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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름 Dec 05. 2016

어쩌다 보니 암스테르담

@Amsterdam, Netherlands



네덜란드는 가보고 싶은 나라 중 다섯 손가락 안에도 들지 못하는 곳이었다. 유럽의 수많은 도시들 중 가장 가보고 싶은 도시는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와 어린 시절 좋아했던 만화책 남자 주인공의 고향으로 나왔던 스톡홀름이었다. 두 친구 S와 E와 함께 올여름 어디론가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디자인 학도들답게 바르셀로나 이야기가 나왔고 그와 함께 이비자 이야기도 잠시 나왔었다. 두서없는 긴 수다 끝에, 어느덧 나는 암스테르담 IN-OUT 항공권을 끊고 있었다. 아인트호벤에 살고 있는 S의 제안으로 네덜란드가 여행의 중심이 되었고, 처음부터 함께 떠나서 내내 붙어 다니는 일정은 아니었다. 혼자 여행하기를 좋아하는 나에겐 반갑게도 '따로 또 같이'의 일정이었다.


@Amsterdam Centraal (암스테르담 중앙역)


암스테르담 중앙역 코인락커에 캐리어를 맡기고 나와서 본 암스테르담의 첫인상은 밀라노의 첫날과 조금 비슷했다. 유럽이구나, 사람이 많구나, 오래된 건물이 많구나 하는 생각과 듣던 대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 곳을 바라보면 티 없이 맑은 것 같다가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석구석 낡고 지저분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영어를 잘 했으며, 남녀노소 불문하고 키가 참 컸다. 실제로 네덜란드의 평균 키는 남자 183cm, 여자도 170cm가 훌쩍 넘는다고 한다.


오래된 건물이 많다는 것은 서울에 살고 있는 나에겐 참 부러운 것이다. 서울에서 구 서울역 정도 오래된 건물은 귀하다 할 정도로 흔치 않으며, 나의 20대를 함께 했던  홍대 앞은 건물과 상가가 맨 정신으로는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생기고 무너지고 또 생기는 곳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여하튼, 편한 운동화를 신기를 잘 했다는 생각을 하며 암스테르담을 이리저리 걷기 시작했다.


암스테르담에서는 누구나 자전거를 탄다.
이렇게 안전해 보이는 홍등가라니.
암스테르담 랜드마크, 구름이 매우 빠르게 움직였다.


운 좋게도 날씨가 참 좋았는데, 그에 비해 구름이 매우 빠르게 움직여서 순간순간 흐린 하늘도 있었다. 같은 날 찍은 사진이라기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암스테르담 랜드마크라는 곳들에 들릴 때면 거짓말처럼 구름이 가득 찼고, 정처 없이 걷는 순간에는 또 거짓말처럼 맑았다. 조용한 듯 빠르게 움직이는 도시의 이미지. 오랜 시간 머무는 것이 아니라면, 언제 어떤 날씨에 어떤 기분으로 갔는지가 그 도시의 이미지를 결정하곤 한다. 해가 매우 길고 비가 거의 오지 않는 브리즈번은 나에게 마냥 착한 도시였고, 무섭게 비바람이 몰아쳤던 런던은 나에게 매정한 도시였다.




암스테르담은 조금은 남다른 의미로 나에게 특별한 도시다. 우선 나는 자전거를 전혀 못 탔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전거 따위 타지 못해도 전혀 불편함 없이 지내왔었는데, 암스테르담에서는 자전거를 탈 줄 알아야 한다는 친구의 말 한마디에 처음으로 필사적으로 노력해서 익히고야 말았다. 너무 뿌듯해서 인스타그램에 안 올리던 동영상까지 올렸다면, 얼마나 나 스스로를 뿌듯해했는지 감이 잡힐까.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 위해 깜깜한 밤에도 연습을 했고, 심지어 연습하는 도중에 비가 와도 비를 맞으며 계속 연습했다. 웃긴 건 암스테르담에서는 자전거를 타지 않았고, 잔세 스칸스에서 딱 두 시간 탔다. 그리고 크게 넘어져서 왼쪽 다리가 엉망이 되어버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전혀 중요하지 않았던 것도 같다.


@De 9 Straatjes (나인스트리트)


그래, 하늘이 이렇게나 맑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나인스트리트라 불리는, 운하를 끼고 위치한 9개의 작은 거리를 다 걷지는 못했다. 블로에멘마크트와 호텔드룩은 꼭 들려야겠다는 생각으로 그저 발 닿는 대로 걸었다. 감사할 정도로 하늘이 맑았고, 별로 깨끗하지 않을 운하로 흐르는 물도 맑은 것처럼 느껴졌다. 노천카페의 스툴, 깔끔한 상점 사이니즈, 자유로워 보이는 사람들을 찍어가며 걷는 기분은 정말로 끝내줬다. 재미있는 것은, '저 사람은 분명 디자이너일 거야'라는 생각이 드는 몇 명의 사람과 마주쳤다는 것이다. 나의 동족들과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모르는 척 그냥 지나가는 게 왠지 기분 좋았다.


