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가 생각해야 하는 사회적인 책임에 대해서
※ 책 리뷰지만, 책 자체의 내용보다는 감상을 적습니다. 책은 일독하시는 걸 권장합니다.
※ 책 표지는 영문판입니다. 영문판의 표지가 책 내용을 더 잘 표현한다고 생각되어 선택하였습니다. '제품의 언어 디지털 세상을 위한 디자인의 법칙'으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디자인에 대한 글을 읽다가 보면, 디자인을 할 때, '왜'가 중요하다고 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어떻게'가 더 필요했다. 다른 디자이너는 '왜'를 통해 본질에 다가간다고 하는데, 내가 들은 '왜'는 공감이나 동기에 가까운 내용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다. 나는 만드는 이유에 대해서는 빠르게 동의하고, 그럼 앞으로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가 더 중요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지가 더 필요했다.
그러면서 재미있는 점은 사람들이 새로운 제품과 기능을 만들기 위해 '왜'에 대해서 모호한 감정과 애매한 목적에 동의한 후, 정작 디자인을 할 때는 필요한 '어떻게'는 과거의 생각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과거의 생각이라는 것은 건축이나 포스터 디자인에서 사용된 기법을 이용해서 디자인의 요소와 규칙을 만든다는 것이다. 물론 디자인의 기본 요소는 점, 선, 면 그런 것이다. 하지만, 요즘 앱과 웹디자인의 소재는 종이가 아니고, 기계를 통해서 빛으로 만들어진 스크린 위에서 만들어지게 된다.
디자인은 프로그램과 점점 더 밀접해졌다. 그리고 나는 디지털 디자인이라는 용어를 접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존 마에다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아주 오랫동안 몰랐다. 해외 아티클을 보면서 이 사람의 생각을 간접적으로 듣다가 어느 순간, 사용자 경험 디자인과 디지털 디자인에 대한 강연과 보고서를 보게 되었다. 그가 정의한 현대의 디지털 디자인의 특성을 통해서 나는 현재의 제품이 디지털의 특성, 제품의 기능, 제품의 디자인과 브랜딩으로 만들어진다는 관점을 갖게 되었다.
얼마 전, 디자인 툴에 대한 통계를 보았을 때, 응답자의 대부분은 비주얼 디자이너가 아니라 UX와 제품 디자이너였다. 디자인의 분야는 매우 빠르게 분화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분화되는 것은 분야의 전문성이고, 그걸 통제해야 하는 디자이너에게는 전체론적인 관점이 필요해지는 상황이다.
책의 번역에는 제품(아마도 디지털 제품)으로 되어 있지만 원문은 '기계'다. 이 책은 기계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말하면서, 기계의 특성을 정의하고, 인간이 기계를 만들 때 지켜야 하는 가치를 말한다.
내가 어릴 때 본 책에서는 다른 직업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려면, 그 직업이 사용하는 언어로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부를 만나면 농부의 언어로 이야기해야 하고, 은행가를 만나면 은행가의 언어로 이야기해야 한다. 그들의 언어는 그들의 삶과 생각을 정의한다.
디자이너는 제품에 대해서 말할 때, 제품의 디자인만 이야기한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은 제품의 가치와 의도와 영향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혹은 마케팅이나 비즈니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사람들은 커다란 이야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제품은 그렇게 멋진 말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디지털 제품은 코드, 프로그램 언어를 통해 기계의 언어로 만들어진다.
존 마에다는 디지털 제품, 즉 코드로 움직이는 기계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고, 그 특징에 대해서 어떤 편향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지 지적한다. 백 년 전의 디자인의 언어가 아닌, 지금의 디자인을 정의하는 새로운 생각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다.
이 책은 기계(디지털 제품)가 말하는 6가지 법칙에 대해서 말한다.
