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글을 쓰는 걸까

무제. 혹은 미제.

by Albeit

(이전에 블로그에 쓴 글을 가져오며)


나는 어떤 바람이 불어서 이 문자들을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


참 이상한 일이다. 이전의 나는 창조적인 인간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시절 의례적으로 행하던 과학의 날 행사에서, 내가 발명하고 싶은 물건들을 상상하고 그려보라고 하면 나는 항상 일관되게 연필 + 볼펜 + 그 외의 각종 도구들이 붙어있는 만능 필기구를 그려서 내곤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초라한 전두엽을 가진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되곤 하는데, 그만큼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창조하고, 새로운 것에 대해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작업은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꼈다. 논술, 혹은 작문 또한 그 영역 중 일부라고 생각이 되는데, 대학교를 들어가기 위해 공부를 할 때에도 논술, 혹은 창의적인 대답을 원하는 면접 같은 것들은 보기 싫다고 생각하여 애초에 서류를 집어넣지도 않았었다. 이후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논문을 써야 할 때에도 풀리지 않은 것들이 넘치고 넘쳐나는 현대의학에 대해 단 하나의 실낱같은 의문을 갖지 않은 채 타인이 내게 건네준 아이디어를 갖고 논문을 썼다는 점에서 나의 창조에 대한 삶의 태도는 항상 일관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수 주 전까지는.


인간이 글을 쓰고, 기록을 남기고, 그 내용에 대해 다시 되돌아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 문자라는 것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 전에는 각종 이야기들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제사장의 모습으로, 혹은 현자의 모습으로, 아니면 음유시인들과 같은 모습으로 자신들의 선조에게서 들은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였다. 그렇게 세대를 거치고 뛰어넘어서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에 대해 생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 그 타당성은 내게는 흥미가 없으며, 다만 무엇이 과거의 사람들 (이는 현대까지도 넘어오는 것 같다) 에게, 제대로 기록할 문자도 없어 그림 혹은 구두로 과거의 이야기들을 후대로 계속 넘기게 하였을까. 그 이유를 알게 된다면 내가 저녁 늦은 시간에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나하나 개별적으로는 의미를 갖지 못한 신호들을 끼워 맞춰서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타당성이 생기게 되는 것일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인간은 왜 글을 쓰는가. 무언가를 전달하고 싶어서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무언가를 전달해서 얻고자 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남을 설득하고 싶다는 가벼운 이유에서 시작하여 명필가가 되어 명성을 얻을 수도, 금전적인 보상을 얻을 수도, 타인에게 정보를 전달했다는 자기 만족감을 얻을 수도, 자신이 살아있었다는 증거를 남기는 것일 수도, 혹은 자신 안에 맴돌고 있던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생각들을 정리하는 것에서 오는 정갈함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무엇인가.



1. 2022년을 기준으로 그 해 초에, 우연하게 나와 아내의 옆에 조그맣고 귀한 생명체가 하나 자리를 잡고 눌러앉게 되었다. 지금도 그 녀석은 내 뒤에 앉아서 내가 무얼 하는지 빤히 쳐다보고 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우리 옆에 있게 된 토끼를 바라보고 있다 보면 이 녀석의 귀여움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사진으로 찍는 것 이외에, 이 녀석을 묘사한다면 어떤 표현을 쓰는 것이 좋을까 라는 가벼운 충동, 그러나 행동으로는 옮겨지지 않았던 미약한 찰나의 생각이 있었다.


2. 어떠한 우연한 권유를 바탕으로, 2022년 중순에 뉴욕을 다녀오게 되었다. 다녀오면서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뉴욕의 책방에서 간단한 소설을 하나 사게 되었고, 그 책의 이름은 '이방인' by 알베르 카뮈 였다. 이전에 읽어보았던 소설인지라 내게 친근함을 주었던 것일까. 이방인을 원서로 읽게 되고, 알베르 카뮈의 철학에 대해 알아보고자 '페스트', '시지프의 신화'를 사게 되었다. 이 또한 과거의 내게는 없었을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이방인'을 읽고 나서 그 행위는 그 단계에서 마무리가 되었지, 다음 단계로 나아가 그 작가에 대해 알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어떤 바람이 불게 된 것일까.


3.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이유. '시지프의 신화'를 읽게 되면서 세상에 대한 알베르 카뮈의 태도를 정리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일본 만화 '도쿄 구울'의 결말을 보면서 한번 즈음 정리하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나는 내 안에 맴돌고 있던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아직 태에 머물러 있으나 세상으로는 나오지 않았던 나만의 생각들을 지금 이 시간에 컴퓨터 앞에 앉아 하나씩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다 보면 내 뒤에 있는 토끼에 대해 누가 봐도 딱 우리 토끼구나라고 알 수 있을 정도로 묘사를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이루어질 수 없는 상상을 하면서.


어릴 적 싸이월드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의 글들을 보기 위해서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가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즈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의 나의 생각은 어떠했는지 알기 위해서. 그 짧은 순간순간의 감정들이 지금의 내게 던져주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내 생각을 정리하고, 다른 책들에 대한 나의 감상을 적기 위해 분류한 카테고리의 첫 글. 제목은 없으므로 무제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제목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미제라고 해야 할지. 물론 미제라는 단어를 내가 생각하는 식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는 국어사전에 미제를 검색하면 나오는 뜻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언어에는 창조의 성격이 강하게 묻어있는 바, 아무도 관심이 없을 만한 이 글에서 내가 제목을 아직 정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미제라고 적은들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사실 위의 내용을 반영하는 단어는 역시 아무래도 무제라는 단어가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혹은 내가 내 입맛에 맞는 단어를 만들고자 하는 나름대로의 창작욕에 불타서 미제라는 단어를 고집하는 것인가 생각하면서 이 카테고리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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