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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주 Feb 10. 2017

예술가와 디자이너

누가 예술가인가?

가끔 사람들은 말한다. 디자이너는 예술가가 아니다. 비슷한 말로 기능에 맞게 디자인한다. 기능에 맞게 디자인한다는 쉽고 명확한 말이 얼마나 단편적인 표현인지는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실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예술가과 디자이너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아마도 자주 듣거나 하는 말일 것이다. 예술가 같다는 표현이 회사에서 나올 때의 상황은 매우 우울하고 슬픈 경우이며, '너의 실력은 형편없고, 작업 결과는 이해할 수 없는데 왜 잘했다고 하지?'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정확하다.


예술가 같다는 말을 들었는데 기분이 뭔가 좋지 않다면, 디자이너는 자신의 작업이 몰이해와 아집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나중에 정말 유명한 예술가가 되면 열어보라는 메모와 함께 통조림에 대변을 넣어 꽃과 함께 선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디자이너라면 어떤 상황이라도 상대방이 말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예술적인 결과'의 절반의 책임은 디자이너에게 있지만 나머지 절반은 디자이너 밖에 있다. 그래서 같은 사건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반복된다.


앤드 워홀의 캠벨 수프, 32개의 캠벨 수프 통조림 비슷해보이지만, 약간씩 다른 판화 작품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애플은 매년 꽤 큰돈을 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애플 같은 이익을 얻고 싶어서 애플의 제품 철학과 비슷한 무언가를 추구한다고 말한다. 조금 정직한 경우에는 애플 같은 제품 철학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애플처럼 남성 잡지의 자주 올라오는 시계나 슈퍼카나 의류처럼 역사와 전통을 가진 디자인은 예술적인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래서 1980년대의 사치품이 지금은 명품으로 불린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심플하고 고급스럽고 세련된 결과도 예술적인 가치를 내포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긴 역사와 숙련된 노동, 그리고 개성을 꾸준히 유지해 온 제품을 좋아하고 갖고 싶어 한다. 그러나 회사는 디자이너가 예술적인 가치를 추구할 때, 불편해한다.


예술적인 디자인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예술적인 디자인이 서툰 실력과 작업에 대한 이해, 그리고 내 것을 만들겠다는 욕구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예술하는 디자이너는 패스트푸드 햄버거 백개를 만들어야 하는데, 햄버가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만들거나 백 개의 햄버거를 모두 다르게 만든다. 혹은 샌드위치를 만들거나 한다. 나중에 왜 샌드위치를 만드냐고 물어보면, '이것도 빵과 빵 사이에 고기와 야채 들어가지 않습니까?'라고 대답한다.(참고로 말하자면, 보통의 샌드위치에는 햄이 들어가고, 햄버거에는 고기는 다진 소고기를 뭉친 후 그릴이나 철판에 구운 햄버거 스테이크가 들어간다. 옛날에는 햄버거 샌드위치라고 불렸지만 지금의 햄버거와 샌드위치는 다른 음식이다.)


동그란 빵과 나머지로 혹은 칼로리의 자리수로 구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의 절반은 누군가의 젊고 가난했던 어느 화창한 날, 센트럴 파크를 향해 난 야외 테이블에서 꼬깃꼬깃한 5불짜리 지폐를 내고 먹은 햄버거와 미세먼지와 매연이 가득한 서울 어느 거리에 있는 맥도널드의 치즈버거 사이의 어떤 햄버거를 만들어 달라고 할 때 일어난다. 누군가의 아련한 회상과 바로 사 먹을 수 있는 햄버거 사이의 인지적인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디자이너는 많지 않다.


그런 이상적인 햄버거는 바닷속에 사는 스펀지 밥이 매일 웃으며 만드는 게살 버거처럼 환상의 세계 어딘가에 존재하고 이야기는 '예술하지 마'와 단순 명쾌하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문장으로 완성된다.