1. Machines run LOOPS
2. Machines are LARGE
3. Machines are LIVING
4. Machines are INCOMPLETE
5. Machines can be INSTRUMENTED
6. Machines automate IMBALANCE
하나의 챕터를 읽으면, 그 지식을 다음 챕터에서 사용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결론으로 불균형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반복이라는 말은 그다지 똑똑하지 않아 보이는 말이다. 디자인을 잘하려면 반복해서 연습해야 한다. 기계는 이 반복을 무척 잘한다. 하지만 기계가 반복을 하게 되면 그건 인간의 형태를 띠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바느질을 하는 것과 미싱이 바느질을 하는 것이 매우 다르게 보이는 것처럼 사람이 지적으로 하는 반복과 기계가 소프트웨어의 형태로 반복을 수행하는 것도 매우 다르다.
엑셀을 사용한다고 하면, 엑셀은 순식간의 합계를 보여주기 때문에 사용자에겐 과정이 보이지 않는다. 결과만 보이고 과정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소프트웨어의 작업 형태는 기계에 대한 오해를 불러온다. 기계는 비인간적이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기계가 하는 일은 대부분 인간이 끊임없이 반복한 행동에서 기원한다. 다만 그 속도가 매우 빠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질 뿐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반복문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재귀는 반복과 비슷해 보이지만,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만들어진 코드다. 재귀는 하나의 문제를 반복해서 같은 부분을 찾아낸 후, 반복되는 작은 부분을 고쳐서, 결국 큰 부분을 해결할 수 있게 해 준다.
기계는 재귀를 통해 반복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체스판 위에서 첫 번째 칸에 놓은 곡식 한 알이 체스판의 다음 판에서 2배가 되고, 다음 칸에서는 이전 칸의 2배가 되어 왕국이 파산하는 동화가 있다. 기계는 지수단위로 성장한다.
하나의 주기가 반복될 때마다, 수십 배 성장할 수 있다. 그래서 처음에 설정한 목적의 실행력도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다. 기계는 목적을 맹목적으로 수행한다. 그래서 소프트웨어를 설계하는 사람들은 조심해야 한다. 기계는 설계자의 생각에 복종하고, 기계로 만들어진 절차 안에 들어 있는 사용자들도 기계가 제공한 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다.
국내 서비스의 프로덕트 디자이너들의 인터뷰를 보면 항상 자신만만하고, 확신에 차 있다. 실제로 제품을 봐도, 사용자가 존중받는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사용자 경험이 중요하다는 말은 어느 순간부터는 사라지고, 프로덕트와 비즈니스를 강조하는 글을 많이 보게 된다.
서비스의 제공자나 사용자는 돈과 데이터만 오간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는 밖에 나가서 택배를 옮겨야 하고, 음식을 배달해야 한다. 서비스에 포함되었다고 우리는 누군가를 기능으로 보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사람은 기계를 통해서 혼자 일하는 능력이 확장되지만, 그만큼 기계는 다른 기계와 협력하게 된다. 그리고 더 강력하게 확장된다. 클라우드 컴퓨팅과 같은 자원의 공유는 유연하고 더 큰 컴퓨팅 파워를 불러오고 있다.
60~70년대 SF작가들은 기계가 특정 조건 이상의 복잡도를 갖추게 되면, 각성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문학적인 상상력이나, 가정이 아니어도 사람처럼 말하고 움직이는 기계들이 많아졌다.
반복과 확장, 협업 관계를 통해서 기계는 매우 복잡해졌고, 그래서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1960년대 인공신경망에 대한 이야기는 현실성이 없었지만, 지금은 딥 러닝과 머신러닝으로 자동화 기술과 데이터 수집, 분석 기술이 발전했다. 이러한 기계의 발전에는 협업이 있다. 정보와 자원을 공유하고, 공유를 바탕으로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은 우리 몸의 단순한 세포가 반복하는 일과 비슷하다. 그래서 얼핏 보면, 기계의 긴밀한 협업 관계는 살아있는 유기체를 보는 듯하다.
하지만 기계는 사람의 경쟁자가 아니고, 새로운 변화일 뿐이다. 기계의 협업과 확장을 통해서 사람이 배울 차례다. 한 사람의 창의력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오픈된 상태에서 협업이 가능한 구조에서 소통과 대화로 진행하는 법을 새로 배워야 한다.
