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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주 Jan 01. 2018

어떤 디자이너가 될 것인가?

열린 디자이너와 닫힌 디자이너

지인과 디자이너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요즘' 디자이너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나 역시 흔하디 흔한 요즘 디자이너지만, 생각해 볼만한 일인 것 같다.


지인은 디자인 전공이었고, 직업으로 디자이너이기도 했었다. 구인을 하는 과점에서 프로모션 디자이너와 개발 디자이너로 나누었다. 충격적인 관점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프로모션의 영역과 그의 영역은 좀 달랐다. 계속 질문을 했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말하는 디자이너 구분은 디자인에 대한 태도와 업무 특성, 인성이 모두 합쳐진 표현이었다. 혹시라도 관련 작업을 하는 분을 비하하는 의도는 아니라는 점을 먼저 밝혀둔다.


프로모션 디자이너는 쇼핑몰이나 커머스에서 광고, 이벤트, 배너, 상품 소개를 만드는 디자이너였다. 비전공 디자이너도 많고, 숙련 기간도 짧다. 정해진 스타일을 주면 그 스타일대로 작업을 하고, 그 이상의 수고는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개발 디자이너는 웹사이트, 앱, 브랜드 아이덴티티, 서적, 잡지 등의 규모가 있는 디자인 작업을 해본 디자이너였다. 덤으로 개발자와의 소통도 용이한 사람이었다. 새로운 툴에도 거부감이 없고, 뭔가 더 해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성격도 원만하고, 문제 해결도 잘 하고, 일도 적당히 잘하는 사람이었다.


지인은 프로모션 작업을 많이 한 디자이너와 갈등이 많았던 것 같았다. 흔히 말하는 퀄리티와 디테일에서 많은 실망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가장 답답해하는 건, 그 이상으로 좋아지지 않고 방어적이라는 점이었다. 디자이너를 구분하면서 굳이 작업으로 선을 그은 건 적당하지 않지만, 긴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가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는 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경험에서는 프로모션 디자인도 쉽지 않았고, 개발 디자이너가 모든 작업에서 유용한 것은 아니었다. 디자인 업무는 항상 노동과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상황에 맞는 처리 방법이 있었다. 좀 더 중립적인 표현으로 나누려면, 열린 디자이너와 닫힌 디자이너가 적절한 표현이었다.


'닫힌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하면서 매번 같은 작업, 같은 스타일, 적당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어떤 회사에서는 그런 근면한 반복이 필요하다. 그러나 디자인은 창의적이어야 한다는 선입견이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이유가 된다. 디자인이 항상 창의적인 작업만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디자인은 점점 더 좋아져야 한다. 하지만 닫힌 디자이너의 작업이 성장하는 속도는 느리다. 스타일은 잘 바뀌지 않는다.


'열린 디자이너' 흔히 말하는 풀스택 디자이너일 수 있지만, 나는 디지털 디자이너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환경에서는 그래픽 디자인 툴이 점점 쉬워지기 때문에 여러 가지 툴을 쓰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전문적인 영역의 디자인은 존재하지만, 캐주얼하게 다양한 디자인을 시험해 볼 수 있다. 


사람은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는데, 닫힌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경우가 있다. 전문적인 영역을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방어적이다. 에이젼시든 출판사든 중견 회사든 어느 위치에 있어도 필요하면, 연구하고, 연습할 수 있다. 지인이 느낀 답답함은 이 부분에서 생긴 것 같았다.


그리고 지인이 말한 그런 디자이너를 몇 명 만나 짧은 기간 동안 함께 일했다. 그들이 작업했던 환경과 상황을 들어보면 대개 이런 경우였다. 비전공이며, 짧은 재교육 기간을 거치고, 디자인 작업을 함께 하는 상급자나 동료 없이 바로 실무에 투입되었다. 완성된 웹사이트의 운영이나 관리를 맡아 때때로 바뀌는 정해진 이미지를 바꾸었다. 그들이 과거 일했던 환경에서는 '더 잘'이라는 요구만 있었지 더 잘하기 위한 지원은 없었다.


게다가 일은 많고, 급료는 적었고, 업무 환경은 스트레스로 가득한 위치에서 시작했다. 뭔가 시도해도 돌아오는 것은 냉소였고, 시간이 갈수록 의욕도 점점 사라졌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럴 기회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다. 디자인은 회사에서만 하는 '일'이었다. 재미는 '1'도 느낄 수 없고 퇴근하면 다시 보기도 싫은 일이었다. 업무효율이 개인의 특성이나 의지보다 우선되는 직장이었다. 그렇게 점점 '닫힌 디자이너'가 되었다.


구글 검색만 하면, 멋진 디자인이 많이 나온다. 이름난 디자이너들이 훌륭한 말을 한다.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의 작업이나 같이 일해봤다는 풍문으로 '그렇지 않다' 하기도 한다. 그게 정답이다. 그들은 적어도 다양한 영역에서 성장하고 더 많은 말할 꺼리도 만들어낸다. 그래서 지금 부족한 면이 있어도 뭔가 더 나은 걸 해보고 싶다는 말을 해야 한다. SNS에 그냥 올리는 말이라도, 좋은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너무 피곤하고, 귀찮아도 말이라도 해야 한다. 나는 너무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20대 때에 읽은 자기 개발서를 많이 읽었다. 아주 많이 읽은 후에 대부분이 말잔치라는 것을 알았지만, 공통적인 몇 가지 부분은 진실이라고 본다.


그건 내가 당장 할 수 없어도 '그렇게 써보는 것이었다.' 예전엔 다이어리나 수첩이겠지만, 이젠 SNS에 써 볼 수 있다. '난 좋은 디자이너 혹은 일 잘하는 디자이너 혹은 돈 잘 버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부끄러움을 잠시 이기고 생각하다 보면 논리도 생기고 이론도 생긴다. '좋아요'라도 많이 받으면 기분도 좋다. 그리고 정말 언젠가는 행동할지도 모른다. 기적적으로 정말 그런 작업을 하고, 그런 디자이너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첫 직장이 중요하다는 말을 한다. 많은 경우는 캐리어나 연봉을 위해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첫 직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을 알게 모르게 일과 디자인을 가르쳐 주는 사람인 것 같다. 요즘처럼 취업이 힘든 시대에는 누구나 빈약한 환경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선택을 강요받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환경에 영원히 자신을 가두지 않았으면 한다.


좋은 직장을 찾기 전에 좋은 사람을 찾아라. 기세 등등한 대기업이 아니라면, 면접하는 사람에게 질문을 해보자. 어떤 사람이 필요한가요? 어떤 일을 주로 하시나요? 어떤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좋은 사람이라면 대답해 줄 법한 질문이다.


ps. 그리고... 별 상관없는 말이지만, 학원에서는 주는 포트폴리오 템플릿이라도 좀 생각해보고 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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