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있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게 낫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무대 위에서 연기를 배워서 연극을 하는 배우는 없다. 무대 위에서는 공연을 해야 한다. 당신이 회사에 출근을 한다면, 당신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흔한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그 말이 맞다. 20대 때는 인상적인 말이었는데, 지나고 보니까 요즘 환경에 맞는 말은 아니다.
요즘은 무대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세상이다. 요즘에는 정해진 무대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무대에 대한 비유를 사용해 보면, 가장 나쁜 것은 무대에 오르지 않는 것이다. 스타트업이라는 무대가 있다.
스타트업. 뭔가 멋지지 않은가? 열정으로 일하고, 꿈을 이루며 성장하는 어딘가.
먼저 밝혀두면 그런 건 환상이다. 많은 경우 스타트업은 별 볼일 없이 시작하는 초기 기업일 뿐이다. 생계든, 부모님의 잔소리든 뭐든 간에 스타트업이라는 무대에 오르거나 올라야 한다면, 연기력을 준비하기 전에 무대에서 무엇을 얻을지 꼭 생각해야 한다.
스타트업이라는 무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실력, 커리어, 일의 흐름, 성장이다.
어떤 목적으로 무대에 올라갈지 잘 정하면, 인생이 바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하나씩 짚어보자.
스타트업의 장점:
모든 일을 당신에게 시킨다. 실력은 양에 비례해서 늘어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닥치는 대로 일을 소화하다가 보면, 어느새 '잘'하게 된다. 어차피 기댈 사람도 없기 때문에 기존의 부조리한 관습에 얽매일 필요 없이, 새로운 방법으로 능동적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내가 디자인을 하니까, 디자이너 기준으로 가장 먼저 말하면, 디자인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UI, Visual, Markting, Promotion, Branding, Contents
UX, UI, Service, Product, Intreraction, Information, Data
Voice UI, AI, VR/AR, Interactive Attraction
조언을 하자면, 당신이 20대이고, 지금 시작한다면, 30대에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돼야 한다. 전문가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누군가가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말을 하면, 대개 이런 질문을 한다. '앞으로 10년 후에, 그 디자인 분야가 없어지면 어떻게 하죠?' 디자인 분야는 잘 없어지지 않고, 압축된다. 분야가 압축될 때, 가치 있는 사람으로 남아 있으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디자인은 유연하고 생존성이 강하다.
지난 100년간 대부분의 기업은 가시적인 영역, 비가시적인 영역, 기술 영역과 연계성이 높은 디자인 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왔다. 그러니까 뭐든 손에 잡고 잘 만드는 게 중요하다.
3가지 영역 모두에 발을 들일지, 한 부분만 잘 팔지는 자신의 성향에 맞는 선택을 하고 꾸준히 하루하루를 쌓아가야 전문가가 될 수 있다. 그래도 최소한의 라이프 밸런스를 유지해서 건강을 지키면서 일하길 바란다.(가끔 소고기를 먹는 것이 좋다.)
스타트업의 장점:
스타트업에는 '로켓에 타라!'는 말이 있다. 내 실력과 위치가 어떻든 간에 운 좋게 들어간 회사가 대박을 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무조건 운에 기대기엔 리스크가 크다. 달로 날아가는 줄 알았는데, 타고 보니 대포동 미사일인 경우, 회사에 함께 산화할 수 있다. 중견 회사에 비해 스타트업이 유리한 케이스가 바로 이 경우다. 급성장. 스타트업에서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장 설레는 단어일 것이다.
여기서 커리어는 이직을 통한 연봉과 직책의 상승을 말한다. 커리어를 목표로 할 경우는 일의 분야보다 회사의 네임벨류와 근속기간이 중요하다.
네임벨류가 좋아도, 몇 개월밖에 일하지 않았다면, 그냥 스쳐간 사람일 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순간을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어떤 회사가 언제 대박을 칠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미 이름을 아는 회사는 이미 자리가 꽉 찬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회사의 마케터가 아주 치밀하게 짜 놓은 그림에 현혹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 회사의 역량을 가늠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블로그에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
구글에서 검색하는 것으로는 알기 힘들고, 직접 가봐야 한다. 대대적인 투자를 받은 회사를 위주로 보는 것이 좋고, 실제 회사에 방문했을 때, 그 회사의 '엔진'인 사람을 잘 찾아야 한다.
눈에 띄는 대표 이외에 그 회사에서 가장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된다. 스티브 잡스보다는 스티브 워즈니악이나 조너선 아이브 같은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면 된다. 보통은 마케터,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중 두 사람이 일을 잘할 경우 가능성이 있다. 가장 이상적인 조합은 돈을 잘 끌어오지만 일정에는 토 달지 않는 대표, 성격 좋은 디자이너, 말 수 적은 프로그래머, 말 잘하는 마케터가 있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가장 나쁜 케이스는 투자는 못 받으면서 프로젝트에 일일이 간섭하는 대표, 성격 나쁜 디자이너, 잔소리 많은 프로그래머, 말 없는 마케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세상에 절대라는 것은 없다.