그래서 그로스 해킹, 린, 애자일, 디자인 싱킹처럼 반복하면서 성장하는 업무 방식이 대두되고, 클라우드를 바탕으로 한 디자인 툴이 각광을 받는 것 같다.
반복, 확장, 협업을 통한 유기적인 모습을 보면서, 현재의 기계, 소프트웨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다. 이제 디자인에 대해 말할 차례다. 존 마에다는 디지털 디자인과 클래식 디자인의 차이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한 적이 있는데, 이 책에서는 살짝 비판적이다.
기존의 디자인은 백 년 전에 기반을 만든 바우하우스에서 유래한다. 대량생산이 시작된 시기의 디자인이다. 지금의 환경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지금의 디자인은 여전히 백 년 전의 바우하우스를 통해 말한다. 디자인은 비싸고 긴 교육과정을 이수한 사람들의 카르텔이 되었다.
전통적인 디자인은 디자인을 완성하려고 한다. 대중에게 보여주는 것은 완성되고, 완결된 결과다. 현대의 제품은 출시와 함께 시장과 사용자에 적응해서 성장해야 한다. 그런데 디자인은 이미 완성된 형태로 제작되면, 성장의 가능성이 제한된다. 그래서 성장하려는 기계의 법칙은 완성된 디자인은 디자인을 수정하지 않으려는 디자이너의 태도와 충돌하게 된다.
제품을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과 디지털 제품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자.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은 배송과 시장을 거쳐 고객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중간에 제품을 수정할 수 없다. 하지만 디지털 제품은 배송 시간이 없고, 제품의 변화가 모든 고객에게 즉시 전달된다. 그래서 제작자가 제품을 사용자와 공유한 상태가 된다. 제품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사용자의 경험과 생각이 중요하다. 이 상태의 사용자는 더 이상 소비자가 아니고 제품은 소비재가 아니게 된다.
빠른 개선이 중요해지면서, 그에 대한 방법론으로 애자일, 린, 디자인 싱킹을 듣게 된다.(TMI, 프랭크 바그너가 쓴 '디자인의 가치'를 보면 디자인 싱킹은 애자일 방법론에서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한다.)
현재의 디지털 디자인은 완성이 아닌 업데이트 주기로 평가된다. '테세우스의 배'처럼, 배의 형태는 유지하되,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다. 그리고 그 변화는 디자이너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협업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디자인이 추구해야 할 윤리규범으로 기계(제품)를 만드는 과정은 특정 아이디어가 독재적으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디자인이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인 참여와 협업을 주도하는 안내자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디자인 성지를 나와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 같다.
시장과 변화를 접하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사내 디자이너가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이유는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에게 존 마에다의 '시기적절한 디자인'은 해답이 될 수 있다.
완벽한 디자인을 버리고 불완전한 것을 추구하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가치는 이해다. 우리는 여러 가지 도전을 통해서 시장과 고객을 이해하고, 함께 협업할 수 있다.
INSTRUMENTED라는 단어가 쓰이는데, 번역이 굉장히 어려웠을 것 같다. '기계는 정밀하게 과학적으로 측정한다.'로 번역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제품의 '측정'은 사용자의 사용을 모니터링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고 윤리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그래서 '디지털 기술의 사용에는 책임이 따른다'로 번역된 것 같다. 5번째 법칙에서 다루는 것은 데이터 과학과 윤리에 대한 이야기다.
기계는 엄청난 데이터를 모으고, 또 실험할 수 있다. 흔하게 말하는 A/B 테스트이다. 앞선 규칙들을 이해한다면, 제작자인 회사는 기계를 사용자와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사용자의 기계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해서 바꾸고 그 반응을 볼 수 있다.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바꾸는 것에는 윤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반응조차 기록한다는 것도 윤리의 영역이다.