@Bloemenmarkt (블로에멘마크트)
나라마다, 도시마다 눈에 띄는 꽃이 다르다.
이 때는 정말 좀 미치는 줄 알았다.


걷다 보니 블로에멘마크트가 나왔다. 네덜란드답게 튤립 알뿌리를 파는 노점상들에는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튤립들이 피어있었다. 그 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무언가를 파는 곳에 가면 느껴지는 약간의 진부함과 투박함도 있었지만, 안 가면 섭섭할 뻔했을 느낌이랄까.


@Droog amsterdam (드룩디자인)




수십 분을 걷고 또 걷다가, 드디어 'droog'이라고 쓰여있는 간판을 발견했다. 호텔드룩이 여기 맞나 하며 기웃거려보다가 편집샵과 카페를 겸하고 있길래, 더 망설이지 않고 들어갔다. 정확히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가게에 들어갈 때에는 항상 설레고 조금 걱정된다. 궁금하니까 설레고, 설렌 만큼 괜찮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되곤 한다.


여러 종류의 제품군이 한 눈에 들어왔다.
너무나 정갈한 디스플레이.
반려견과 함께 온 중년여성이 매우 멋졌다.


파리 쁘렝땅 백화점의 루이비통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엎드려있던 프렌치 독을 만났을 때의 그 느낌을 또 받았다. 백화점 명품매장에 강아지가 누워있다는 것에 놀랐고, 그 일이 매우 자연스럽다는 것에 더 놀랐다. 위생이 중요한 장소만큼은 반려동물의 입장이 제한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상점 운영에 있어 큰 문제가 없고 주인이 반려동물을 100%에 가깝게 제어할 수 있다면, 더불어 매너를 아는 놈이라면 충분히 자연스러울 수 있는 광경이다.


사진 속 저 강아지는 주인에게 끌려온 것이 아니라, 마치 함께 쇼핑 온 듯한 느낌을 주는 아이였다. 여기저기 킁킁대지도 않고, 주인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서 얌전히 함께 걷고 있었다. 반려견과 함께 쇼핑은 물론, 식당이나 카페에 가기도 까다로운 내가 사는 도시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아무튼 보기 좋았다.


뚜렷한 경계없이 큰 공간을 적당히 나눠 채운 느낌이다.
무심한 척 멋 부려놓은 디스플레이.
디자인은 생각보다 무난했으나, 역시나 가격이 착하지 않았다.




나라마다 언어도 다르고 주된 건축양식도 다르지만, 유독 컬러에 대한 차이가 나라별로 참 크다. 좋은 컬러 조합과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열망이 큰 편이기에 네덜란드는 나에게 은혜로운 나라였다. 암스테르담도 그러했지만 아인트호벤은 정말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 정도로 도시 전체가 디자이너들이 만든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아인트호벤 이야기는 조금 미루도록 하고, 이 곳에서 만난 미친 컬러 조합을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저 민트가 섞인 스카이블루 컬러를 보는 순간,
나는 그만 넋이 나가고야 말았다.


가장 좋아하는 컬러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나의 대답은 매우 길어진다. 그 '가장'이라는 단어가 부담스러운 것도 있지만, 진짜 이유는 하나 콕 집어서 답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밝은 그레이와 코랄 핑크의 조합을 좋아하고, 블랙에 가까운 짙은 그레이와 하늘색인지 민트색인지 헷갈리는 그 컬러와의 조합을 좋아한다. 하나가 붕 뜬다면 하나는 좀 눌러주는 게 좋다는 생각에서인데, 이 곳에서 엄청나게 붕 뜨면서 예쁜 컬러 조합을 목격했다. 형광기가 아주 살짝 도는 햇병아리 노란색과 민트를 아주 살짝 섞은 하늘색의 조화가 너무나 예뻤다. 너무 예뻐서 실시간으로 인스타그램에 공유해버렸다.


가짜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건물 속에 숨은 정원이 있었다.


꽤나 추워진 지금 보니 너무나 따뜻한 사진이다 싶다. 나도 친구와 함께였다면 잠시 앉아서 이야기 나누고 싶은 분위기의 건물 속 정원이었다. Droog Amsterdam, 이 곳은 너무나 맘에 들었지만 내 지갑을 열게 하지는 못했다. 운하를 따라 조금이라도 더 걷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신호등이 없어도 너무나 평화롭다.
집주인이 좋아하는 컬러일까.


도시 컨셉 자체가 알록달록한 것은 아닌데, 낡은 벽돌 건물 사이에 이렇게 채도 높은 컬러를 과감하게 쓴 것을 보면 궁금해진다. 집주인이 좋아하는 컬러라서 칠한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상점이 아닌 일반 가정집에도 이렇게 넓은 면적에 원색적인 컬러가 채워진 것을 보면 많이 궁금해진다. 계속 걷다 보니 배가 고파졌고, 이때다 싶어 마네킨 피스로 달려갔다.


