 모든 도전과 성장에는 '반복'이 핵심 요소이다. 나 역시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큰 성취가 있었던 순간들은, 그 지루한 반복의 시간들 이후에 나타났다.


제일 먼저의 기억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이다. 박정희만큼 엄격했던 TJ전형의 담임 선생님. 매일 복습과 예습을 강제적으로 시켰다. 그리고 지키지 않으면 강한 체벌을 했다. 그 시절은 그랬다. 훈육에 매우 관대했다. 거의 군대식이었다. 처음에는 저항감이 생겼지만 정말 맞지 않으려고 매일 예습과 복습을 의무적으로 반복했다. 하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말 놀라운 성적의 결과들이었다. 문과적 학습에 강했던 나는 국어, 영어는 항상 '우'였는데 수학이나 물리 같은 이과적 학습에 취약해서 '양'이나 '가'를 받기 일쑤였다. 그런데 반복된 학습의 결과로 수학, 물리에서 '우'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다 졸업 즈음에는 과목 전체 올 '우'를 받게 된 것이다. 군대식 학습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여기에는 '성실한 반복'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이런 선생님들이 없었기에 그냥 대충 자유롭게 사는 나로 되돌아왔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미대에 가기로 결정이 되었다. 미술에 기본적인 재능은 있었지만 입시는 다른 문제였다. 전략과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순진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나는 처음부터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때 당시 미대를 가려면 석고데생은 필수였다. 바보 같은 어설픈 그림만 계속 그려졌다. 답답했다. 하지만 별수 없었다. 그냥 그리는 수밖에. 매일 우직하게 그리기 시작했다. 3년 정도 매일 그렸다고 볼 수 있다. 나중에는 그리는 것 말고 다른 감각은 사라져서 내가 살이 17킬로나 쪘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다 쓰고 끝 부분만 남은 작은 4B 연필이 큰 박스에 가득 채워질 정도로 매일매일 나는 그렸다. 그렇게 그리는 것 말고는 아무 감각이 없었던 어느 날, 내 성적으로는 가기 좀 어려웠던 홍대 미대 실기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시험날 기대가 없어서 그런지 마음이 참 편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 유명한 학교 구경이라도 가자라는 마음으로 시험에 참여했다. 너무 기대가 없어서 인지 원래 4시간이 시험 시간인데 3시간 만에 그림을 완성했다. 사실 좀 놀랬다. 내가 그동안 그린 것 중에 제일 아름다운 그림이 나와서. 나는 너무 기분이 좋았고 여한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이 끝나고 나오니 엄마가 밖에 기다리고 있었다. 날씨도 좋았던 그날. 나는 정말 가볍고 신나는 마음에 엄마에게 웃으며 달려갔다. 엄마는 나중에 그날 나의 밝은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너무 놓은 모습이어서 그랬나 싶다. 그렇게 가볍게 시험을 치르고 엄마랑 홍대에서 김치 칼국수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이후 나는 그 완벽한 그림을 잊었다. 한편 가능성이 높은 다른 학교 입시 준비하느라 바쁘게 지냈다. 그 학교의 시험 발표날 나는 애초에 기대가 없었기에 붙은 친구들을 축하해 주고 떨어진 친구들을 위로했다. 정작 내 결과를 보지도 않고 있었는데 친구 한 명이 그냥 확인이라도 하라는 것이다. (그 당시는 인터넷이 보급화 되지 않아서 전화로 확인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전화를 했는데, 믿을 수 없었다. 합격한 것이다. 심지어 수석 합격. 이 날 이후로 내 인생은 바뀌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무수한 반복과 그리고 내려놓음의 미친 조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단련의 시기를 넘어서 홍대 미대를 다니는 동안에 또 나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았다. 졸업 이후 나는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반복과 단련이 없는 나는 항상 거의 무정부주의 상태이다. 프랑스에서 여차 저차 해서 보자르에 편입을 하게 되었다. 예술과 자유의 나라에서 나는 대충 즐기면서 살고 싶었는지 그렇게 열심히 학업을 하지 않았다. 연애를 하고, 매일 와인을 마시고, 파티를 다니고- 심심하면 한국에도 잠시 가서 친구들과 놀기도 했다. 그 결과 나는 첫해에 유급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미술 디자인에서 우등생이었던 나에게 유급이라는 것은 충격이었다. 아무리 놀아도 과제 제출은 다 했고, 결석도 없었는데 유급이라니. 나는 책임자에게 따졌다. 그런데 되돌아온 답변이 놀라웠다. 너는 결과만 보여줬지 과정은 보여준 것이 없다고. 나의 큰 실수는 한국에서 처럼 결과만 보여주는 식으로 살았던 것이다. 나태한 중간 과정을 보여주기 싫어서였는지, 불어가 익숙하지 않아서였는지 나는 결과물만 내고 중간에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기피했던 것이다. 프랑스에 왜 왔나. 나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했다. 나는 더 배우고 싶고, 더 많이 경험하고 나의 세계를 확장하려고 프랑스에 온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음 해 나의 패턴을 부수기로 결정했다. 집도 학교 앞으로 이사했다. 불필요한 것을 정리하고 딱 작업을 위한 환경을 만들었다. 그리고 매일 학교를 갔다. 거의 문 열고 문 닫고- 거기서 살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작업의 반복 또 반복을 실행했다. 초등학교 6학년, 그리고 고등학교 입시 시절의 나를 다시 떠올렸다. 선생들에게 불어가 익숙하지 않아도, 틀려도 계속 질문하고, 작업하고, 또 질문하고, 토론하고, 작업하고 무수한 반복과 단련의 시간을 보냈다. 역시 이런 단련의 시기에 나는 유흥을 하지 않았다. 와인을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작업을 우직하게 지속했다. 그렇게 미친 반복과 실행의 3년이 지나고 그 결과 나는 프랑스 보자르 학사와 석사과정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수석 졸업을 하게 되었다.


