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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s Jul 26. 2020

열여덟 시간

1. 몸살과 함께

출국 이틀 전이었다.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고 한가롭게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때였다. 문득 손발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그토록 기다리던 출발의 순간을 고작 이틀 남긴 중요한 때에 우리의 몸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사실은 무섭다고. 그저 떠나기 위해서 떠나는 것뿐이라고 망설임 없이 고백하는 듯했다. 나도 모르게 가기 싫다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도 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떠날 날을 상상하며 설레던 감정들은 어느샌가 두려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원래부터 그 둘은 같은 감정이었던 걸까. 눈물이 났다. 누군가 그때의 나를 보았다면 아마도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일 것이라 오해했을 것이다.


열은 출국하는 그 날까지도, 비행기 안에서도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해열제로 몸을 진정시켜보려고도 했고, 스며드는 한기를 이기지 못해 담요를 덮어보기도 했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오히려 배배 꼬이며 담요 속으로 점점 말려 들어가는 내 몸이 불안한 내면을 더 잘 표출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혼자 어딘가로 떠나는 어린 방황에 어떤 연민을 느끼셨던 걸까. 옆자리에 계시던 어느 부부께서 문득 손을 내밀며 말을 걸어오셨다. 학생, 껌 하나 줄까요? 가끔은 거절하기 힘든 인자함을 만날 때가 있다. 아주머니의 손에 있던 자일리톨 껌을 받아 입에 넣었다. 상쾌한 향이 잠시나마 열을 내려주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그 잠깐 뿐이었다. 한기는 다시 스며들었고 담요 속으로 다시 나를 밀어 넣었다. 감사하다는 한마디 이후 바르샤바 공항에 도착하기 전까지 우리는 모두 침묵으로 돌아갔다. 그 부부는 어디로 가는 중이었을까. 때늦은 신혼여행은 아니었을까. 문득 궁금해진 순간도 있었지만 묻지 못했다. 적어도 나는 공항이 아니라 병원으로 갔어야 했다.


상황은 도착할 때까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환승을 위해 바르샤바 공항에 잠시 내렸을 때에는 오히려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 내 눈에 더 이상의 한국인들은 보이지 않았다. 키 큰 금발의 중년 서양인에 둘러싸인 내 처지를 보고 있자니 어지럽고 속이 더부룩했다. 우리보다 일곱 시간이 느린 세상.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목이 아득하게 아파오는 그런 커다란 나라. 나는 무엇을 상상하고 이곳에 온 것인가.




오한에 시달리며 예테보리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문득 바르샤바에 도착하면 집으로 전화하겠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배터리가 반절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어쨌든 전화가 하고 싶었다. 한국은 이미 자정이 다 된 시간이었지만 그런 것마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단 1분만이라도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싶은 욕구가 절실했다. 아니 어쩌면 무의식 중에 내가 잘 살아 도착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을 수도 있다. 이렇게라도 해야 남은 세 시간의 비행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나 통화가 원활하기를 기대하는 것부터가 큰 실수였는지 모른다. 그 한 번의 통화를 위해 한참을 와이파이와 씨름했다. 또 몇 번을 더 시도했을까 통화가 연결되었다. 언제 인터넷이 끊어질지 알 수 없어 불안했을까, 아니면 서로 피곤했던 것일까. 간신히 연결한 목소리는 짧고 아쉬웠다. "나 여기 잘 도착했다. 두 시간 후에 예테보리행 비행기에 다시 타야 한다. 사실 이곳에서 이미 몇 시간째 기다리는 중이다. 엄마도 걱정 그만하고 이제 잘 자. 내일 아침에 예테보리 도착하면 다시 전화할게. 그땐 잘 안 끊길 거다."


"그리고 열은 다 내려서 말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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