역시나 줄이 길었고, 동전을 탈탈 털어 작은 사이즈로 사 먹었다.


암스테르담, 여행, 맛집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정말 많은 블로거들이 마네킨 피스를 소개한다. 감자튀김 하면 떠오르는 나라 벨기에와 마찬가지로 마요네즈를 뿌려준다고 한다. 밀라노 엑스포에서 벨기에 감자튀김을 먹어보았는데 맛이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았다. 오랜 시간 걸어 다녀 발바닥이 조금 아팠기 때문에, 저기 보이는 꼬마 아이 옆에 꽂아두고 서서 먹었다. 여행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나를 비롯해 서서 맛있게 먹는 사람들 표정을 유심히 살피는 것 같았고, 암스테르담에 사는 사람들은 '여긴 오늘도 사람이 많네'하며 슥 지나쳐가는 것 같았다.


친구들과 처음 부산에 놀러 갔을 때, 남포동에서 씨앗호떡을 사 먹었던 것이 떠올랐다. 맛있다더니 정말 맛있다며 호들갑스럽게 호떡을 사서 자리를 뜨는 우리 또래의 여자아이들과, 빨리 우리 차례가 되기를 기다리며 서있는 우리를 보며 부산 사람들이 중얼거렸다. '저건 대체 왜 먹는 거야? 저거 맛없는데'라고. 씨앗호떡은 관광객들에게 더 유명한 길거리 음식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혹시 이 감자튀김도 그런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그다지 신경이 쓰이진 않았다. 내 입에는 맛있었고, 언젠가 암스테르담에 또 가게 되면 그 날을 추억하기 위해서라도 또 먹을 생각이다.




지금 생각해도 웃기지만,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암스테르담에 도착하자마자 간 곳은 하이네켄 공장이었다.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E가 꼭 가고 싶다고 했고, 하이네켄 맛은 잘 모르겠지만 브랜딩은 꽤나 맘에 든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흔쾌히 가보자고 했다. E는 맥주를 엄청 좋아해서 칭타오 여행도 다녀왔다고 했다.


@Heineken experience (하이네켄익스피리언스)


하이네켄 맥주공장은 1980년대 말까지 사용된 맥주 양조장을 박물관으로 개조하고, 여러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나름 4D를 선보이며 맥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단계별 맥주를 맛보게 해 주고, 하이네켄에 현혹된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을 사게끔 유도한다. 나는 컵 두 개를 구입했다. 정성스레 글씨를 새겨주는데 필기체가 너무 예뻐서 감탄하며 동영상도 남겼다.


이 날 이후로 나는 하이네켄을 마신다.


모든 체험 프로그램을 경험한 후, 루프탑에서 생맥주를 한 잔 들이킨 나는 주량을 넘긴 것 마냥 얼굴이 새빨게졌다. 웃기게도 이 날 이후로 나는, 생맥주를 마실 일이 생기면 하이네켄을 마신다. 거짓말처럼 그 날부터 하이네켄이 너무 맛있는 것이다. 그리고, 국내 지역 곳곳에 운영되고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구상하는 분들이 하이네켄 맥주공장에 한 번 다녀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덜란드는 유럽 서부에 위치하지만, 곳곳에 북유럽의 분위기도 조금 가지고 있다. 위치상으로는 독일보다 북유럽에서 더 멀지만, 서유럽과 북유럽의 문화적 경계를 네덜란드에서 찾는 사람들이 꽤 많다. 북유럽을 가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북유럽의 이미지는 암스테르담과 한두 시간 거리 떨어진 아인트호벤이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아인트호벤에 대한 이야기는 한 번에 다 못 끝낼 것 같다. 암스테르담 이야기를 마무리짓고, 마음이 동하고 시간이 허용할 때 아인트호벤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


세계여행을 소개하면서 가장 퇴폐적인 곳이 암스테르담이라고 소개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마약과 홍등가, 매춘이 허용된 곳이기에 말만 들으면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뚜렷한 목적 없이 암스테르담 거리를 걸어본 사람이라면 동의하기 힘들 것 같다. 적어도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물론 구석구석 지저분하고 관리 안되고 또 서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홍등가 풍경은 낯설고 아름답지 않았지만, 한 바퀴만 빙글 돌아보면 옛 것과 요즘의 것이 함께 어우러진 분위기 괜찮은 도시였다. 정확한 정보를 기록하는 목적이 아닌, 그 날의 분위기와 그때 느꼈던 감정과 했던 생각과 그것들의 관계에 시선을 머물러서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다 보니 이 글의 목적이 무엇인가 궁금해진다. 의식의 흐름대로 단어를 쏟아내듯이 써 내려간 이 글을 누군가가 쉽게 읽어준다면, 첫 줄을 써 내려갈 때 생각했던 나의 목적은 다 이룬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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