보통 커리어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인맥을 통해 내부의 분위기를 수소문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런 종류의 사람은 체리피커나 무임승차하는 사람으로 주변의 눈총을 받거나 구설수에 오를 수 있다. 가급적 SNS를 멀리하고, 항상 겸손함과 진정성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스타트업의 장점:
스타트업은 직군의 경계가 약한 경우가 많아서 일을 어떻게 하는지 골고루 체험해 볼 수 있다. 각각의 직군은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는데, 그 개성을 잘 파악하면 프로젝트를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고 커뮤니케이션에도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각 직군마다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디자이너의 시간은 현실보다 항상 늦게 흘러간다. 개발자의 시간은 현실과 관련이 없다. 마케터의 시간은 미래에서부터 거꾸로 흘러온다. 사장의 시간은 현실의 10배 정도 빨리 흘러간다. '싫다'의 표현도 다르다. 디자이너의 경우, 파일 이름에 '파이널' 비슷한 게 붙어 있으면, '싫다'라는 표현이다. 개발자의 경우, '이건 기능이~'라고 시작돼서 '해봐야'로 끝나면, '싫다'다. 이해와 관용의 시간이 필요하다.
관리자는 프로젝트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날고 기는 사람들을 모아놔도 적절한 매니징이 없으면 프로젝트는 엉뚱한 방향으로 폭주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프로그램, 디자인만으로 안 되는 일이 많다. 개발과 운영을 비롯한 많은 문제가 프로젝트의 발목을 잡는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기획이나 매니저 역할을 목표로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방향성과 역학 관계를 잘 알아야 한다. 얼핏 보면, 실력을 쌓거나 커리어를 쌓는 것과 비슷한 말일 수도 있다. 직급 상승을 목표로 해야 하는 경우는 이런 경우다. 모든 사람이 실력이 뛰어나거나 회사를 보는 눈이 뛰어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선수보다 감독으로 더 뛰어난 경우가 있다. 관리와 계획이 뛰어난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매니저나 팀장으로 목표를 잡는 것이 좋다.
가장 안 좋은 케이스는 '난 디자인을 못하니까 기획을 해야겠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사람이다. 부탁이니까 제발 이러지 말자. 버릇된다. 친한 사이에 농담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직급을 목표로 하는 경우, 나중에 실무자와 후배에게 대차게 까이고 혼자 술로 마음을 달래야 할 수 있다.
스타트업의 장점:
많은 스타트업이 인력 채용에서 사용하는 어젠다이다.
성장한다는 말은 사실 반은 진실이고 나머지 반은 거짓말이다. 혹은 전부 다 거짓말이다. 숨만 쉬고, 월급만 받아도 당신은 어느 쪽으로든 성장한다. 가장 안 좋은 케이스는 뱃살과 엉덩이 지방만 성장하지만, 주변에서 하는 말만 주워듣고, 구글링만 잘해도 절반은 성공이다. 스타트업에서 성장이라는 말은 일을 힘들게 하고 거기에 능숙해진다는 의미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을 처음부터 하다가 보면, 뭔가 깨닫는 것이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회사원이 되면 겪는 딜레마가 있다. 일상의 권태다. 보통 안정적인 회사원의 생활은 사수에게 일하는 법을 배우고, 적당히 배운 다음에 퇴직할 때까지 일정한 주기로 일이 반복된다. 당장 브런치에 퇴사로 검색해보면, 다들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니면서도 퇴사를 꿈꾸고 실현한다.
뭔가 부족함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일이 힘들지도 않고, 돈도 적당하고, 사람들도 좋은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시기가 반드시 온다.
그런 경우 나는 항상 말한다. "회사 밖은 춥고 배고파."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낯선 환경에서 낯선 일을 열심히 하면서 뭔가 딱히 말할 수 없는 것을 경험하고 배우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나는 그런 경우가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이 수평적인 구조이거나 힙하거나 쿨해서가 아니다.
능동적인 분위기가 있는 스타트업이 있다. 내가 다른 직군의 일을 해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고, 내가 몰두하고 싶은 일에 예산을 할애하고, 도와주는 분위기가 작은 규모의 시작하는 회사에는 있다. 사실 그 걸해서 뭐가 나쁜지, 뭐가 낭비인지 몰라서 그러는 경우도 많긴 하지만, 그래도 망해보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들이 있다.
큰 회사에서 매번 생산적인 실패를 말할 때, 그냥 말로 하는 것들이 스타트업에서는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소비자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고, 그걸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는 과정. 제품이 잘 팔리기 시작하는 순간이나 바보 같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던 일에서 뜻밖에 일이 일어나는 순간을 경험해 보는 것은 일의 성공이나 돈벌이와는 다른 성취감을 준다.
사실 이런 말을 하는 게, 힘든 일상에서 자신을 책임져야 하는 20대에게는 시간을 낭비하라는 말일 수도 있는데, 가끔은 소금물을 향해 기어가는 달팽이 같은 짓도 해봐야 할 때가 있다.
다시 말하지만, 스타트업에서 스타트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선택이다.
기회와 능력이 된다면, 일단은 중견 기업에서 안정적으로 생활을 영위하며, 많이 배우고 익숙해지는 것이 좋다.
그게 가장 좋은 선택일 수 있다. 조금 경쟁을 하거나 준비를 하더라도 해가 지나면 연차도 늘어나고, 연봉도 늘어가는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그러나 그런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몇 년씩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뭔가 일해보는 것도 좋다. 그러나 환상을 품고, 좋은 결과를 무작정 바라는 것은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스타트업을 '그냥' 선택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이 있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다.
잘못된 방향을 잡는 것보다 가만히 있는 것이다.
걸어봐야 사막인지 백사장인지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