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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s Jul 18. 2020

예테보리에 사는 일

0. 프롤로그

이 년 전 1월, 나는 대륙의 반대편에 발을 내디뎠다. 반은 계획적으로, 나머지는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이 나를 6개월간 그곳에 던져놓았다. 그 6개월이란 시간이 어딘가에 살다 왔다고 하기엔 민망할 만큼 짧은 시간이지만, 그곳의 생활에 적응하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공부를 하고, 요리를 시작하고, 혼자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집 앞에 있는 산에 매일 오르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겪는 모든 일은 새로웠고, 즐거웠고, 자유로웠다. 동시에 힘들고, 외로웠다. 어쨌든 그곳에서 잘 살아 돌아왔으니 이젠 그 모든 일들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군에 입대한 지금도 그때의 추억에 잠겨 하루하루를 버틴다. 다만 내가 그곳에서 사는 동안 매일을 기록하는 습관을 갖지 못했음이 아쉬울 뿐이다.


인간의 기억은 망각곡선에 따라 점점 희미해진다고 했다. 지로 기억을 되뇌지 않는 이상, 곧 갖고 있던 거의 모든 것을 잃을 것이었다. 그걸 몰랐던 나는 사진을 찍을 시간에 두 눈으로 세상을 담았고. 귀로 듣고, 코로 느꼈다. 그게 더 인간적인 기억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내 가슴속에 남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결국 남는 게 사진과 한두 줄의 글뿐이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억이  세월을 견디다 보면 흐려지고 무뎌지기 마련이다. 실수했던 안 좋은 기억들은 아프게 각인되어 나를 지킬지언정, 언제든 추억하고 싶은 좋은 기억들에만 애석하게도 노이즈가 생긴다.


그래서일까? 문득 지금부터라도 그때의 기억을 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꼭 간직하고 싶은 기억에 시간이 얼룩을 묻히고 있는 것이 서서히 느껴져서이다. 매일 타던 트램의 번호가 기억나지 않기 시작했고, 매일 가던 야채 가게 아저씨의 얼굴이 흐릿해졌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행복했다고만 기억할 뿐, 정확히 무엇이 그리도 행복한 추억으로 남았는지 정확하게 말하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글은 순전히 나를 위해 쓰는 일기와 소설의 중간쯤 되는 무언가다.


앞으로 할 이야기가 내가 경험한 시간의 순서가 아닐 수도 있고, 정확히 경험했던 사건 그대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이건 지금의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솔직한 글이다. 비록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조금은 빛바랜 기억이지만, 최대한 그때의 경험과 감정을 잘 추억하는 밝은 글이 될 것이다. 그 경험이 있게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사실 스웨덴이라는 목적지는 존재한 적이 없었다. 대학에 간 후 일상에 지쳐 많은 것에 권태를 느끼던 때였다. 그저 어딘가로 떠나가야겠다는 생각 하나뿐이었던 때가 있었다. 문득 유럽권 교환학생을 선발한다는 공고문이 페이스북을 보고 있던 초점 없는 눈에 스쳤다. 뭔가에 이끌린 듯이 공고문을 클릭했고, 신청 요건을 살펴보고, 갈 수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영어 성적으로는 갈 수 있는 곳이 없어 고민하던 찰나에 스웨덴의 한 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Chalmers University of Technology : 공과대학생만 지원 가능'


그 한 마디에 그곳에 가기로 결정했다. 이런 조건이라면 다른 학생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무조건 떠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그 학교가 스웨덴의 어느 도시에 있는지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신청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몇 달 후 그곳으로 떠났다. 스웨덴은 유로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라는 것조차 모른 채 유로화를 환전해 가져가기도 했다. 떠나기만 하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아지겠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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