위의 세 가지 이야기는 나에게 반복의 힘을 강렬하게 느끼게 해 준 경험들이다.

반복을 통해 성취를 하면 나는 또 나태해지고 위기에 빠진다. 그렇게 또 반복을 통해서 위기를 탈출한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또 나태해진다. 다시 위기가 온다.

반복의 성취가 극단적일수록 나태의 기간은 길어진다. 이번 역시 그랬다.

2년 정도 나태의 기간을 보냈다. 다시 반복과 단련의 기간이 필요한 시점에 이렇게 드래곤볼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알게 되었다. 성취를 했다고 멈추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목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목표를 이루면 다시 나태해진다. 아마 대부분의 연예인들이나 셀럽들이 나락으로 빠지는 것이 이것 때문인 것이다. 그냥 본질은 반복으로 이뤄진 단련의 과정에서 좋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자유를 원하고, 안전을 원한다는 것은 성취 후 멈춤이 아니다. 그러면 바로 나태 지옥에 빠지는 것이다. 오히려 반복과 단련만이 자유와 안전 그리고 평화를 준다. 목표는 그냥 나침반 같은 것. 성실한 반복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고, 원하는 것을 이뤄나가는 과정 속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 이것이 생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항상 현재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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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호하고 일어났다 한다. 수면 데이터도 아주 양호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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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스웩 쩌는 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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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조던 피터슨 쌤한테 뼈 맞고 있다. 명료한 생각과 용기 있는 결단- 새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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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번 무라카미 하루키 도시락은 너무 마음에 든다. 핏감 장난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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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비숍이 말하는 최상의 이득이 이것인가. 모두가 말하는 기업의 비전이 이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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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점심 샐러드- 진짜 매일 먹지만 안 질리는 건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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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터미네이터처럼 운동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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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 시장에서 끊어온 돼지 앞다리살과 팽이버섯, 가지의 조합. 풍성한 저녁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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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하고 있다. 매일 셀프 칭찬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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