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15
구약의 욥기는 내가 초신자일 때 가장 많이 들춰보던 장이다. 고난의 처절함이나 단계별로 익어가는 생각과 감정의 세세한 묘사까지 실제로 문학으로 일컬어지는 욥기는 당시의 나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때 나는 왜 그리 힘들었던지, 차라리 욥처럼 살점이 찢기는 고통이 낫겠다고 생각할 만큼 괴로운 밤의 터널을 오랫동안 빠져나오지 못했는데, 이런 내 마음을 욥이 그대로 읊어주니 가끔 눈물 한번 쏟고 나면 후련해지곤 했었다.
그 후로 나는 다치지 않으려 보다 덜 원하고 덜 분노하며 여러모로 희미해졌고, 욥의 고통의 언어들이 그리 와닿지 않았었다. 그러나 요즘은 달리 다가온다. 누군가 부당하게 내 길을 막아서고 여전히도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해 욥의 대사가 또다시 내 것인 양 공감하면서도 그때와는 다르게 반응하는 내가 있다.
감사하는 마음이 고개를 들며 나를 다독인다. ' 오 이은진 대단한데? ' 내 오른쪽 머리 위에 떠 있는 천사가 피식 웃으며 뱉은 대사라고 하자. 그런 마음이 새싹만큼만 돋아도 대단한 거라 생각하지만, 이미 묘목 정도로 자란 것 같다. 어쩌면 이제 나도 조금 알게 된 걸까? 감사함을 인식하는 것이 내 행복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래, 어떤 일도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이 고난들로 분명 나를 단련하셔서 어느 곳으로 인도하실지 다 계획이 있으신 거다. 그걸 기대하는 뇌가 된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 어떤 순간에 건 살아서 우리에게 다가오고 깨닫게 하고 위로를 준다. 그 말씀을 느껴보지 못한 이들에게 전해야지.
머리가 희끗하신 아버지뻘 동네 친구 강승원 아저씨와 함께 등산을 하며, " 나에게도 좀 전해줘 봐라. 나도 믿고 싶은데 뇌가 다른가 봐." 하셨던 날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