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환 작가 <손은 눈보다 빠르다> & 황정은 작가 <계속해보겠습니다>
* 유튜브 영상의 스크립트입니다. 영상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마음에 나이테를 남긴 것들 | 손은 눈보다 빠르다 | 변상환 작가 | 스페이스 소 갤러리 | 황정은 작가 | 소설 | 계속해보겠습니다
https://youtu.be/qt5irMEVNRU
안녕하세요. 내가 사랑한 미술관입니다.
지난 2022년 여름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스페이스 소 갤러리에서는 변상환 작가의 개인전 <손은 눈보다 빠르다>가 열렸습니다. 전시에서는 피망이나 양파 등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재료를 석고나 금속으로 본떠 만든 조각들을 주로 볼 수 있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바로 이 작품들이었는데요. 이들은 앞서 말씀드린 작품들과 달리 특정한 대상 없이 추상적인 형상을 만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전시 팸플릿을 읽어보니 이들 역시 무언가를 본뜬 조각들이더라고요. 무엇을 본뜬 건지 혹시 감이 오시나요?
변상환 작가는 추운 겨울 인적 드문 골목이나 좁은 틈 사이로 나 있는 연통에서 떨어진 물이 얼면서 거꾸로 자란 고드름을 작업실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는 얼음이 녹기 전에 거푸집을 만들고 얼음의 형태를 석고로 본떴습니다. 제작 과정을 알고 나니 각각의 얼음들은 언제 어디에서 왔는지, 그 안에는 어떤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이 있을지 상상해보게 되었는데요. 얼음이 얼 정도로 추운 겨울 그들을 따뜻하게 덥혀줬을 온기를 떠올리니 제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현대미술은 작가의 의도나 작품의 의미 등을 바로 파악하기 어려워서 직관적인 감상을 갖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요. 그렇다 보니 전시 설명문에 적힌 제작 과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따뜻해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참신했습니다. 최근에 황정은 작가의 소설 「계속 해보겠습니다」를 읽으며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요. 소설은 자매인 소라와 나나, 그리고 그들과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란 나기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라와 나나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가 일하다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남편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어머니 애자는 삶의 의욕을 모두 잃고 세상과 인생에 대해 이런 시각을 갖게 됩니다.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
살아가려면 세계를 그런 것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좋다고 애자는 말한다. (중략) 필멸, 필멸, 필멸일 뿐인 세계에서 의미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애쓸 일도 없고 발버둥을 쳐봤자 고통을 늘릴 뿐인데. 난리법석을 떨며 살다가도 어느 순간 영문을 모르고 비참하게 죽기나 하면서. 그밖엔 즐거움도 의미도 없이 즐겁다거나 의미있다고 착각하며 서서히 죽어갈 뿐인데. 어느 쪽이든 죽고 나면 그뿐일 뿐인데. (p.12~13)
애자는 소라와 나나를 거의 방치하고 며칠씩 집을 비우기도 했는데 하루는 집에 먹을 게 없어서 자매는 상한 떡을 데워 먹습니다. 시큼한 냄새를 맡고 옆집에 살던 나기네 어머니가 건너 와서 떡을 먹고 있던 소라와 나나를 보게 되죠.
나도 한입 먹자, 하며 그녀는 뜨거운 떡을 아무렇지도 않게 손으로 덥석 떼어 입에 넣었다. 나는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 쉰 것을 먹고 있었다는 것을 들켰다는 게 부끄러웠고, 괜찮지? 하고 물어가며 동생에게 그걸 먹이고 있었다는 게 부끄러웠고, 지금 이 집에 어른이 없다는 게 이상하게 부끄러웠다. 실은 어느 것을 가장 부끄럽게 여겼는지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꼭 다문 입속에 떡이 뜨겁게 엉겨 있었는데 삼킬 생각도 하지 못하고 다만 주눅이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쉰 떡을 입에 넣었으니 곧 뱉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중략) 그녀는 끝까지 떡을 뱉지 않고 삼킨 뒤, 이 떡의 맛이 좋으니 자기네 밥이랑 바꿔 먹자며 나나와 나를 벽 건너편으로 데려갔다.
이날부터 나나와 나는 매 끼니,까지는 아니더라도 종종 나기네 밥을 먹었다. 그 시절엔 초등학생이라도 도시락을 싸서 다녔는데 나기네 어머니는 나기의 도시락까지 세 개를 준비해서 신발장에 얹어 두었다. (중략) 나나와 나는 소중하게 그것을 먹었다. 성장기였으므로 그 밥을 먹고 뼈가 자랐을 것이다. 뼈에도 나이테라는 것이 있다면 나기네 밥을 먹고 자란 시절의 테가 분명 있을 것이다. (p.39~41)
나기의 어머니 순자씨는 남편이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며 남긴 빚을 갚으며 시장에서 과일 장사를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녀 역시 결코 녹록치 않은 환경에서 옆집에 살던 어린 두 자매를 돌봐준 것이죠. 이 대목을 읽을 때 어린 소라가 느꼈을 여러 감정들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무척 짠한 마음이 들었는데요. 소라와 나나가 무안하고 민망하지 않게 상한 떡을 먹고는 떡을 자기네 밥과 바꿔 먹자고 말한 순자씨의 마음이 너무 따뜻하고 고마웠습니다. 고추냉이를 먹은 것처럼 코끝이 찡해질 정도로 말이죠.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으로 가득해서 아낄 것도, 소중할 것도 없는 애자의 세계에 살던 소라와 나나는 나기와 순자씨를 만나면서 그 너머의 세계를 마주합니다. 소설은 다음과 같은 나나의 독백으로 마무리됩니다.
목숨이란 하찮게 중단되게 마련이고 죽고 나면 사람의 일생이란 그뿐,이라고 그녀는 말하고 나나는 대체로 동의합니다.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나나는 생각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
한편 생각합니다.
무의미하다는 것은 나쁜 걸까.
소라와 나나와 나기 오라버니와 순자 아주머니와 아기와 애자까지 모두, 세계의 입장에서는 무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의미에 가까울 정도로 덧없는 존재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소중하지 않은 걸까, 생각해보면 도무지 그렇지는 않은 것입니다.
아기는 이제 잠잠합니다. 소라도 오라버니도 잠을 자느라고 편안하게 숨 쉬고 있습니다. 모두 잠들었습니다. 어둠속에서 그들의 기척을 듣습니다. 오래지 않아 날이 밝을 것입니다.
계속 해보겠습니다. (p.227~228)
인간은 덧없고 하찮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해보겠다는 나나의 말을 들으니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길 위의 얼음들을 가지고 와 녹지 않는 조각으로 만든 변상환 작가의 작업이 오버랩됩니다. ‘덧없고 하찮’은 얼음 덩어리로부터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는 사람들의 사연을 상상하고 그들을 덥혀준 온기를 떠올리다 보면 나나처럼 계속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인데요. 제 마음에도 나이테라는 것이 있다면 이렇게 예술 작품을 보거나 읽고 마음이 반응할 때 만들어진 나이테가 분명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채널에 올리는 영상들은 그 나이테 하나 하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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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