모든 것을 기록해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게 하는 권력을 누구나 갖게 되었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지만, 우리가 그런 행동을 평상시에 숨 쉬듯이 하고 있기 때문에 알기 어렵다. 우리는 누군가의 페이스북 피드에 글을 쓰기도 하고, 누군가의 의견을 캡처한 이미지를 공유하기도 한다.
그리고 제작자인 회사는 이 모든 데이터를 갖고 있다. 그래서 기계를 자신의 권력의 도구로 행사해서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다.
멋진 말이 나오는데, '디자인 성지는 완벽하고 완성된 제품을 만들라고 하고, 기술 성지는 불완전하고 측정 가능하도록 만들라고 한다. 전자는 진입 장벽이 높은 사업을 만들었고, 후자는 진입 장벽을 크게 낮추었다.' 최근 '이루다'라는 챗봇 서비스가 만든 이슈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개인 정보를 담은 대화가 데이터로 이용되었고, 제품은 스타트업에 의해 만들어졌다. 스타트업은 데이터를 사용하는 윤리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다. 그 결과, 개인 정보가 수십만의 사람들에게 통제없이 퍼져 나갔고, 이제는 지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이러한 일이 수십 군데의 스타트업에서 쉽게 일어날 수 있다.
존 마에다는 이런 예시도 든다. '당신이 종이 책을 읽고 있다면, 어떤 부분을 읽고, 어떤 부분은 읽지 않아서 내가 마음의 상처 받을 일은 없다. 하지만 디지털이라면, 어떤 부분은 읽고, 어떤 부분은 아무도 읽지 않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크고, 같은 스마트폰이라도 구글 문서가 있는 스마트폰과 그렇지 않은 스마트폰의 차이가 크다. 당연히, 회사와 개인의 차이를 더 크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10배인 부자는 시기하고 질투하지만, 재산이 만 배의 차이가 나면 노예가 된다고 했다. 개인정보를 재산으로 보면, 회사와 개인의 차이는 수십만 배에서 수백만 배 차이가 날 수 있다.
마지막 장은 결론에 가깝다.
바쁜 사람은 마지막 장만 읽어도 된다. 하지만 이해를 하려면, 1장부터 읽어보는 것이 좋다.
- 기술 산업은 배타성을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다.
- 빅 데이터 분석에 인간의 본성을 반영하라.
- 인공 지능은 우리의 과거를 먹고 자란다.
- 오픈 소스는 평등을 설계하는 수단이다.
- 기계를 경계하고 인간성을 지켜라.
모두 함축적인 말이며, 하나의 주제로도 할 말이 정말 많다. 하지만 자세히 읽지 않는 사람을 위해서 가이드를 하면, 이 책의 각 장은 하나의 기본 축에는 기계의 특성과 인간의 특성 한 가지씩을 대응하여,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설명한다. 그리고 다른 축으로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 가져야 할 윤리와 시대정신을 요구하고 있다.
제품을 만드는 데는 큰 책임이 따르고, 그리고 책임을 일으키는 디지털 권력은 매우 막강하므로 인간성을 유지하고 타인을 존중하기 위해서 제작 단계부터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제품은 시장에서 성장하므로 당연히 출시하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재미있는 책이지만, 이 책만 보면, 다소 문제가 있고, 논란의 소지를 내포하고 있다. 해외 서평을 보면 크게 3가지 지적이 나온다.
1. 기술적인 부분을 다루지만, 너무 옛날의 프로그래밍 언어의 사례로 현재의 기술적인 상황을 이해시키려고 한다. 너무 간단한 부분을 적고 있어서, 현업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에겐 큰 감흥이나 문제의식을 불러내기 어렵다.
2. 명확한 사례가 부족하고, 역사적인 디자인의 변화에 대한 정의가 부족하다. 어떤 계기로 디자인이 변화를 맞이하고, 어떤 특징이 나타났는지, 정의하지 않는다. 막연하게 바우하우스와는 다르고 말한다.
3. 기술과 디자인의 관계에 대한 연관성이 매우 부족하다. 태도와 조직이 가져야 하는 막연한 자세를 낭만적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을 하고 싶다면, 존 마에다의 지난 리포트를 읽어보면 된다.