상상 속에만 존재한다는 그 버거


햄버거도 잘 모르는 사람이 예술이란 표현을 사용했을 때, 유발되는 아주 치명적인 결과에 대해 말하는 것은 너무 끔찍하기 때문에 디자인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면, 디자인에는 예술적인 재능이 필요하다. 아주 많이 필요하다. 예술은 대상에 대한 관찰과 이해, 그리고 주관적인 해석과 추상화, 재현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예술은 현실을 여러 가지 층이나 요소로 분해하고 재구성하여 예술가의 생각, 감정, 메시지 혹은 심상을 사람이 인지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게 된다. 그리고 예술품을 보는 사람은 예술품을 통해 기존에는 전혀 보지 못했던 세상이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보통은 그런 과정을 감동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감동하게 한 것을 쉽게 잊지 못한다. 낯선 거리에서 얼마 있는 않은 돈으로 햄버거를 먹었던 기억처럼 말이다.


그리고 '감동'은 스타트업 전문용어인 '본질'에 가까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디자인이 직접 매출을 올리는 경우는 드물고 가끔 일어나도 제대로 평가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초기 기업에서 디자인은 리스크의 영역으로 분류된다. 위험이 큰 투자는 피하는 것이 좋기 때문에 어떤 회사들이 충분히 돈을 번 후에 디자인에 투자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리뉴얼이란 이름의 화려하고 비싼 장례식을 시작한다.


다시 햄버거로 돌아가면, 햄버거를 만들려면 햄버거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햄버거를 만들어야 한다. 단기적인 목표에 집착할수록, 햄버거를 더 많이 만들어야 더 완벽한 햄버거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그리고 그 햄버거는 햄버거를 만드는 사람, 그리고 햄버거 가게와 함께 성장한다. 만화 스펀지 밥의  사소한 철학은 게살 버거는 집게 사장의 비밀 레시피지만, 그 레시피로 게살 버거를 제대로 만들 수 있는 인물은 스펀지 밥뿐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많은 스타트업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매년 사업의 방향을 바꾸거나 사업을 그만두기 때문에 많은 디자이너가 스펀지 밥처럼 되기 전에 어딘가로 증발해버린다.


즐겁게 일하기의 화신 같은 분


좋은 디자인이 쉽게 나오지 않기 때문에 다른 디자이너가 다른 상황에 사용한 디자인 원칙에 기대하게 되고, 가벼운 팁에 의존하게 된다. 너무 많은 원칙은 너무 많은 제한 사항일 뿐이다. 정말 디자인 원칙을 지키고 싶다면, 원칙대로 시간과 클릭과 드래그를 해서 반복해서 만들어보면 된다. 직접 디자인해보지 않은 원칙을 디자이너에게 말로 요구한다고 좋은 디자인이 나오지 않는다. 스타트업 전문용어인 '성장'은 의식적인 반복에서 나온다. 타의에 의한 디자인은 결국 기계적으로 똑같은 디자인을 복제하는 일이다. 그런 일은 '성장'도 아니고 '본질'도 아니다. 디자인이 디자이너 자신의 생각에서 나오지 않고, 짤막한 팁이나 원칙, 누군가의 불안정하고 모호한 예술적 감성을 기준으로  휘둘리게 되면, 다음 이야기의 결말도 예외 없이 '예술하지 마'로 끝나게 된다.


하지만 이제 디자인을 시작하려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예술하지 말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경우가 있다. 디자인은 사업에서 덜 중요하고, 언젠가 사업이 성공하면 디자인 에이전시에 의뢰해서 회사를 더 폼나게 만들겠다는 야망을 가진 사람과 함께 일한다면, 두세 번은 비슷한 소리를 더 들을 수도 있다. 목표가 불분명하면, 시작하지 않는 것이 똑똑한 선택이지만, 화가 난다고 매번 통조림을 준비할 수 없기 때문에 더 많이 의식적으로 디자인하고, 반복하며 완성의 기준을 높여가길 바란다. 적어도 그렇게 하면 둘 중 하나는 조금 더 성장하고 조금 더 현명해진다. 또 누군가에 '예술하지 마'라고 말하고 싶을 때는,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혹은 '다음 작업에서는 이런 부분을 개선해주세요'라는 표현을 사용하면 된다.


디자인은 통제할 수 없지만 관리할 수 있는 영역이다. 통제란 세세한 지시를 통해 가능성을 제한하는 방법이고, 관리란 디자이너가 원하는 방향과 생각을 존중하는 방법이다. 빠르게 많이 만들어야 한다면, 빠르게 많이 사용되는 부분의 질만 높이는 방식으로 관리하면, 전반적으로 일관된 디자인을 유지할 수 있고, 본질을 재발견하며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게 모두에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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