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사랑한미술관 Jan 16. 2023

미술관에서 시간 여행하는 법

홍영인 작가 <Prayers> & 김애란 작가 <두근두근 내 인생>


* 유튜브 영상의 스크립트입니다. 영상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https://youtu.be/ygfdldfdGJk




안녕하세요. 내가 사랑한 미술관입니다.


김애란 작가의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은 노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조로증을 앓고 있는 열일곱 살 소년 아름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여느 아이들과는 다른 환경과 조건에서 자란 아름이는 그만큼 조금 다른 시선으로 그의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의 세계를 관찰합니다.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름이에겐 스스로에게 숙제를 내고 그에 대한 답을 찾거나 그때그때 궁금한 걸 메모해두는 습관이 있었는데요. 하루는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에 대해 고민하다가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라는 자기 나름의 답을 생각해냅니다.


'그렇게 써놓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누구도 본인의 어린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하지는 못하니까, 특히 서너살 이전의 경험은 온전히 복원될 수 없는 거니까, 자식을 통해 그걸 보는 거다. 그 시간을 다시 겪는 거다. 아, 내가 젖을 물었구나. 아, 나는 이맘때 목을 가눴구나. 아, 내가 저런 눈으로 엄마를 봤구나, 하고. 자기가 보지 못한 자기를 다시 보는 것. 부모가 됨으로써 한번 더 자식이 되는 것. 사람들이 자식을 낳는 이유는 그 때문이지 않을까?'


아름이는 본인이 태어나고 생긴 집안의 여러가지 변화 중 하나로 단칸방을 채운 원색의 유아용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신생아용품 중엔 아기들의 감각을 발달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많았다. 소리, 색깔, 감촉, 냄새 등 많은 것이 그랬다. 그것은 나뿐 아니라 어머니와 아버지의 오감도 자극했다. 부모님은 나를 통해 감각이란 걸 다시 경험했다. 한번은 자신의 눈으로, 또 한번은 아기의 눈으로 그렇게 두 번. 딸랑이 소리 하나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아이. 그걸 보고 웃는 부모. 그 미소 속에는 사람에 대한 경이과 겸손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면서 자신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을 한 번 더 살게 된다는 발상이 흥미로웠고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을 비롯한 집안 어른들도 저를 향해 이런 미소를 지었을 거라 생각하니 뭉클했는데요.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이 아이의 시선을 통해 어린 시절을 한 번 더 경험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독특한 작업 방식을 통해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과거를 다시 살게 하는 예술 작품도 있습니다.


지난 2022년 가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춤추는 낱말>에서 소개된 홍영인 작가의 작품 ‘Prayers No. 1 - 39’와 ‘Prayers Book’이 바로 그것인데요. 이 작품은 여러 점의 그림과 음악, 책 등으로 구성되어 꽤 넓은 공간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양쪽 벽에 작품이 줄지어 걸려있고 어디선가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벽에 걸려 있는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물감으로 그린 보편적인 회화가 아니라 검정색 실로 만든 자수 그림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여백이 굉장히 넓고 가운데에 다양한 형태로 자수가 놓여 있는데 모양이 매우 단순하고 검정색 선으로만 그려져 있어서 무언가를 바로 연상하기가 어렵습니다. 복도를 따라 걸으며 작품을 보다 보면 과연 무엇을 보고 그린 그림들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복도를 지나 코너를 돌아도 같은 광경이 펼쳐지고 음악은 잠깐씩 멈췄다 계속해서 흘러 나옵니다. 두번째 코너를 돌아 끝까지 걸어가보면 책이 한 권 놓여 있는데요. 여기에 바로 지금까지 봤던 자수 그림과 전시장에 흘러나온 음악에 대한 단서가 있습니다.


홍영인 작가는 근대화 시기 우리나라의 풍경을 담은 사진들을 선별하고 사진 속 특정 부분의 윤곽선을 따서 자수 그림의 밑그림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들을 바탕으로 악보를 그리고 작곡을 했는데 전시장에서 흘러나온 연주곡이 바로 그것입니다.


자수 그림은 시위대가 둘러싼 버스, 봉제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 60년대 정동의 판자촌, 유엔군 묘지의 십자가 등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부수적인 요소들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수수께끼 같던 음악과 그림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알게 되자 사진 속 다양한 풍경들, 그 곳에 있었던 사람들과 그들 각자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는데요. 홍영인 작가의 음악과 그림을 통해 제가 살아보지 못한 과거를 다시 살아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역사 시간이나 책에서 봤던 것과 다르게 과거가 더 생동감 있고 가깝게 느껴지더라구요.


김애란 작가의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은 아기를 돌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다시 사는 어른들을 보여주고 홍영인 작가의 작품 ‘Prayers No. 1 - 39’와 ‘Prayers Book’은 관람객들이 경험하지 못한 과거의 여러 시간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합니다. 이렇게 어떤 예술 작품은 전혀 예상치 못한 시간 여행을 선사하는데 현재의 내가 잊고 있었던 나의 과거 또는 알지 못했던 우리의 과거와 연결되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제 이야기에도 여러분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었기를 바라며 영상 마치겠습니다.


영상이 마음에 드셨다면 좋아요와 구독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마음에 나이테를 남긴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