사례도 있고, 시대별 정의도 있고, 가치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써있다. 제품의 언어는 지금까지의 존 마에다가 쓴 리포트에 대한 쉬운 해설서라고 볼 수 있다.
현대 사회는 사람을 쉽게 기계화한다. 기능을 측정하고, 특정 수준에 오르지 못하는 사람을 낙인찍는데 익숙하다. 그 결과 능력주의를 바탕으로 한 엘리트가 탄생하고, 그 엘리트는 자유주의에 입각해서 부와 영향력에 대한 권한을 행사하려고 한다. 하지만 부와 영향력은 무한한 욕망에 비해서 느린 속도로 성장한다. 그래서 사회는 불균형해진다. 불균형이 강화될수록 계층이 분화하고, 개인은 다른 계층의 타인과 이해하고 공감하기 힘들게 된다. 개인주의는 고립주의가 되어 소통을 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 되었다.
이것이 강력한 컴퓨팅 파워를 바탕으로 모든 사람에게 정보를 주면서 생긴 일이다. 사람들은 정보가 균등하게 주어지면, 각자 알아서 이성적으로 잘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가짜 정보를 유통시켜서 이기적인 영향력을 반사회적인 방식으로 획득하는 패턴이 탄생했다. 가짜 정보와 편향적인 정보는 큰돈이 되었고, 덤으로 따라오는 혐오는 이제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폭력적인 성향을 띄게 되었다.
원자에 대한 과학이 핵폭탄을 만들어 버튼을 누가 갖고 있느냐에 따라 세계가 벌벌 떨었다면, 이제는 '공유하기' 버튼이 핵폭탄 버튼처럼 작동한다.
공유하는 행동은 자유의지지만, 그 의지는 쉽게 흔들 수 있다. 쉬운 분노, 쉬운 연민을 사용하면, 폭발적인 공유가 일어난다. 그리고 폭발적인 공유는 손쉽게 자동화된 혐오를 만들어낸다.
이제는 이런 기계를 누구나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디자인 툴의 가격은 엄청나게 저렴해지고 엄청나게 쉬워졌다. 아마 그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도 쉬워지고, 서버를 운영하는 방식도 쉬워졌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많은 디자이너가 웹 디자이너, 앱 디자이너, UI 디자이너를 거쳐, UX 디자이너가 되었다가,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되고, 이제는 프로덕트 오너가 될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디자이너를 점점 더 다른 것으로 바꾸고 있다.
인간적인 특징은 쉽게 무시되고, 논리와 이성은 쉽게 편향되는 상황에서 존 마에다는 협업과 협동의 차이를 마지막으로 넣었다. 한국어로 하면, 출처에 따라 이 두 가지 뜻을 서로 다르게 표현하는 경우가 있어서 영어를 출처로 다시 찾아보았다.
Collaboration(책에서 협업으로 번역)은 각자 독립적인 상태에서 일하는 것이고, Cooperation(책에서 협동으로 번역)은 서로 의존하면서 일하는 형태다. 좀 더 자세히 풀어보면, Collaboration은 모든 구성원들이 공유된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Cooperation은 하나의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쪽으로만 지시사항이 흐른다. 컬래버레이션은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아무도 하지 않는 경계영역이 생기는 것을 막아준다. 이 부분에서 다른 분야의 지식이나 노력이 합쳐지기 때문에 예상보다 높은 결과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의 회사와 조직은 이러한 변화를 등한 시 하는 것 같다. 여전히 IT회사는 기술 중심의 상하 위계 조직이고, 디자이너는 디자인 성지에 머물러 있다.
이상적으로 볼 때, 디자이너가 조직 내에서 할 일은 Collaboration을 할 수 있도록 공부하고 노력해서 인간적인 가치를 제품에 투영하고, 기계의 법칙을 보완해서 좋은 제품을 만드는 일이지만, 한국의 제작 환경에는 기획자라는 직군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려면 이 책은 기획자의 필독서도 돼야 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