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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주 Feb 12. 2019

좋은 디자인, 나쁜 디자인

그래픽 디자인 그 사상의 흐름

디자인을 시작하면, 그 결과는 항상 최악이다.

나는 이게 너무 이상했다.

왜 저 사람이 한 디자인과 내가 한 디자인은 차이가 날까?


별로 다를 것도 없는데...


이게 항상 고민이었다. 그래서 강연을 많이 들었다. 한 번은 강연을 들으러 갔는데, 강연자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고민은 이미 과거의 사람들이 한 고민이다.
이미 그 고민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면 된다.


그러면서 추천해 준 책이, '그래픽 디자인 이론 그 사상의 흐름'이다.

그런데 이 책은 우리 집에서 가장 깨끗한 책이다. 거의 보지 않았다.

굉장히 어려운 제목이다. 이론의 흐름도 무서운 말인데, 이론과 그 사상의 흐름이라니...

처음 샀을 때, 책이 너무 어려워서 당최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경험이 부족하고, 아는 게 없었다.(물론 지금도...) 이제 이 책을 산지 무려 10년이 거의 다 되어간다.



폴 랜드, 좋은 디자인은 선한 디자인이다.(1987)

Paul Rand. Design, Form And Chaos 중에서 "Form and Content."


... (중략)... 수많은 사람들이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를 서로 돌아가며 살펴본다. 때로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아이디어를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경영자든, 부하 직원이든 디자인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들은 전문 디자이너가 만든 작품을 평가할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디자인의 좋고 나쁨은 그들이 평가한다. 가끔 본능적으로 디자인 감각을 갖춘 사람이 있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재미있는 점은, 아무도 직접 디자인하려고 나서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단지 평가만 할 뿐이다.


저질 디자인이 점점 늘어나는 이유를 묻는다면 다음 세 가지를 꼽겠다.

(1) 좋은 디자인에 대한 경영자의 무지.

(2) 마케팅 담당자의 지나친 관여,

(3) 디자이너의 결정권 혹은 능력 부족


시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의 진정한 가치는 헌신적인 자세와 경험, 디자인 능력으로부터 우러나온다. 좋은 디자인은 회화나 건축과 마찬가지로 일단 아름다워야 한다. 하지만 이 와달리 경영자와 마케팅 담당자는 항상 통계와 자료에 의존한다. 이처럼 우리는 예술과 사업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 (중략)...


고전적인 취향을 따르건, 현대적인 느낌을 추구하건 양쪽 모두 얼마나 극한에 치달았는지를 기준으로 인테리어를 평가한다. 전자는 얼마나 오래됐는지, 후자는 얼마나 새것인지가 관건이다. 오직 그 자체의 품질로서 디자인의 좋고 나쁨을 평가할 수 있을 뿐이다.


... (중략)...


디자이너에게 예술과 디자인은 어떤 업무라기보다 문화적 사명을 띤 삶 자체라 할 수 있다. 깨끗한 형태, 간단한 재료, 경제적인 방법은 디자이너가 지켜야 할 신념이다. 


... (중략)...


디자인은 비즈니스를 윤리적인 관점에서 해결하려는 자세다. 작동은 되지만 보기에 영 좋지 않은 것과, 작동하지 않는 아름다운 것은 둘 다 똑같이 비윤리적인 제품이다. 전자는 소비자를 우습게 아는 것이고, 후자는 디자이너가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다. 신비한 매력에만 집착해 알맹이 없는 형태에만 집착하는 디자인으로는 어떠한 소통도 기대할 수 없다. 한편 겉모습은 제쳐놓고 내용만 챙기는 디자인은 너무 지루해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 


... (중략)...


회사의 명성은 사람들의 인식과 제품의 품질로 좌우된다. 보기는 좋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제품은 회사가 정직하지 않음을 드러낸다. 이런 회사는 장기적으로 고객을 잃을 뿐만 아니라 선의마저 저버리기 마련이다. 이런 회사에서 디자인은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이끌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없다. 위선적인 행위의 앞잡이로 전락할 뿐이다. 아름다움은 어디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필요와 기능을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 (중략)...


기업이 광고, 패키지, 제품, 건물의 디자인을 향상할 수 있다면 우리를 둘러싼 주변 환경과 대중의 취향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업은 대중의 의식을 수준 높게 이끄는 역할을 수행하는 힘이 있다. 여느 문화기관과 달리 기업은 하루하루의 사업 활동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고, 좋은 디자인을 통해 선한 의지를 실현할 수 있다.




요즘 들어 여기저기서 콘텐츠를 중심으로 디자인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솔직히 콘텐츠가 뭔지 모르겠다.


가뜩이나 프로덕트 디자이너, UX 디자이너, UX 기획자, 기획자, UI 디자이너로 나뉘어 있는 세상에서 콘텐츠 중심으로 디자인하라고 하면, 누군가는 콘텐츠가 뭔지, 그게 어떻게 돼야 하는지 정해야 하는데, 각 역할에 있는 사람들이 콘텐츠가 뭔지 각자의 생각을 들고 있는 상황에서 하나의 제품을 만들겠다고, 마냥 야근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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